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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2077 플레이를 마무리하고 나서 갑자기 차오른 공각기동대 뽕 덕분에 오래된 극장판 두 개를 다시 봤습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워낙 오래된 작품이어서 이 작품들을 볼 때 받았던 느낌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이제 이 작품들의 시점에서 미래의 인간인 제가 다시 본 공각기동대 극장판은 이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친절했고 훨씬 절제된 구성이었습니다. 바로 알아들을 수 없던 이야기들도 이전보다 훨씬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극중에서 제기하는 의문들이 이미 사회에 스며든지 한참이 지난 세계에 사는 제게 공각기동대는 더이상 알 수 없는 선문답을 주고받는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또 방금 전까지 이 세계와 아주 비슷한 나이트씨티를 누비고 다닌 직후여서 더더욱 극중의 이야기가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제가 맨 처음 본 엔딩은 데빌 엔딩이었습니다. 타케무라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간 덕분에 V 입장에서 그리 기분 좋은 엔딩은 아니었습니다만 이 엔딩에서 V는 이제 조니와 비슷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더이상 신체를 가지지도 않고 또 누군가의 정신에 기생하며 자아를 구동할 수도 없는 상태이지만 아라사카든 누구든 제대로된 제대로 된 전신의체를 개발하고 또 티타늄 두개골과 의학용 뇌 디바이스로 가득찬 전뇌에 고스트를 깃들이는 마냥 새로운 육체를 얻어 이 세계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게임 스토리에서 아라사카 사부로가 겪는 일종의 환생은 좀더 공각기동대스러운 결말을 기대하던 제게는 좀 식상했지만 미코시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엔딩은 V 입장에서 그리 나쁘지 않은 엔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코시는 마치 감옥 같은 이미지로 묘사되는데 전뇌기술이 좀 더 발전한 나이트씨티에서 미코시는 궤도를 돌며 지구상의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타치코마같은 존재로 세계에 물리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음에 드는 두번째 엔딩은 절제. 우물에 들어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육체로 돌아가는 대신 다리를 건너 알트의 일부가 되는 겁니다. 사실 이 엔딩을 볼 의도가 없었는데 갑자기 마우스 휠이 안 굴러가서 다른 선택지를 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선택지를 변경하지 않고서는 우물에 아무리 몸을 부벼도 우물에 들어갈 수 없었고 제게 남은 행동은 다리를 건너 알트에게 떨어져내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사실 이 엔딩은 V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니의 이야기로 끝나긴 합니다. 조니는 추모공권과 악기 매장을 들른 다음 버스에 올라 나이트씨티를 떠납니다. 이 세계에는 더이상 로그도 죽고 없는 마음 붙일 곳 없는 곳이지만 이제 조니는 V 대신 어디선가 남은 생을 살아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이 엔딩은 조니 관점 대신 V의 관점을 보여줬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싶습니다.

공각기동대 이노센스에서 이노센스에서 소령은 바토가 네트워크에 접속할 때 항상 함께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전뇌 용량이 작은 가이노이드에 음성과 전투제어시스템을 다운로드해 실제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기술적으로도 또한 영적으로도 설명하기 모호한 존재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이버스페이스가 실제 세계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진 나이트씨티의 세계에서 장벽 너머 알트의 일부가 된 V는 자신의 육체로 돌아갈 때 얼마 남지 않았을 수명을 초월한 존재가 되었고 어쩌면 이제부터 V야말로 조니가 네트워크를 떠돌 때 항상 조니의 근처를 멤도는 존재가 될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엔딩은 좀더 V의 이야기로 마무리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