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의 눈알

비슷비슷한 모바일 MMO 게임을 여러개 하다보니 어느 게임에서 본 건지 확실하지 않은데 어느 게임에선가 실수로 퀘스트 텍스트를 읽어버리는 바람에 고민하게 된 주제입니다. 보통은 이런 비슷비슷한 MMO를 플레이할 때는 텍스트를 전혀 읽지 않습니다. 이유는 이 텍스트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이 텍스트들이 얼마나 의미없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무 의미가 없기도 하고요. 누구도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게임에 사용하는 싸구려 텍스트를 읽길 바라는 것 자체가 웃기기도 하고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더더욱 텍스트를 읽지 않으려고 하는데 실수로 인터페이스 동작을 관찰하다가 텍스트를 읽어버렸습니다. 제가 지금 플레이하는 퀘스트는 트롤 눈알을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텍스트를 읽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트롤의 눈알을 뽑는다는 텍스트는 작년에 플레이했던 둠 이터널애서 글로리킬로 카코데몬의 눈알을 뽑는 장면으로 연결됐습니다. 트롤 눈알을 10개 모아야 했는데 그럼 트롤을 쓰러뜨리고 글로리킬을 해서 눈알을 뽑기를 반복하면 분명 진짜 신나는 퀘스트일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죠.

퀘스트는 자동으로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내 플레이어캐릭터는 미리 정해지느 공격모션과 피격모션, 스킬모션을 반복해 체력이 0이 된 상대는 쓰러지며 아이템을 드랍하는 애니메이션을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트롤 열 마리를 잡고있는 모습을 보자니 계속해서 둠 이터널에서 내 손으로 카코데몬의 눈알을 잡아 뽑던 경험과 비교해 왜 비슷한 주제인데 이 게임에서는 ‘이따위’ 경험밖에 줄 수 없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트롤이나 트롤의 눈알 같은 건 다 그냥 텍스트일 뿐이고 사실은 그냥 플레이어캐릭터와 몬스터가 일상적인 전투를 할 뿐입니다. 몬스터가 쓰러지면 싸구려 아이콘 이미지 하나와 싸구려 텍스트로 구성된 트롤의 눈알 아이템을 하나 얻을 뿐이고요.

그나마도 요즘은 퀘스트아이템을 인벤토리에 직접 지급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이상한 일들을 줄이기 위해 퀘스트아이템을 인벤토리에 지급하지 않고 단순히 카운트로만 보여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실컷 뽑은 트롤의 눈알을 인벤토리에서 확인해보거나 싸구려 텍스트일 뿐이지만 아이템 설명을 읽어볼 기회도 사라집니다. 장르가 다르다는 건 압니다. 또 게임의 심의등급이 다르다는 것도 알고요. 또 제작비나 게임에 기대되는 수익에 차원이 다르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애도 트롤 눈알을 모으는 과정은 허탈했습니다. 아무런 재미도 없었고 아무런 감동도 없었습니다. 다만 ‘아. 앞으로도 실수로 텍스트를 읽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 https://guides.gamepressure.com/doom-eternal/guide.asp?ID=53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