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닌이 없는 사람의 여름나기

저는 피부에 멜라닌이 거의 없는 모양으로 태어났습니다. 원래 한국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충분한 멜라닌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종종 한국인처럼 보이지만 외국에서 나고 자란 분들이 국가에 적대적일 수 있고 또 개인의 이익에 충실한 결정을 할 때 이런 분들을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어지간한 한국인들은 멜라닌을 충분히 가지고 있어 머리카락 색깔이 검고 또 피부색도 적당히 아시아 사람처럼 보이는 상태가 기본인 모양입니다.

그런데 저는 어쩌다 보니 한국인 부모님들로부터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뭔가의 이상으로 멜라닌이 많이 부족한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멜라닌이 부족한 상태는 주로 피부색과 머리카락 색상으로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이렇게 유전적 특징에 의해 멜라닌이 부족한 사람은 멜라닌 부족과 함께 선천적으로 낮은 시력이 함께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형상으로는 피부색이 밝다 못해 약간 투명한 느낌이고 머리카락 색상은 검지 않으며 시력이 꽤 나빠 인생의 어느 순간에나 그 그룹에서 시력이 가장 나쁜 사람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로부터 나타나 태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멜라닌을 필요로 했을 테고 분명 멜라닌이 부족한 사람들은 진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태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인류 역사에서 종종 피부색이 밝은 사람들을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석하기도 하는 문화가 있다고 배운 적이 있어 자연에서 잘 살아남지 못할 사람들을 왜 그렇게 생각했을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종종 다행히 현대의 지방 도시에서 태어났기에 망정이지 시대와 위치 중 어느 하나만 틀렸어도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멜라닌이 거의 없는 사람이 과거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멜라닌이 부족하다는 말은 밝은 피부와 검지 않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체형이나 얼굴형은 동양인, 그 중에서도 한국인 그 자체이지만 색상만 놓고 보면 한국인과 차이가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종종 색상 만으로 한국인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분들이 제가 아주 아주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모습에 놀라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영어를 아주 아주 유창하지 않게 구사하는 모습을 보면 더 놀랄 겁니다. 그런데 피부색이 밝다는 말의 의미는 피부에 멜라닌이 거의 없다는 의미이고 이는 한낮의 자외선으로부터 피부가 전혀 보호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피부에 멜라닌이 있는 사람들은 태양으로부터 자외선을 받으면 피부에 멜라닌이 늘어나 자외선을 막아 진피층이 자외선으로부터 손상을 입지 않도록 합니다. 한여름에 바깥에서 활동하면 검게 타는 이유는 피부에 멜라닌이 늘어나 진피층까지 자외선이 투과하지 못하도록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계절이 바뀌고 자외선을 더 적게 받으면 피부에 늘어났던 멜라닌은 간에 의해 분해되어 다시 이전의 피부 색상으로 옵니다. 그런데 멜라닌이 없다는 것은 태양에 의한 자외선을 받아도 늘려 피부를 보호할 그 멜라닌이 없다는 의미인데 이는 자외선을 받으면 표피층 뿐 아니라 진피층까지 바로 자외선이 아무 방해 없이 투과 되어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여름에 피부가 검게 타는 댓가로 피부에 큰 손상을 입지 않지만 멜라닌이 없는 사람은 여름에 피부가 자외선에 노출되면 바로 벌겋게 화상을 입습니다. 보통은 1도 화상 수준으로 끝나지만 조금 부주의하면 1.5도로 분류되는 화상을 입어 한동안 고생 하게 됩니다. 이런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오래 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른 사람들과 약간 다른 행동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게 됐습니다.

먼저 어릴 때는 멜라닌이고 뭐고 그런 거 잘 몰랐습니다. 부모님들 역시 아이가 피부가 좀 밝고 머리카락 색상이 좀 다르고 눈이 좀 나쁘지만 일상 생활을 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야외 활동을 했는데 야외 활동을 마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태양에 노출된 피부가 벌겋게 익었고 껍질이 벗겨지거나 진물이 나오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민간요법으로 오이를 올려놓거나 얼음을 대서 식히곤 했는데 이 시대에는 여전히 ‘남자’가 ‘자외선차단제’ 같은 것을 바르는 행동은 부모님 선에서도 필요하다고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집에 돌아오면 피부는 벌겋게 익어 있었고 이 상태는 며칠이 지나도 호전되지 않았으며 어느 때는 여러 날에 걸쳐 자외선에 노출되어 피부가 완전히 망가져 옷이 피부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상태를 겪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대라도 그렇게는 살아 남을 수가 없을 것 같아 여전히 ‘남자’가 할만한 행동에 적합하지 않은 평가를 받곤 했지만 여름에 야외 활동을 할 때는 웬만하면 긴팔, 긴바지를 입었습니다. 애초에 긴팔, 긴바지 옷은 여름에 입도록 고안되지 않아 필요 이상으로 두꺼운 옷일 때가 많았지만 피부에 화상을 입어 여러 날을 고생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덥게 있다가 열사 상태가 되는 편이 나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다른 사람들보다 열사 상태에 쉽게 빠졌는데 밖에 좀 있다 보면 두통이 오고 탈수증세가 오며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어지럼증을 느끼곤 했는데 이런 상태에 익숙했습니다. 나중에 본격적으로 장거리 자전거를 취미 삼으면서 이런 상황에 대비하는 방법을 알게 되는데 그건 뒤에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긴 옷을 입는 전략은 굉장히 유용했지만 종종 얼굴, 목 뒤, 손 같은 옷으로 잘 가려지지 않거나 가리더라도 노출되기 쉬운 부위는 여전히 끔찍한 화상 증상을 보였는데 특히 목 뒤에 화상을 입으면 통증으로 똑바로 누워 잘 수가 없어 아주 골치 아팠습니다. 또 보는 사람들이 ‘내가 더 더워 보인다’며 긴팔, 긴바지 입기를 그만 둘 것을 강권하기도 했는데 입고 나온 옷이 그것 뿐이어서 이를 따를 수는 없었지만 어떤 분들은 어디서 반팔 상의를 찾아 들고 와 갈아입으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 옷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궁금합니다.

한동안 학교 다닐 때는 양산을 들고 다녔는데 이 시대의 양산은 자외선을 차단하는 용도 보다는 태양을 가려 주기는 하지만 그저 작고 너무 어둡지는 않은 그늘을 만들어 주는 역할에 더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안 쓰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았기 때문에 양산을 쓰고 다녔는데 이 행동 역시 ‘남자’가 양산을 쓴다는 이유로 여러 사람들로부터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한 양산의 모양 자체가 자외선을 차단하는 기능성 보다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져 기능과 관계 없는 장식이나 특정 스테레오타입을 염두한 색상을 채택해 더욱 그런 평가를 유발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은 학교에서 축제 때 무슨 행사를 해서 거기 나가 구경했는데 한 선배가 양산을 쓴 제가 다가와 ‘너는 들어가라’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뉘앙스는 ‘너는 좀 꺼져라’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때를 돌아보며 과대망상이었을까 종종 고민하곤 합니다.

다음으로는 자외선차단제를 꼬박꼬박 바르기 시작했습니다. 독립하고 서울에 올라와 일하기 시작하면서 ‘남자 답지 못하게’ 자외선차단제를 바르는 행동에 뭐라 할 사람이 없어졌고 외출하기 전에 화장솜에 자외선차단제를 발라 머릿속에 내 모습과 그 위에 태양을 띄워 놓고 태양이 여러 방향에서 조사될 때 노출될 피부 영역을 떠올리며 꼼꼼하게 자외선차단제를 발랐습니다. 게다가 이 시대부터 자외선차단제는 이전 시대에 비해 피부에 허옇게 남지 않았는데 덕분에 자외선차단제를 아주 꼼꼼하게 바르더라도 사람들이 자외선차단제를 바른 상태를 문제 삼지 않게 됩니다. 다만 피부에 아주 두껍게 자외선차단제를 바른 상태여서 땀을 흘리거나 표정을 지으면 하루 종일 얼굴에 불편한 느낌이 남았고 집에 돌아와 이걸 지우는 것도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고 장거리 자전거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고 또 취향에도 꽤 잘 맞는 취미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취미는 이벤트 때 이른 아침에 출발해 짧지는 않은 거리를 하루 종일 달리며 체크포인트에 있는 도장을 찍은 다음 다시 출발지로 돌아와 완주 확인을 받는 과정으로 구성됩니다. 지금도 도장 찍는 이벤트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마당에 자전거를 타는데 도장까지 찍는다니 아주 최고의 이벤트입니다.

그런데 이 이벤트에 참여하려면 가장 짧은 거리인 200킬로미터만 달려도 10~12시간 정도 야외 활동을 해야 해서 가장 뜨거운 대낮을 피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자전거용으로 나온 의류는 통풍과 땀 배출이 잘 되면서도 자외선을 막아주는 제품들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여름용 자전거 옷은 결코 긴팔, 긴바지가 없었는데 이는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 팔토시와 다리토시를 사용했고 목과 얼굴, 그리고 귀는 버프를 뒤집어 써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다가 사진 찍히면 다른 분들은 시원한 복장에 표정이 잘 보이는 못진 모습이었지만 저는 한여름에도 팔다리를 토시로 다 가리고 손에도 긴장갑을 끼고 있으며 얼굴은 버프로 완전히 가린 모습이어서 종종 그 모습 그대로 편의점에 들어가면 직원 분이 깜짝 놀랄 때도 있었는데 특히 겨울에는 방한용으로 버프 대신 바라클라바를 썼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종종 화장실에 갈 때 거울에 비친 저를 보고 제가 놀랐거든요.

장거리 자전거를 타면서 이렇게 온몸을 옷으로 다 가린 채로 달리면 결국 맨 먼저 열사 증세를 보이게 되는데 이 때 머리 아픈 건 진통제, 열이 오르는 건 해열제, 그리고 탈수증상은 꼬박꼬박 전헤질을 보충해서 문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또 여름에 땀을 너무 많이 흘려 문제가 생길 때에 대비할 약품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어 이런 현대 의학 기술의 도움을 받으며 자외선 아래에서 장시간 활동하더라도 멀쩡한 사람으로써 기능하고 또 장거리를 완주할 수도 있었으며 집에 돌아와 멀쩡한 목으로 베개를 베고 잘 수도 있게 됐습니다.

현대에는 생활을 어지간하면 예측 가능한 모양으로 만들어 출근할 때, 퇴근할 때, 점심 먹으러 나갈 때 잠깐 씩 자외선에 노출되는 정도로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반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반팔 상의를 입고 생활할 수 있게 됩니다. 실은 여전히 본능적으로 태양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그늘로 걷는데 걷다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건물이 드리운 그늘로 걷고 그늘이 길 건너편에 있다면 길을 건너 반대편에서 걸으며 신호를 기다릴 때는 신호등 기둥 그림자에 서 있고 또 지하도가 보이면 지하도로 들어가는 등 태양을 피해 거의 무슨 어둠의 자식처럼 생활하고 있습니다. 또 이제 이런 생활이 익숙해져 어릴 때처럼 피부에 화상을 입에 고통 받는 빈도도 현저히 줄어듭니다.

이제 잠깐 이야기하고 지나갔는데 어렸을 때는 어떤 ‘남자다움’에 의한 행동 제한이 지금보다 훨씬 심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시대를 돌아보며 ‘야만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아마 더 일찍 태어났다면 이런 시선 때문에 훨씬 더 삶이 어려워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편 현대에는 그런 행동에 대한 제약이 훨씬 줄어들어 자외선을 피하기 위한 여러 행동이 훨씬 편안해집니다. 또한 기술이 발달해 자외선을 차단하는 의류가 풍부해졌고 양산은 이전 시대에 비해 기능에 집중한 제품이 출시되었습니다. 특히 현대에는 자외선의 유해함이 상식으로 자리 잡아 이런 행동이 그리 이상하게 보여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누군가 다가와 ‘너는 여름에 피부를 좀 태워야 하는 거 아냐?’ 라고 말할 때도 있지만요.

마지막으로 앞에서 짧게 이야기하고 지나간 이런 유전적 특성의 일부인 밝은 머리색깔과 낮은 시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면 어릴 적 야만의 시대에 머리카락이 검정색이 아니라는 사실은 학창시절을 보내는데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판단에 의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항상 머리카락을 검게 염색하고 다녔는데 그 이후에 만난 분들이 저를 보곤 ‘왜 이러고 다녀?'라고 묻곤 했는데 이 질문은 생각할 수록 재미있으며 지금 이 말을 타이핑하는 순간에도 얼굴에 웃음 짓게 해 줍니다.

하지만 낮은 시력만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는데 야만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이 정도로 시력이 나쁜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현대에는 여러 정보기술에 기반한 장치들의 도움으로 일상 생활을 하고 컴퓨터를 사용하고 컴퓨터를 통해 직업을 가지고 일상을 영위하는데 아주 큰 지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글에서 해 보겠습니다.

결론. 세상에는 의도하지 않게 멜라닌이 부족한 사람이 있는데 멜라닌이 부족하면 태양으로부터 받는 자외선이 피부에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개인적으로 ‘야만의 시대’라고 부르는 과거에는 이 문제를 회피하려는 행동을 할 때마다 사회의 우호적이지 않은 시선을 받아 왔지만 현대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멜라닌이 부족한 유전적 특성은 낮은 시력과 함께 나타나는데 이로 인한 경험들은 별도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