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제한과 개발

지난주에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우리들이 항상 프로젝트에 시간과 돈이 부족해 목표를 완수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할 때 만약 시간과 돈을 무한히 사용할 수 있다면 이를 완수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봤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한부로 이 상황에서조차 프로젝트 완수를 장담할 수 없으리라는 추측도 함께 봤습니다. 제 자신의 경험 상 이들 중 어느 쪽도 프로젝트 완수를 장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프로젝트의 진행 방향에 상당한 영향을 끼쳐 만약 프로젝트가 완수될 경우 나올 결과를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만들 겁니다.

시간과 돈은 결국 같은 자원입니다. 돈이 있으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간을 살 수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지금부터는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자원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자원에 제한이 있는 프로젝트는 연구개발이 불가능해집니다.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해 팀을 세팅하자마자 바로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야 하는 마일스톤 목표를 설정하면 시간을 예측하기 아주 어려운 주제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게 됩니다. 리퍼런스를 찾아보고 적당히 남들 눈치를 본 다음 그나마 적당한 방법 하나를 골라 알려진 단점을 조금 해결해서 우리의 방법으로 재구성합니다. 남들이 아예 해본 적이 없어 적당한 리퍼런스를 찾을 수 없는 일은 가시적인 마일스톤 결과로 포장하기 어려우므로 이런 기능은 애초에 개발을 시도하지도 않습니다.

가령 게임 상에 다른 플레이어들의 프로필 이미지를 보여주는 인터페이스에 각 대상의 3D 포트레이트를 보여주기로 했다 칩시다. 트위터에서 프로필 이미지는 그냥 이미지이므로 깊히 생각할 주제가 아니지만 3D 캐릭터가 나오는 게임에서는 좀 곤란한 문제입니다. 어느 시점에 상대 플레이어의 정보를 받아올지, 어느 수준까지 3D로 구성해서 보여줄지, 또 그렇게 3D로 만들어낸 이미지가 나머지 2D 인터페이스와 어울릴지, 아티스트가 의도한 대로 예쁘게 보여줄 수 있을지 직접 시도해보기 전에 결과를 예측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알 수 있는 정보라고는 이전에 비슷한 일을 시도했다가 시간만 왕창 쓰고 결국 실패했다는 사례들 뿐입니다. 그래서 다른 게임들의 사례를 찾아보다가 다들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우리도 마음의 안정을 얻으며 이 개발은 아예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결국 고객들은 새로운 게임이 출시돼도 이전에 경험한 다른 게임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원에 제한이 있는 개발과정에서 남들이 이미 해본 시도가 아닌 무언가를 시도하기는 자원 제한 속에서 항상 가시적인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실행하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발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리퍼런스로부터 우리 디자인을 고안해내며 리퍼런스가 가진 문제를 아주 조금씩 자원 예측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 개선하고는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발전 속도가 남들에 비해 굉장히 더디고 고객들은 이런 느린 개선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반면 자원 제한이 무한한 개발은 출시가 불가능해집니다. 이전에 있던 한 프로젝트는 회사 내의 기대작이었습니다. 유명한 게임 행사에 영상을 공개해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최상위 의사결정자들이 우리가 괴물처럼 사용하고 있는 이 많은 돈을 계속해서 투입하는데 어떤 과정을 통한 의사결정을 내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 마일스톤, 장비 등 원하는 것은 거의 다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도무지 출시될 것 같지 않아 중간에 회사를 그만 두고 나와 다른 프로젝트 하나에 실패하고 또 다른 프로젝트를 출시하고 또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지금까지도 출시되지 않았습니다. 자원에 제한은 없지만 시간이 흐를 때마다 시장의 요구사항은 계속해서 변해 가며 이를 개발 중인 게임에 반영해야만 할 압력을 받기 때문입니다. 출시 시점에 무한한 자원을 투입한 충분히 훌륭한 결과를 공개해야만 하기 때문에 요구사항은 계속해서 변합니다.

처음에는 여느 게임과 비슷한 모양이었다가 또 어느 시대에 수집형 육성 게임이 인기를 끌자 이 특징을 게임에 반영하려 노력하며 게임의 모양이 상당히 많이 바뀌기도 하고 또 이 장르 창시자들의 신작이 돌아오자 이 특징을 반영하기 위해 또다시 게임의 모양이 상당히 바뀌며 이때마다 요구사항은 우리가 만들어온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접수되고 이를 반영하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하며 출시 시점은 또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우리들이 개발한 결과물이 고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회사에도 돈을 벌어주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연구개발에 투입하고 싶은 생각은 항상 충만하지만 그렇다고 거의 무한한 자원이 주어진다고 해서 우리가 연구개발을 적당한 수준에서 마무리해 출시에 성공하고 고객과 회사를 만족시킬 수 있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