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O만 만드는 세계에서 다른 경험을 할 기회

MMO만 만드는 세계에서 다른 경험을 할 기회

싱글플레이, 그리고 패키지 형태로 판매되던 PC 게임이 시장에서 완전히 박살 나고 온라인 게임들이 시장을 완전히 지배하기 시작하던 시기에 일을 시작해서 그런지 지금까지 만들어 본 게임은 전부 온라인 기반이고 또 플랫폼은 PC 혹은 모바일이며 장르는 대부분이 MMO가 되었습니다.

이런 분류를 약간 벗어나는 경험에는 장기 게임 만드는데 참여한 적이 있었고, 또 플래시 기반의 미니게임과 퍼즐게임을 만드는데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주로 MMO 게임 만들며 먹고 살던 사람 입장에서 이 경험은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어지간한 업계 사람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이상한 경험 해 본 걸로 배틀을 시작하면 ‘장기 만들어 봤어요?’나 ‘플래시로 퍼즐게임 만들어 봤어요?’는 MMO 게임 위주로 만들어본 사람들 사이에서 꽤 상위에 들 수 있었습니다.

장기 게임을 만들 때는 장기 AI를 개선해야 했기 때문에 장기를 만드는 우리들도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했고 거의 매일같이 장기를 둬 정신 차려 보니 제법 잘 두고 있었습니다. 팀원들 끼리 둘 때는 다들 그 정도 실력은 되니 표가 잘 안 났지만 어쩌다 다른 사람들과 장기를 둘 일이 있었는데 아니 사람들이 이렇게 장기를 못 뒀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한편 플래시 기반 퍼즐 게임은 스토리를 본 다음 스토리에 어울리는 미니게임을 플레이 해 카드를 얻어 카드 배틀을 하는 구성이었는데 꽤 짧은 기간 안에 미니게임을 양산해야 했습니다. 미니게임 각각이 독특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게임을 남들이 어떻게 만드는지 잘 몰랐기 때문에 매번 항상 맨 땅에 헤딩하는 느낌으로 개발하곤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제한된 규칙에 따라 블록을 탈출 시키는 퍼즐이었는데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지만 구글에 'wood block escape'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게임들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게임 로직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를 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난이도를 올리기도 해야 했으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 전혀 알 수 없어 스트레스를 좀 받았습니다.

고민하다가 당시에 회사에서 제가 사용할 수 있었던 유일한 합법적인 개발 도구인 엑셀에 퍼즐 로직을 만들어 놓고 랜덤으로 블록을 배치해 문제를 마구 생성한 다음 퍼즐 각각을 무작위 공격으로 풀어 블록 이동 횟수가 적은 문제들을 앞에, 횟수가 많은 문제들을 뒤쪽에 배치해 그럭저럭 제한 시간 안에 미니게임을 런칭할 수 있었습니다. 엑셀에서 돌아가는 스크립트가 그리 빠르지 않아 문제를 생성하고 무작위 공격으로 해결하는 동안 실행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엑셀 매크로를 돌린 다음 컴퓨터를 켜 놓고 집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한편 웬만한 회사들이 전부 MMO 게임만 만드는 세계에서는 다른 장르를 좋아하고 그 장르에 관심이 있고 또 그 장르를 만들어 보고 싶어도 그런 기회를 얻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한번은 팀이 폭파된 다음 회사 내 다른 팀에 면접을 봤는데 앞으로 무슨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냐고 하길래 순진하게 번아웃 같은 정신 나간 레이싱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러면 자신들에게 면접을 보는 대신 회사 안에 레이싱 게임을 만드는 다른 팀에 가면 되지 않느냐는 답변을 들었고 면접에서 떨어졌으며 그 질문이 순진하게 정말 만들고 싶은 게임을 묻는 질문이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생계를 위해 몇 년이나 몇 십 년에 걸쳐 매번 똑같은 MMO 시스템을 만들다 보면 일을 잘 할 수는 있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그 일이 썩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심해지면 번아웃으로 이어지고 멀쩡했던 사람들이 팀이나 회사를 떠나거나 아예 업계를 떠나버리기도 하고요. 한편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뻔한 MMO 시스템이라도 그 안에 자신의 의지를 욱여 넣거나 아주 조금씩 개선하는데 시간과 노력을 집중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런 분들에 의해 고객 입장에서는 거의 비슷 비슷해 보이는 게임들이 아주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되어 갑니다.

그런데 모두가 MMO를 만드는 세계에서도 종종 신기한 기회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는 MMO 개발팀들이 개발비용을 회수할 생각을 하면 시장의 고객 일부만 타겟 하는 계획으로는 경영진들의 크리스탈 재떨이를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스게임 전문가들을 만족 시키는 던전 플레이도 필요하고 온라인 살인마들을 위한 스포츠 PvP나 필드막피도 필요하며 분명 집에 가면 고양이가 귀 끝으로만 반겨줄 것 같은 분들을 위한 하우징과 퍼즐도 필요합니다.

이런 기회를 잘 노리면 분명 MMO 개발팀에 속해 있지만 어쩌다 보니 이제 조금은 지겨워진 뻔한 기능 말고 어지간해서는 해 볼 기회가 없을 것 같은 다른 하위 장르 게임이나 색다른 개발 방식을 체험해볼 수 있기도 합니다. 퀘스트 시스템을 잘 설계해 둔 어느 날 이걸 잘 짜 맞추면 새로 들어가는 도시에 멀티플레이 환경에서 동작하는 희한한 퍼즐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이걸 점심 먹은 다음에 잠시 남는 쉬는 시간을 쥐어 짜 테스트 레벨에 구현해 놓은 다음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운 좋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 제대로 된 지원을 받아 이번 도시의 명물이 되기도 합니다.

한편 이번에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코어 장르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기본은 MMO이기 때문에 여느 MMO 게임에 필요한 어떻게 보면 또 뻔한 기능들을 넣고 있고 또 넣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첫 테스트 빌드에 원래 하늘로 날아간 아바타에서 보여드린 적 있는 PvE 모드만 포함하려고 했지만 암만 생각해도 그것 만으로는 밋밋할 것 같아 PvP 모드를 넣자고 주장했다가 정말로 원래는 예정에 없던 PvP 모드를 개발했습니다.

또 테스트를 거듭하다 보니 전투를 하지 않는 일종의 마을 같은 공간에서 성장이 갖춰지지 않은 지금은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 뭐라도 놀 거리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꺼냈지만 팀에는 새로운 뭔가를 시작할 자원이 전혀 없는 상황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 지 한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하다못해 꽤 넓고 높은 이 공간 안에 캐릭터를 조작해 올라 다닐 수 있는 간단한 구조물을 배치해 두면 보상을 줄 시스템조차 없어 아무 보상을 주지 않아도 나름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대강 아무 에셋이나 주워다가 레벨에 올려 생각을 배포했고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을 들었습니다. 레벨에 적절히 설계한 구조물을 배치하기만 하면 되니 그렇잖아도 바쁜 다른 부서들을 귀찮게 만들 필요도 없을 것 같아 제안했고 딱히 안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회사에 혼 날 수 있으니 P레벨은 끄고 찍었어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MMO 게임에 참여하면서 제대로 된 레벨디자인을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레벨디자인을 체험해본 경험은 먼 옛날 TPS 게임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뿐이었는데 그나마 그 때도 레벨을 만드는 분은 따로 계셨고 그 분의 작업을 도왔을 뿐입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플랫포머에 재능이 없어 이런 장르 게임에는 손 대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말을 꺼낸 사람이 해결해야 하게 됐고 레벨 곳곳에 점프해서 올라갈 수 있는 구조물들을 쉬운 난이도부터 아주 고약한 난이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배치한 다음 고객들이 이 구조물의 의미를 이해해 이 공간 안에서 전투 없이도 나름 시간을 보내며 재미있게 놀 수 있게 만들어야만 합니다.

부정적인 측면은 나름 플랫포머를 해 본 사람이 만들어야 할 것 같은 메커닉을 플랫포머에 재능도 없고 또 개발 경험도 없는 사람이 담당하게 되어 항상 개발자들을 압도하는 고객들에게 망신을 당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점입니다. 한편 긍정적인 측면은 모두가 MMO만 만드는 이런 세계에 살면서 장기와 퍼즐에 이어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어쨌든 플랫포머 비슷한 메커닉을 만들 기회를 얻었고 이 개발 과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배워 두고 또 지금까지 늘 해왔던 대로 개발 과정을 스스로 구축해 내서 결과를 만들어 내면 또 어느 술자리에서 이상한 경험 배틀을 할 때 말할 만한 경험이 또 하나 생기는 겁니다.

일단 이 기능은 이번 단위 기간에 가장 중요한 주제는 아니어서 다른 더 중요한 기능을 빨리 처리해야 고객들을 분노하게 만들 지독한 플랫포머 디자인을 고안할 시간이 생길 것 같습니다. 괜한 소리를 해서 망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음 주에 얼른 다른 일에 집중해 마친 다음 이 일로 돌아와야겠다는 구상을 하며 다음 주가 시작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도 다섯 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로드맵을 보며 드는 감정
다른 회사에서도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전에 참여했던 몇몇 프로젝트에서는 프로젝트 초반에 ‘비전 피티’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경영진을 대상으로는 일단 뭔가를 추진하는데 동의를 얻어 팀을 꾸리는데 돈을 사용하기 시작하지만 팀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설명할 만큼 예쁘게 정리된 계획을 가지고 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그래서 초기 팀을 빌드하고 동시에 회사와 경영진을
결함 보고 방법
빌드를 테스트 하다가 결함을 발견하면 결함을 수정하기 위해 이슈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 이슈, 티켓, 혹은 태스크에는 꼭 들어가야 할 요소들이 있습니다. TC에 기반해 테스트하고 있거나 그저 탐색적으로 테스트 하고 있을 때에도 어떤 결함을 경험한 다음 이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결함 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결함을 가정하지 않았을 때 예상한 동작과 결함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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