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방가 넥스트봇

한동안 구현 비용이 낮고 1인칭 게임에 잘 어울리며 유저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게임 규칙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1인칭 게임은 특히 전 세계의 온갖 사람들이 연구해 별의 별 희한한 게임 규칙이 많지만 그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은 개리모드의 넥스트못 붕 하나인 셀레네 델가도 또는 오붕가입니다. 게임 모드라고 부르기에는 내비게이션이 있는 아무 레벨에나 스폰 시켜 놀 수 있지만 이 넥스트봇의 존재 자체가 플레이 스타일을 강제하기 때문에 게임 모드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 게임 모드를 알게 된 것은 우연히 이 영상을 봤기 때문입니다. (주의: 무서울 수 있음!)

딱히 대단한 기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플레이어가 이 얼굴에 닿으면 바로 죽습니다. 개리모드에는 메타 플레이가 없어 죽어도 딱히 손해 볼 것은 없지만 게임 상에서 플레이어가 죽는 상황을 피하기로 약속하고 이 규칙을 받아들이면 닿을 때 죽는다는 단순한 규칙이 게임 전체를 이끌게 됩니다.

이 얼굴은 플레이어를 직선 상에서 발견하면 플레이어를 향해 이동해 오는데 아무 움직임 없이 그저 가까워지는 이동 방법 자체가 무서운 느낌을 줍니다. 또 다가오면서 이 넥스트봇이 만들어지게 된 일종의 괴담인 셀레네 델가도라는 사람의 실종 정보를 말하는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데 한국어 청자 입장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반복하며 웅얼 거리는 소리 역시 유쾌한 느낌을 주지는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이 얼굴은 레벨에 일단 스폰 시켜 놓으면 계속해서 플레이어를 쫓아오며 게임을 그만 두기 전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이런 규칙들로 인해 처음 영상을 보고 무척 당황스러웠고 개리모드에 넥스트봇을 떨궈 놓고 맵을 뛰어다니기 시작하고 나서야 이 단순한 규칙이 이렇게 무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했습니다.

한편 인터넷 상의 사람들은 이 셀레네 델가도보다는 비슷한 규칙으로 동작하는 오방가를 더 즐겨 플레이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쪽은 사람 이름이고 다른 한쪽은 대상을 정확히 지칭하는 단어여서 직접 비교하긴 좀 그렇지만 구글 트렌드에 넣어 보면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오방가에 대한 검색이 더 많습니다. 플레이 영상을 찾아봐도 오방가 쪽이 압도적으로 많고요. 처음 접한 것이 셀레네 델가도 였기 때문에 왜 사람들이 좀 덜 무섭게 생긴 오방가를 더 즐겨 플레이할지 궁금했습니다. 기왕 무서운 얼굴이 쫓아오는 플레이를 할 작정이라면 더 무섭게 생긴 셀레네 델가도가 쫓아오는 편이 더 신날 텐데 말입니다.

그러다가 유저들의 리액션이 포함된 영상을 보면서 몇 가지 가정을 해봤습니다. 일단 오방가는 영어 화자 입장에서 셀레네 델가도와 비교해 아주 유명한 사람을 패러디 한 것입니다. 명백히 접근성이 높습니다. 또 계속해서 소리를 내는 셀레네 델가도에 비교해 오방가는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플레이를 반복해 보면 셀레네 델가도가 내는 소리는 처음에는 무섭지만 나중에는 짜증납니다. 반면 오방가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아 방심하고 있다가 순식간에 뒤에서 다가와 플레이어들을 한방에 다 죽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반복해서 플레이할 때는 오방가 쪽이 오히려 더 무서웠습니다.

셀레네 델가도가 플레이어를 뚫려 있는 직선 상에서 발견하면 바로 따라오는데 비해 오방가는 플레이어를 발견하더라도 거리가 멀다면 바로 다가오지 않고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위치로 이동해 기다립니다. 이 동작은 플레이어들이 오방가가 어디 있는지 찾아 나서도록 만들고 안전하게 숨어 있는 상황을 스스로 깨뜨리게 만듭니다. 그 후 소리 없이 나타나기 때문에 반복 플레이 상황에서 훨씬 재미있게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오방가는 꽤 높이까지 점프할 수 있고 느슨한 물리 판정 덕분에 원래는 올라갈 수 없는 곳에 종종 올라갑니다. 그래서 높은 곳에서 방심한 플레이어들을 당황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점프 뿐 아니라 게임 상에 주로 사용하는 좁은 복도보다 약간 더 큰 크기 때문에 어설프게 도망치다가는 예상 밖의 장소에서 스쳐 죽을 수 있어 이 특징을 파악하고 나면 오방가가 등 뒤에 아주 가까이 따라오는 상황이 훨씬 더 무섭게 느껴질 겁니다.

결론. 오방가와 셀레네 델가도는 서로 비슷한 메커닉이지만 인터넷 상에서는 오방가가 더 인기있는 것 같은데 일단 소리가 없고 플레이어와 거리가 멀어지면 아예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위치로 이동하며 느슨한 물리 판정이 우연한 동작을 만들고 아주 유명한 사람의 패러디라는 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모드를 눈여겨 본 이유는 1인칭 또는 3인칭 게임을 만들 때 가장 간단한 모양을 개발해 테스트 하는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방법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었는데 이 조사를 실제 개발에 사용할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래에 기회가 되면 비슷한 모드를 게임에 넣어 볼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