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플레이 MMO

MMO를 몇 개 째 만들어봐도 MMO 순수주의자인 제 관점에서 이해하기 쉽지 않은 현상이 있습니다. 2004년 서방세계에서 발명한 싱글플레이 MMO 게임 이후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여전히 우리들은 게임의 상당부분을 ‘메인퀘스트’란 이름으로 싱글플레이 MMO 장르로 만들고 있습니다. 또 개발 과정에서 전체 시스템 설계를 담당하는 제 입장에서 이 싱글플레이 경험과 MMO 경험이 나뉘는 부분의 규칙을 디자인하기는 여전히 굉장히 어려운데 다들 싱글플레이 또는 멀티플레이 중 어느 한쪽의 경험만 보고 개발하다 보니 중간에서 이 두 가지 경험이 전환되는 순간의 정합성을 만들어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인스턴스나 파티플레이 같은 말을 닫기만 해도 이미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싱글플레이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이 게임이 MMO 장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순수한 MMO 관점에서 모든 세계는 퍼시스턴트 월드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가 보는 세계의 상태는 내 옆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보입니다.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을 보는 주변 사람들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할 겁니다. 하지만 싱글플레이 또는 메인퀘스트 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사건들은 모두 퍼시스턴트 월드의 현재를 기준으로 시간 상 과거에 일어난 일의 체험인데 이 경험을 게임에 접속한 다른 플레이어들로부터 분리된 상태에서 만들고 싶어합니다. 내가 어느날 평소에는 사람으로 북적이던 광장에 들어섰는데 그날 따라 광장에 아무도 없고 몬스터 한 마리가 광장 가운데 서있는데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식입니다.

이런 시나리오를 플레이어캐릭터 본위로 이야기하면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어느 날 조건을 만족한 상태로 광장에 들어서면 그때부터 내가 위치한 월드를 한 벌 분리해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플레이를 만드는 건 전혀 이상하지도 않고 별로 어려워보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의 시각을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조금 더 복잡해집니다. 가령 내가 텅 빈 광장으로 이동하는 순간 퍼시스턴트 월드에서 나는 어떻게 보여야 할까요. 그냥 띡 사라지면 될까요? 아니면 접속을 종료하는 연출을 보여줘야 할까요? 아니면 대놓고 ‘메인퀘스트 진행을 위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효과’를 표시해야 할까요? 반대로 현재 시간대인 퍼시스턴트 월드 상의 광장으로 돌아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문제를 해결한 다음 만약 내가 다른 플레이어들과 파티중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파티장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파티원이라면 내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을까요? 만약 이 게임이 동시 접속자를 처리하기 위한 수준 낮은 해결방법인 채널을 사용하고 있다면 텅 빈 광장에 들어간 나는 어느 채널에 존재하는 걸까요. 특정 채널에만 버프를 주는 이벤트중이라면 텅 빈 광장의 나는 그 버프를 받아야 할까요 안 받아야 할까요. 텅 빈 광장 안에 있는 내게 퍼시스턴트 월드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하는 채팅은 보여야 할까요? 만약 퍼시스턴트 월드에서 다른 플레이어가 나를 부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는 어느 정도 표준 규칙이 있지만 이런 문제들을 생각할 때마다, 또 이런 문제랄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치부하는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좀 지칠 때도 있습니다.

메인퀘스트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보이는 퍼시스턴트 월드에서 진행되는 구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구간도 있습니다. 이 구간들 사이에서 공간 전환이 일어날 때 이전에는 명시적으로 던전 안으로 진입할 때만 공간 전환을 일으키다가 시잔이 흐르면서 점점 위에 언급한 ‘텅 빈 광장’처럼 명시적으로 구분 가능하지 않은 장소에서 공간 전환을 더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댓가로 사람들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퀘스트를 자주 하는 곳 주변에 서있다 보면 사람들이 멋대로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는 이상한 모습을 보여주곤 합니다. 꼭 고장난 메트릭스처럼요. 메인퀘스트를 플레이 중인 플레이어캐릭터 한명한명에게는 나쁘지 않은 경험일 수도 있지만 퍼시스턴트에 있는 나머지 플레이어들에게 이런 경험은 그렇잖아도 몰입하기 힘든 세계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드는 장르가 싱글플레이 MMO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싱글플레이 부분을 확실하게 싱글플레이로 만들고 MMO 부분을 플레이하기 위한 완전한 튜토리얼처럼 구성해버릴 수 있습니다. 아니면 싱글플레이와 멀티플레이를 오가는 경계선을 좀 더 명시적이고 현실적인 맥락을 가지도록 스토리 기반을 쌓고 이를 잘 반영하는 게임 내 장치와 이를 잘 반영하는 인터페이스를 구성해야 합니다. 초기 싱글플레이 MMO 게임들이 트여 있는 공간에서 멀티플레이와 싱글플레이 사이를 전환하기 어려워 던전에 진입하는 부분을 이 전환시점으로 삼았듯 오히려 명시적인 세계의 전환 시점을 한정하고 이 순간에만 세계의 전환이 일어나도록 하는 쪽이 싱글플레이 플레이어와 멀티플레이 플레이어 양쪽 모두의 몰입을 깰 요소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