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성

후방 레이더가 꽤 의미있는 만큼 생각보다 더 많이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멈췄다가 내리막을 내려갈 때는 출발 전에 헤드유닛을 확인해 후미등이 인식된 상태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지난 3월에 가민에서 나온 레이더가 달린 후미등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두어번 사용해본 다음 완전히 마음에 들었고 모든 자전거에 거치대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기존에 사용하던 강력한 문라이트 네뷸러 후미등도 함께 달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코너가 많은 오르내리막에서는 안 그렇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뒤에서 자동차가 접근할 때 소리를 듣기 전에 먼저 헤드유닛에 경고가 뜨고 내가 뒤를 돌아보며 상황을 확인한 다음에야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전보다 훨씬 먼저 뒤에서 오는 차를 알고있을 수 있었습니다. 또 내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차량이 접근해 오면 더 밝게 깜빡여 경고한다고 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장치가 뒤에서 접근하는 운전자들에게 짜증을 유발해 저를 인식하게 한 적이 분명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기계에 제법 의존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에 동부 5고개를 돌고 마지막에 유명산에서 아신역 방향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출발하고 한 30초쯤 지나서 가민 헤드유닛에 후미등이 연동되지 않았다는걸 알게 됐습니다. 중간에 좀 긴 시간동안 쉴 때 헤드유닛과 후미등 양쪽 모두 꺼 놓는데 종종 다시 켤 때 후미등이 헤드유닛에 인식되지 않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출발하기 전에 상태를 확인하고 만약 인식되지 않았다면 후미등을 껐다 켜곤 했습니다. 그런데 내리막을 시작하고 나서야 이걸 알게 된 겁니다.

저는 오르막을 좋아하지만 반대로 내리막은 좀 무서워합니다. 엘리트 사이클리스트들의 경기를 보면 내리막에서 고양이자세를 하고 저러다 낙차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낮은 각도를 유지하곤 합니다만 내리막은 아무래도 무서워서 빌빌거리며 시속 40-45킬로미터를 유지하고 그나마 커브가 나타나면 훨씬 더 속도를 줄이곤 합니다. 당연히 유명산 내리막에서도 똑같이 내려올 작정이었지만 속도는 제법 붙어있었고 노면 상태가 아주 나빴고 자동차들이 자주 중앙선을 넘기 때문인지 중앙선에 폴이 박혀 있어 추월은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리막을 내려가면 자동차들은 대부분 자전거 뒤에 바짝 붙어 위협운전을 합니다. 이 상황에 후방 레이더가 사라져 상황을 알 수 없게 된 겁니다.

평지에 내 힘으로 가속하는 중이거나 노면 상태가 더 나았다면 별 일 없이 뒤를 돌아보고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을텐데 노면이 나빴고 내리막인데다가 커브가 많았습니다. 도무지 뒤를 돌아볼 엄두가 안 났습니다. 그리고 뒤에 차 소리는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했지만 바람소리에 차량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비슷한 상황에서 헤드 유닛에 표시되는 후방 상황과 같은 차량이라도 커브를 돌며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날 때 소리로 다시 경고해줘서 크게 도움을 받아 왔는데 이게 사라지자 평소보다 훨씬 더 무서웠습니다. 어차피 뒷 차는 안전거리 유지 없이 최대한 바짝 붙어 따라오고 있을테니 낙차하면 뒷 차에 깔려 죽거나 코너에서 감속을 안하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테니 이판사판이다 싶어 뒷 차를 무시하고 도로 중앙으로 내려갔습니다만 여전히 노면이 나빠 무서움이 가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내리막을 내려와 아신역 방향으로 완전히 접어들기 전에 근처 카페에 들려 잠깐 진정한 다음 출발해야만 했습니다.

이 날의 교훈은 후방 레이더가 꽤 의미있는 만큼 생각보다 더 많이 의존하고 있었고 특히 완전히 멈췄다가 내리막을 출발하기 전에 헤드유닛을 확인해 후미등이 인식된 상태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