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 한 걸 어떻게 가계부에 기록할까

어떤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일단 글을 써 보라든가 돈을 아끼려면 우선 가계부를 써 보라는 말을 종종 보는데 이 둘 다 별로 도움이 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저 두 가지 모두를 오랫동안 해봤는데 별로 도움이 된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글쓰기는 글 쓰는 날이라고 이름 붙인 일정을 통해 매주 주말 중 하루에 시간을 들여 이전에 기록했던 생각을 골라 집중적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높은 텐션으로는 9개월째, 적당히 쓰고 싶은 주제가 생길 때마다 글을 쓴 것으로 말하면 블로그를 20년 넘게 유지해 오고 있는데 그렇게 쓴 글들이 일상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 알기 쉽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예 아무 것도 쓰지 않고 있을 때에 비해 뭔가를 쓰면 그 주제에 대해서는 미리 한 번 생각해 본 상태여서 그 주제로 다른 글을 쓰거나 그 주제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아주 조금 덜 당황할 수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전문가가 될 만큼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가계부 역시 후잉가계부를 10년 넘게 사용해 왔는데 그래서 이 습관이 돈을 아끼는데 도움을 줬는지 생각해보면 별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마치 신용카드 명세서를 보며 항목 하나하나는 내가 사용한 작은 금액이 맞는데 합계는 갑자기 한 1억원쯤 되는 상황을 가계부를 통해 알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또 돈을 아끼기보다는 돈을 더 이상 아낄 수는 없음을 재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될 뿐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스스로 글을 쓰고 또 가계부를 쓰지만 이 습관이 도움이 된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아. 그건 그렇고 오늘의 고민은 여러 사람과 함께 돈을 쓴 다음 정산한 다음 이를 가계부에 어떻게 기록해야 할 지에 대한 것입니다.

한번은 다른 분들과 파티를 짜서 멀리 여행을 갔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다니다 보면 한 사람이 결제를 담당한 다음 나중에 정산을 하곤 합니다. 한 사람이 모든 결제를 하다가는 순식간에 신용카드 한도를 초과할 수도 있으니 상황에 따라 멤버들 각각이 적당히 결제를 한 다음 나중에 한 사람이 모든 결제 기록을 모아 각자 얼마 씩 썼고 또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줘야 모두가 같은 금액을 지출하게 되는지 계산해 공개하면 이에 따라 멤버 각각이 서로에게 돈을 보내고 받아 정산을 마무리합니다. 이전 시대에 총무 한 명이 결제를 도맡거나 미리 회비를 걷어 회비를 지출하는 것에 비해 훨씬 사용하기 간편하고 나중에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줘야 하는지 계산을 담당하는 한 명만 잠깐 머리를 쓰면 모두가 대체로 편안한 방법입니다.

이번 여행의 정산을 마무리하고 보니 정산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지만 이를 가계부에 기록하는 것은 이전부터 고민해 왔고 여전히 깨끗하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계부를 기록하며 여러 가지 의문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가령 이전에는 여러 가지 구독 서비스를 가계부에 어떻게 기록해야 할 지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이클라우드 드라이브 같은 것은 통신비에, 넷플릭스는 여가비에, AWS는 여가비용 하위의 별도 항목에 기록하는 식으로 각 비용의 실제 역할에 가까운 항목으로 기입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내가 여러 사람이 쓴 돈을 한 번에 지출한 다음 나중에 각자로부터 정산 받을 때 이 돈을 가계부에 기록할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은 후잉가계부 기준으로 정확한 기록 방법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가령 1인당 1만원인 식당에서 네 명이 식사를 한 다음 내가 신용카드로 4만원을 결제한 다음 나중에 각자로부터 1만원씩 총 3만원을 돌려 받은 시나리오를 생각해봅시다.

만원식당에서 네 명이 식사하고 내 신용카드로 결제했지만 이 때 지출한 4만원은 모두 같은 항목으로 지출한 것이 아닙니다. 1만원은 내 식비로 지출했지만 나머지 3만원은 내 식비가 아닙니다. 하지만 내 신용카드로 4만원이 지출되었으니 이를 기록하기는 해야 합니다. 그래서 총 4만원 짜리 신용카드 사용 기록을 항목에 따라 둘로 나눠 1만원은 내 식비로, 나머지 3만원은 기타비용으로 지출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3만원을 정산 받으면 이 돈은 계좌에 증가했지만 수익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돈은 그냥 기초잔액 항목을 통해 잔액을 조정했다고 기입합니다. 이렇게 하면 신용카드 합계 금액을 맞추면서 각 금액 별 사용처를 명확히 할 수 있고 정산 받은 금액을 수익으로 잘못 기록해 통계가 이상해지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거래서 여행 기간 도중 여러 건이 발생했고 각 이벤트 별로 돈을 쓴 사람이 서로 다르며 정산을 그때그때 하지 않고 위에 소개한 대로 나중에 한 번에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위 원칙에 따라 모든 항목을 위와 같은 방법으로 기록하는 것이 당연한 방법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록 방법을 어느 정도 타협해 단순하고 간결한 모양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아무리 기록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나라도 어려움을 느껴 기록을 기피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귀찮지만 항상 원칙에 따라 기입해야 할 지 아니면 핵심은 돈의 흐름에 집중하는 것이니 이 핵심 안에서 실제와 조금 다르더라도 각 지출 수단의 금액을 맞추는데 집중해야 할 지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고민 끝에 위 시나리오는 후잉가계부에 그냥 이렇게 기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기록 방법에 따라 원래 1만원만 사용한 식비가 4만원으로 기록되어 통계에는 실제보다 더 큰 식비를 지출한 것처럼 보일 겁니다. 만약 후잉가계부에 왼쪽, 오른쪽 항목 뿐 아니라 별도로 태그를 설정하는 기능이 있었다면 태그를 통해 이 기록들이 특정 ‘여행’ 이벤트를 통해 지출된 것임을 표시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는 않아서 대강 이 즈음에 일어난 이벤트를 생각해 납득할 수는 있는 수준입니다. 식비에 오차가 발생하는 대신 기록이 세 줄에서 두 줄로 줄어들고 정확히 기록하는 시나리오에서 신용카드 지출 두 줄을 기록하기 위해 전체 지출 중 내 몫의 지출과 다른 사람 몫의 지출을 구분해 기록해야 하는 복잡함과 번거로움을 겪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기록할 당연한 방법이 있지만 굳이 정확하지도 않은 방법으로 기록하기로 결정한 가장 현실적이고 솔직한 이유는 귀찮아서입니다. 이를 조금 더 잘 표현하면 방법이 너무 복잡하면 오랜 기간에 걸쳐 안정적인 기록 습관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고요. 이 결정에 만족하지만 한편으로는 맨 처음에 이야기한 가계부를 잘 쓰고 있음에도 전혀 돈을 아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