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쓰기 1년 회고

이 글을 작성하는 오늘은 2023년 6월 마지막 주입니다. 지난 2022년 7월 초부터 매주 평일에 글 하나를 공유하는 실험을 시작하고 거의 1년이 된 시점입니다. 정확히 1년이 되려면 이번 달 말일이 되어야 하지만 다음 번 글 쓰는 날은 이미 7월로 넘어가 버리는 시점이라 아직 완전히 1년이 되기 전 마지막 주에 지난 1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엇을 잃고 또 얻었는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의 발단은 반 년 전에 작성한 2022년 글쓰기 회고에 설명했지만 그렇다고 발단 부분을 아예 생략하고 시작하기에는 뜬금 없는 느낌이 들 수도 있으니 반복적이기는 하지만 발단을 설명하겠습니다. 블로그가 처음 유행하던 시대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 사이에 여러 번 변덕을 부리며 여러 환경으로 옮겨 다니며 오래 전에 쓴 글을 유실해 왔습니다. 가끔 2천년대 초반부터 쓴 글을 모두 유지하고 계신 분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말 이외에는 적당한 말이 없습니다. 가끔 다른 도구로 이동하며 글을 옮겨 가는데 실패하는 등의 사건을 겪으며 글을 쓰고 날리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도저히 아무 것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바빠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막상 뭔가 텍스트를 써 보려고 해도 회사에서 일할 때는 멀쩡히 텍스트를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집에 돌아와 개인적으로 뭘 써 보려고 하니 아무 것도 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마침 일이 많이 바빴고 이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글쓰기에 관심도 줄어들어 글을 못 쓰는 상태를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여러 번 블로그에 뭔가 글을 쓰려고 시도했었는데 계속해서 아무 것도 쓸 수 없는 상태를 몇 년에 걸쳐 계속해서 겪다가 2022년에 이직을 겪으며 신체와 정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일을 조정했고 아마도 이 결과에 의해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상태를 회복했습니다.

오랜 세월 만에 일하며 쓰는 문서, 일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을 어떤 글을 작성할 수 있게 되어 뭐라도 써볼 생각을 했는데 한편으로는 이런 상태가 얼마나 오래 계속될지 걱정스러웠습니다. 실컷 글을 다시 쓸 수 있게 되어 신났지만 만약 이 상태가 오래 가지 않는다면 또 마음이 변해 글들을 날려버리고 다시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글을 쓸 수 있게 된 김에 자기 스스로와 하는 약속으로 무슨 주제든 간에 하루에 하나씩 매일 정해진 시간에 트위터를 통해 글을 공유해 보기로 합니다. 처음에는 버퍼라는 서비스를 통해 예약을 걸어 글을 올리다가 비용을 줄일 작정으로 일정을 공개된 구글캘린더에 등록한 다음 아이폰 단축어 앱으로 이를 읽어 평일에는 매일 글을 공유하도록 구성했습니다.

아무리 글을 다시 쓸 수 있게 됐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템포로 어떤 주제로든 글을 공유하려면 글을 열심히 써야 했는데 그렇다고 매일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서 글을 쓰기는 쉽지 않아 한 주를 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글 쓸 거리를 만들어내면 메모해 두고 주말 중 어느 하루에 시간을 내서 한 번에 여러 글을 작성하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한 번에 여러 가지 주제로 여러 글을 작성하는 것은 꽤 잘 실천할 수 있어 일정에 따라 글을 공유하는 속도보다 글을 작성하는 속도가 더 빨라져 한동안 아무 것도 못 쓰더라도 계속해서 뭐가 됐든 새로운 주제로 쓴 글을 공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블로그 소개에 뉴스레터 구독자 분들은 반 년 일찍 글을 볼 수 있다고 설명하는 이유가 반 년 이상 계속해서 공개할 수 있는 글을 이미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2023년 6월 말이 되면 이 실험을 시작한 후 딱 1년이 되는 시점인데 용케 1년 동안 이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지난 1년 사이에 글을 공유하는 방법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일단 맨 처음에는 개인 위키에 새 공간을 만들어 공간을 전체 공개로 바꾸고 위키를 통해 글을 공유했습니다. 보통 글을 공유하려면 블로그 모양으로 만든 웹사이트를 통하곤 하는데 오래 전에 드랍박스에 웹사이트 에셋을 올린 다음 그 위치를 공유하면 드랍박스 주소가 웹사이트처럼 동작하는 기능을 지원하던 시대에 논문을 검색하다가 마주친 어느 대단한 교수님의 개인 웹사이트가 이 기능을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런 대단한 분들도 드랍박스를 통해 웹사이트를 서빙하는데 내가 뭐라고 값비싸고 복잡한 블로그 도구를 사용해 글을 공유하나 싶었고 예쁜 블로그를 만드는데 돈을 쓰기 보다는 그저 위키에 글을 올리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방문자 분들의 행동을 살펴보니 여느 글을 공유하는 웹사이트에서 흔히 일어나는 글 하나를 스크롤 한 다음 바로 닫아버리는 행동 외에 페이지에 보이는 다른 글 링크를 통해 웹사이트를 탐색하는 행동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 부여한 의미는 여느 글을 공유하는 블로그 웹사이트 모양과 위키 웹사이트 모양이 서로 상당히 다르고 특히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컨플루언스 위키는 웹사이트 모양이 익숙한 것과 많이 달라 글을 탐색하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입니다. 글을 매일 공유하는 것은 자신과 한 약속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정 욕구의 발현이기도 하므로 기왕이면 변방의 웹사이트 링크를 눌러 찾아오신 분들을 편하게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웹사이트를 블로그 모양으로 만든다고 해서 이런 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글 중에 게임디자인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글만 워드프레스를 통해 블로그 모양으로 제공하기 시작합니다. 이 실험은 결국 방문자들이 더 익숙한 모양의 웹사이트에서 글을 탐색하는 행동을 더 많이 하게 된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세계에는 온갖 사건사고들이 일어나 일론님이 트위터를 인수해 그 동안 글을 공유해 오던 창구를 망가뜨릴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또 컨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완전히 영상으로 넘어갔으며 아직도 텍스트를 읽는 분들은 거의 남지 않았을 뿐 아니라 텍스트는 다른 매체를 만들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되는 시대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음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여러 텍스트 기반 미디어들이 종이신문의 몰락과 비슷한 상황을 겪으며 의미 있는 텍스트들이 페이월 뒤로 사라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페이월 뒤에 있지 않은 글들은 말하는 기계에 의한 학습 대상이 될 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블로그 글을 팔아 돈을 만들 생각이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플랫폼에 독립적인 글 공유 창구를 구축하고 또 모든 글을 제한 없이 인터넷에 노출 시키는 행동 또한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고민하다가 블로그 말고도 텍스트를 공유하는 분들이 많이 사용하시는 뉴스레터 모양을 시도해 보기로 하고 워드프레스에서 고스트로 이전해 뉴스레터를 시작했습니다. 뉴스레터는 아직 9주째 진행했을 뿐이어서 뉴스레터 자체에 대한 실험 이야기는 한참 뒤에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뉴스레터와 블로그를 운영하는 시스템을 고스트로 바꾸면서 투박하게 글만 나열한 사이트 모양보다는 뭐라도 그림을 넣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가 그때까지 컴퓨터에서 직접 돌리던 스테이블 디퓨전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훨씬 빠른 시간 안에 내는 것을 보고 이를 사용해 모든 글에 삽화를 넣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 그림들이 개인적인 의도를 완전히 반영하지는 못하지만 글과 관련이 있고 또 어느 정도는 일관성 있는 삽화를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한동안은 글마다 생성한 삽화를 추가하기를 계속할 것 같습니다. 또 글을 작성한 다음 이미지 생성 프롬프트에 글을 집어넣으며 어떤 이미지가 튀어나올지 기대하는 것도 글을 쓰는 즐거움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한편 지난 1년 동안 매일 글을 공유하면서 개인적으로 얻은 가장 큰 장점 세 가지는 일단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생각의 멱살에서 소개했듯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는데 손가락을 움직여 타이핑하거나 글씨를 쓰면 여기에 맞춰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정해 놓고 주 중에 미리 모아 둔 주제에 대해 글을 작성하면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것 뿐 아니라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여러 주제에 대해 미리 생각을 해 두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만들며 생각한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일이 생기면 즉시 답하는 것 보다는 조금 더 나은 생각을 말할 수 있었고 이는 일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는 스스로의 글을 시간이 흐른 다음 생소한 관점으로 볼 수 있게 된 점입니다. 사실 자신이 쓴 글을 읽으면 글을 잘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글에 드러나지 않는 글쓴이의 의도를 잘 알고 있고 글에 직접 표현되지 않은 행간의 의미를 잘 이해하는 독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글을 다시 읽어도 글을 더 좋게 만들기 어려운데 자기 스스로는 오타를 쉽게 찾을 수 없는 현상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글을 쓴 다음 캘린더에 예약하고 실제 글이 공유되어 타임라인에 나타나기까지 적어도 반 년 이상의 시차가 생겨 어느 날 생소한 글이 타임라인에 나타나 눌러보니 반 년 전에 쓴 글일 때가 있었고 글을 다시 읽어보니 과거의 자신이 쓴 글임에도 굉장히 생소하게 받아들여지고 또 그 사이에 생각이 바뀔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새 글을 쓸 기회로 삼을 수도 있었는데 분명 이 과정은 아마 퇴고와 비슷한 동작일 것 같습니다. 다만 그 퇴고 사이의 간격이 반 년 쯤 되는 좀 괴상한 퇴고이기는 한데 같은 주제를 큰 시차를 두고 다시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뉴스레터를 시작하면서 매 주 커버스토리를 작성하려면 그 주를 충실하게 살아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전처럼 글을 캘린더에 등록해 공유하다 보니 글을 쓴 시점과 글이 공유되는 시점 사이에 기간이 너무 길어 종종 시의성이 떨어지는 글이 공유될 때가 있었는데 시간이 흐를 수록 이런 현상이 더 자주 나타났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간 주제에 대해 난데없이 오늘 타임라인에 나타난 글을 보고 달가워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래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는 분들에 한해 최근에 쓴 글과 함께 그 주에 쓴 커버스토리를 함께 묶어서 보내고 있는데 매 주 커버스토리를 작성하려면 그 주에 뭔가 느끼고 생각한 점이 있어야 했고 그럴려면 그 주에 자신에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에 충실하고 또 일상으로부터 생각을 해야만 시의 적절한 커버스토리를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뉴스레터와 커버스토리 덕분에 매 주를 충실히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장점만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단점도 제법 있습니다. 사실상 한 주에 거의 12시간 정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글을 작성하는데는 이보다 더 적은 시간을 사용하지만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뉴스레터를 작성하고 전송하고 삽화를 생성하고 뉴스레터를 광고하고 글 쓸 거리를 정리하는 등에 사용하는 시간을 모두 합하면 12시간 가까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보통 주말에 시간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렇잖아도 밀린 집안일과 못 한 게임과 아직 안 본 영상과 책 등등등으로 가득 찬 주말의 무려 25%에 해당하는 시간을 글 쓰고 블로그를 관리하고 뉴스레터를 보내는데 사용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주말에 뭔가 큼직한 이벤트 일정을 넣기 상당히 부담스럽습니다. 부담을 줄일 어떤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까지는 개인의 인정 욕구를 충족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선에서 나름 만족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로그를 통해 숫자를 보고 이를 개선하려는 실험을 조금씩 해 보고 있는데 이 역시 이 행동 자체에 매몰되어 일상의 충실함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숫자에 기반해 사이트를 개선하고 광고하는 방법을 수정하고 뉴스레터를 개선하고 커버스토리를 그 주에 작성한 글로 대체하고 또 도메이션 페이지를 붙이거나 하는 여러 실험은 그 결과를 바로바로 알 수 있어 재미있기는 하지만 자칫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는 결과로 돌아올 수도 있음을 알고 있어 분명 재미있기는 하지만 조심하고 있습니다.

내년 이맘때에도 비슷한 회고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같은 체계를 오랜 세월에 걸쳐 유지하며 항상성을 유지하지는 못해 왔습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