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숲과 디아블로의 성장 표현 방법

몇 달 전에 ‘왜 숫자를 많이 보여줄까요?’에서 게임에 웬 숫자가 그리 많이 등장하는지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게임에 숫자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성장을 선형성장, 계단형성장, 그리고 비효율성장으로 구분할 때 선형성장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게임 후반부에 가서는 비효율성장 구간의 변별력을 만들고 리를 고객들에게 납득 시키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분명 어떤 게임은 숫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도 훌륭하게 성장을 체감 시키기도 합니다. 회사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가 동물의 숲은 숫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충분한 성장 체감을 주는 반면 흔히 볼 수 있는 수집형 장르나 모바일 롤플레잉 장르는 왜 그렇지 않은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가령 동물의 숲은 숫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성장을 표현할 수 있는 반면 디아블로는 그렇지 않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서로 성장을 표현하고 이를 체감하는 방법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숲에서 유저가 조작하는 플레이어는 귀여운 사람 한 명이지만 이 플레이어의 성장은 플레이어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성장을 체감할 수 있는 숫자는 돈 뿐인데 그나마 돈은 그 자체만으로는 성장 체감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동물의 숲에서 플레이어의 성장은 플레이어 자신이 아니라 플레이어를 둘러싼 환경을 통해 표현됩니다. 플레이어는 마을에서 플레이를 통해 여러 가지 아이템을 얻게 되는데 아이템은 인벤토리에 들어있을 뿐 아니라 마을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됩니다. 가령 열매를 얻어 이를 땅에 심으면 다시 나무가 되고요, 열매를 심는 플레이는 땅 위에 나무가 더 많이 늘어서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며 플레이에 따라 여러 가지 과일 나무를 심어 이 플레이에 의한 성장을 체감합니다. 가구 아이템을 얻으면 이들 역시 단순히 인벤토리에만 남지 않고 집 안에 배치하는 방식을 통해 성장을 체감하게 합니다. 또 화석, 물고기, 곤충 같은 수집 요소는 박물관을 통해 전시할 수 있는데 이는 업적 달성과 이를 통한 직접적인 보상을 통하지 않고도 성장을 체감 시키고 인정 욕구를 달성하게 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동물의 숲을 플레이 함에 따라 성장은 마을 전체의 다양한 장치를 통해 표현되기 때문에 플레이어 본인의 능력치 같은 숫자를 사용해 표현될 필요가 없습니다. 동물의 숲에서 마을은 커다란 캐릭터 정보 윈도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장을 숫자를 통해 보여 주는 게임 인터페이스를 통해 상상해 보면 마을 안을 돌아다니는 행동은 캐릭터 정보 윈도우의 여러 탭과 스크롤박스를 돌아다니며 숫자를 살펴보고 장비를 장착하고 교체하고 강화하는 행동과 같습니다.

동물의 숲은 성장 상태를 숫자로 표시하지 않지만 플레이어 스스로가 마을의 상태를 바꾸며 마을 전체를 통해 성장을 표현합니다. 인벤토리에 있는 무 800개를 인벤토리의 아이콘 하나와 800이라는 숫자로 표현하는 대신 무 800개를 바닥에 늘어 놓고 이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방법으로 표현하곤 합니다. 이들은 표현 방식이 다를 뿐 사실상 같은 역할입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동물의 숲에서 마을은 플레이어 한 명에만 할당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마을에 마음대로 나무를 심고 집을 늘리고 백화점을 지을 수 있는 이유는 이 마을 전체를 다른 플레이어와 공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닥에 무를 잔뜩 깔아 놓은 스크린샷을 찍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반면 성장 상태를 주로 숫자로 표현하는 게임은 이런 플레이어 한 명에게 온전히 할당된 공간이 없거나 공간이 있더라도 멀티플레이 환경이어서 그 공간을 플레이어 혼자 제어할 수 없습니다. 모바일 게임이기도 하고 또 전통적인 디아블로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MMO처럼 보이는 디아블로 이모탈을 살펴보면 마을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모든 플레이어들과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마을에서 장비를 강화하고 보석을 박고 마을 안에 숨겨진 성장 요소를 찾아다니고 다른 플레이어와 만나 미션을 수행하기 시작할 수는 있지만 이 마을 안에 플레이어 개인의 성장 상태를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 설명한 ‘비효율성장’ 요소로 마을 안의 인스턴스 공간에 진입하면 플레이어 개개인에 따라 다른 상태를 공간의 형태로 표시하는 메커닉이 있기는 합니다. 이 공간이 플레이어 개인에게 할당된 것이기는 하지만 동물의 숲 사례처럼 이 공간에 다른 사람을 데려와 구경 시켜 줄 수는 없으며 다양성이 거의 없어 스크린샷을 찍어 자랑해도 별다른 감흥을 주기 어렵습니다. 플레이어의 독립된 공간을 통해 성장 체감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유저 자신만 열람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와 여기 표시하기에 적당한 숫자를 통해 성장을 표현해야만 합니다.

동물의 숲에서 다른 플레이어를 마을에 초대해 인정욕구를 충족하는 행동과 비슷하게 현대 MMO는 다른 사람의 성장 정보를 확인하는 기능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는 동물의 숲에서 내 성장을 표현하는 수단인 마을에 다른 플레이어를 초대하는 메커닉과 비슷하게 내 성장을 표현하는 인터페이스를 다른 사람이 조회할 수 있게 한 것인데 서로 약간은 비슷합니다.

만약 성장을 숫자를 통해 표현하고 싶지 않다는 요구사항이나 방향성을 받았다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 숫자 대신 플레이어의 성장을 표현할 수단,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게임에 성장 체감 요소가 있어야만 하는데 디아블로는 이를 멀티플레이 환경에서 인터페이스와 숫자로 표현했고 동물의 숲은 싱글플레이 환경에서 마을 전체를 통해 표현했습니다. 두 게임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성장을 표현하는데는 이유이고 이 이유를 알고 있어야 요구사항을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