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까지 가자

달까지 가자

항상 이런 이야기의 끝에는 썩 유쾌하지는 않은 결말이 기다릴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런식으로 교육을 받았던 걸까 싶기도 한데 또 딱히 그런식으로 배운 것 같지도 않아요.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그런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었어요. 답없는 인생, 암울한 현실, 지속가능성 없는 노동. 이 모든 것들이 이전에 읽은 일의 기쁨과 슬픔에 슬쩍 스쳐갔던 것 같은 착각도 듭니다.

무대가 판교에 있을 때 글자들 사이에 묘사되어 있지 않은 시각 신호들을 상상해내며 피식거렸다면 이번에는 이전보다는 좀 시각이 제한된 이야기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때만한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 디테일은 글쓴이의 변화가 아니라 지난 세계는 제게 더 익숙한 세계였고 이번 세계는 조금 덜 익숙한 세계여서 그랬을 겁니다. 이런 답 없는 세계에 사는 제가 또 다른 답 없는 세계의 주인공들 이야기에 이입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걱정을 계속 했습니다.

제주 여행을 가서 좋은 숙소의 좋은 서비스에 황송해하고 내가 이런 곳에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는 감정은 너무 익숙해서 표정을 굳게 만들었고 모든 것이 알맞은 끝없는 풀에 몸을 담그고 석양을 배경으로 차트를 확인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급하게 풀 밖으로 뛰쳐나갈땐 방금 뛰쳐나간게 누군지 몇 줄 위로 돌아가 읽어내려오기도 했습니다. 왜 이런 조바심 또는 두려움을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이런 걱정으로부터 좀 벗어나 느긋하게 웰컴 샴페인을 즐기고 맛있는걸 먹고 좋은 곳에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항상 이런 순간마다 이곳에 있지 않은 다른 사람,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생각하며 가슴졸이고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할까, 대체 누가 어떻게 무엇을 나에게 가르쳤길래 이런 걱정이 드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는 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진중함의 탈을 쓴 채 우리들의 생각을 가둬 이 순간들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를 좀 멀리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치 밀레니엄에서 리스베트의 경제적 변화를 읽으며 들었던 감정과도 비슷했습니다. 마치 글쓴이는 제가 글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을 하며 가슴 졸인 것을 알고 있었던 마냥 ‘전혀 아니거든?’ 이라고 말하며 유쾌한 결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달까지 가자 페이지의 답글에 이런 내용과 결말에 대한 악평들이 좀 있었지만 아 쫌. 이제 좀 이런 이야기나 이런 결말을 마음 편히 즐겨도 되지 않겠어요? 항상 우리와 멀고 먼 이야기 말고 그냥 우리들의 이야기 그 자체에 우리들이 한없이 주입 받던 그 걱정을 비틀어 떼내버리는 그런 이야기요. 완전 유쾌하고 신났습니다. 아 맞아! 주말에 회사 냉장고에서 뭘 꺼낼지 기대하고 있었어요. 내내 ‘어.. 거기 한병 남았는데..’ 하며 기대하고 있었다구요.

그리고 혹시 글쓴이가 그랜드투어오프닝을 보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완전 그런 느낌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