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이 약한 사람의 컴퓨터 사용

지난주 멜라닌이 없는 사람의 여름나기에서 염색체 이상으로 멜라닌이 없거나 아주 적은 특성은 나쁜 시력과 함께 나타난다고 소개했습니다. 이런 정보를 직접 찾아본 것은 아니었는데 오래 전에 광화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동이 터 올 시간까지 시간을 보낼 때 저와 비슷한 분을 두 분 만났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분들이었지만 딱 보는 순간 거의 같은 속성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한 번은 다른 분이 저에게 말을 걸었고 다른 한 번은 제가 다른 분께 말을 걸었는데 결국 겉모양 말고도 나쁜 시력이라는 특성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특성이 어느 정도 확률로 나타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지만 비슷한 장소에 거의 같은 유전적 특성을 가진 사람이 적어도 세 사람이 모일 수 있다는 점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어느 날 타임라인에 웹사이트를 사용할 때 글자 크기를 키우면 웹사이트를 정상적으로 사용하기 어렵게 되는 체험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시력이 나쁜 사람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소개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로부터 적어도 한국에서는 ‘모든’ 시스템이 평균적인 사람에 맞춰져 있고 이 평균 근처에 있지 않은 사람을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손쉽게 배제하곤 하는데 어릴 때부터 봐 온 컴퓨터를 사용하는 바른 자세, 책을 읽는 바른 자세 그림이 대표적입니다. 의자 등받이에 허리를 대고 꼿꼿이 앉은 다음 고개를 아주 살짝 숙이고 책상 위에 양 손으로 살짝 들어 올린 책을 읽는 자세를 설명하는 그림은 그 자체로는 꽤 그럴싸해 보였지만 도저히 따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림에는 책과 눈 사이 거리를 몇 십 센티미터로 유지하라는 설명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그 자세를 취해 보면 책은 종이와 글씨가 완전히 뭉개져 전혀 읽을 수 없는 희미한 자국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주 어릴 때 학교에서는 책 읽는 바른 자세에 따라 책을 읽도록 교사가 아이들의 자세를 계속해서 훈육했는데 책에 그려진 예쁜 자세에 따라서는 글자를 읽을 수 없어 책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거나 손을 들어 올리면 여지 없이 교사의 지시봉이 들어 올린 책을 '탁' 하고 내리쳐 눈과 책 사이 거리를 벌리곤 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책을 읽는 행동이 항상 그렇게 지적 받았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는 책을 멀리 놓고 바른 자세로 읽는 척 하고 실제 내용은 나중에 교사가 없을 때 글자가 보일 만큼 눈에 가까이 대고 읽었는데 그 시대의 어린 저는 교사에게 제 상황을 설명할 생각을 못 하고 그저 눈에 띌 때는 하는 척 하고 눈에 안 띌 때 제 방식대로 행동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 주로 겪은 수업 방식은 교사가 들고 들어온 아마도 교사 전용 수업 보조 자료일 것 같은 책에 나온 내용을 칠판에 쓰는데 시간을 보낸 다음 학생들이 다 받아 적기를 기다렸다가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기술이 아주 조금 더 발달한 시대에는 흰색 스크린을 내리고 투명한 비닐에 인쇄한 자료를 조사하는 기계로 칠판에 글씨를 쓰는 과정을 대신하긴 했지만 그런 기술을 사용하는 교사는 극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은 일단 누군가에게 진도 나갈 부분의 책을 읽게 시키고 그 사이에 칠판에 책 내용을 복제한 다음 학생들이 칠판의 내용을 다시 노트에 복제하기를 기다린 다음에야 설명을 시작했는데 여기서 문제는 칠판에 글자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학기를 시작할 때 시력이 나쁘다고 설명해 자리를 맨 앞으로 배정 받을 수 있었지만 맨 앞에서도 자리 정면에 있는 칠판에 글씨를 아슬아슬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자리 정면에서 멀어진 위치의 글씨는 잘 안 보였는데 글씨를 작게, 그리고 많은 텍스트를 복제하는 교사들의 칠판은 정면이라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양해를 구하고 아예 앞에 나가 요즘 세상에도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교단 위에 노트를 올리고 칠판을 복제했는데 이제는 칠판 밑에서 올려다 보니 아래쪽 글씨는 보였지만 저 멀리 칠판 위쪽 글씨는 잘 보이지 않는 갑갑한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복제는 텍스트가 기입된 순서 대로 해야 가장 편리하게 할 수 있었지만 자리에 앉았을 때, 앞에 나갔을 때 보이는 칠판 영역은 텍스트가 기입된 순서와는 달랐기 때문에 이를 복제하기 위해 칠판에 안 보이는 부분의 줄 수를 센 다음 - 다행히 몇 줄인지는 보였음 - 그 줄 수만큼 건너 뛴 위치에 눈에 보이는 텍스트를 복제하고 다시 자리에 돌아가 방금 건너 뛴 줄을 마저 채우는 식으로 칠판을 복제했습니다. 어떤 교사들은 제 칠판 복제 방식을 신기하게 보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앞에 나와 있는 사람이 그리 마땅해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볼 땐 의도적으로 노트를 밟고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학교 밖으로 나와 가장 곤란한 점은 버스 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버스는 버스 앞면과 옆면에 아주 작게 버스 번호와 행선지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는데 이 정보를 눈으로 보고 버스에 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제 시야에서는 버스가 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그게 몇 번인지, 또 행선지가 어디인지 미리 파악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칠판과 마찬가지로 버스 행선지표가 제 눈앞에 있을 때는 읽을 수 있었는데 현대에도 그렇지만 버스들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았습니다.

버스는 마치 계속해서 움직여 알아서 달려가 타야 한다고 묘사되곤 하는 인도 기차처럼 완전히 정차하지 않고 정류장을 통과했는데 가까이에서 읽을 수 있는 글자도 움직이기 시작하면 읽기 쉽지 않거나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버스를 수없이 놓친 다음에는 버스 정류장 앞쪽 (버스가 들어오는 곳) 에 서 있다가 버스가 속도를 줄이며 눈앞을 지나갈 때 제 눈과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 사진 찍듯 행선지표를 읽은 다음 제가 타야 하는 버스이면 버스가 속도를 마저 줄이는 사이에 미친듯이 달려가 버스에 타는 식으로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버스를 잘못 타거나 막차를 놓치는 사고는 항상 일어났고요.

2천년대 초반에 새로 선출된 서울 시장님은 시내버스 시스템을 완전히 개편합니다. 그 때는 사람들이 알고 있던 버스 시스템이 한 번에 바뀌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고 기억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꽤 괜찮은 변화였는데 일단 버스가 멀리서도 구분할 수 있는 유채색으로 바뀌었고 버스 도착을 웹사이트를 통해 미리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버스 번호와 행선지표는 전혀 볼 수 앖었습니다. 그나마 이전 시대에는 번호라도 큼직하게 써 있었지만 이 개편 이후에 버스 번호는 동그라미 안에 예쁘게 적혀 있어 이전보다 크기가 작아졌고 검정색 동그라미 안에 반전 색상으로 적혀 있어 시인성이 나빴습니다.

그래서 버스 번호나 행선지 텍스트를 직접 읽는 것은 아예 포기하고 웹사이트를 새로고침 해서 버스 도착 정보를 파악해 이번에 들어올 버스가 몇 번인지 미리 알고 있는 방식으로 이전에 비해 버스를 훨씬 더 잘 탈 수 있게 됩니다. 버스 도착 안내는 계속해서 발전했고 현대 제주도에서는 버스가 정류장에 진입하는 순서마저 미리 알 수 있어 렌터카 없이 대중교통 만으로도 제주도 이곳 저곳을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어 좋았습니다. 후에 이 개편을 이끌었다고 알려진 그 시장님은 더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이 글 맨 처음에 소개한 저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된 그곳에 가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낮은 시력은 책과 칠판, 버스 말고도 문제를 일으켰는데 컴퓨터 화면을 보며 일하는 직업을 가진 이상 컴퓨터가 대표적입니다. 앞에서 적어도 한국에서는 평균에 들지 못하면 여러 모로 어려움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컴퓨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 운영체제와 여러 소프트웨어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시력과 반응 속도, 인지능력 따위를 갖추고 있으리라 예상하고 제작된 것 같습니다. 이들 중 어느 하나라도 갖추지 못하면 컴퓨터를 사용하기 아주 힘들었는데 제게 닥친 문제는 컴퓨터 화면에 표시되는 글자가 작아 읽기 쉽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한 초기 시대에는 해상도 자체가 높지 않아 글자가 그렇게 까지 작지 않았지만 기술이 발달해 해상도가 점점 올라가자 글자가 점점 더 작아졌습니다. 높은 해상도는 화면에 더 많은 정보를 표시해 작업을 원활하게 만들었지만 글자를 점점 더 작게 만들어 컴퓨터를 사용해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의 인생을 위기에 빠뜨립니다.

처음에는 운영체제에서 제공하는 시스템 수준의 글자 크기 조절 기능과 웹 브라우저에 있는 글자 크기 조절 기능을 활용하려고 했는데 이 두 가지 기능 모드 전혀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일단 운영체제 수준에서 글자 크기를 조절하면 글자가 커지긴 커지는데 이 기능을 만든 사람들은 이 기능이 시력이 나쁜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전혀 모른 상태로 기능을 만든 것 같습니다. 시력이 나쁘다는 것은 컴퓨터 식으로 말하면 세상의 해상도가 낮아진다는 말과 크게 틀리지 않는데 해상도가 낮아지며 글자를 구성하는 획의 색상이 옅어집니다. 그래서 획 굵기를 조절하지 않고 그냥 텍스트를 키우면 글자가 커지기는 하지만 시력이 나쁜 사람 입장에서 글자를 구성하는 획은 여전히 아주 가늘거나 어른거리는 상태를 유지한 채로 글자만 커져 글자가 커졌다는 사실을 알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글자를 읽을 수는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나마 윈도우 운영체제를 개발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들은 이 시스템 수준에서 글자 크기를 조절하는데 대응해 쓸모는 없지만 글자가 커지기라도 했지만 다른 소프트웨어들은 화면이 완전히 박살나 그냥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다들 윈도우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 화면에 텍스트를 어떻게 표시하고 있는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잠깐 동안 비주얼 베이직으로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본 경험에 비춰 보면 폼 위에 텍스트를 표시하는 위치를 지정하는 ‘레이블’ 컴포넌트를 올려놓고 크기를 조절한 다음 이 안에 텍스트가 예쁘게 표시되도록 글꼴 설정을 하게 되는데 시스템 수준에서 글자 크기를 바꾸면 레이블 컴포넌트가 차지하는 영역은 그대로인 상태로 글자 크기가 커져 글자 대부분이 레이블에서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웹브라우저에서 화면 배율을 조절하면 글자 크기가 커지더라도 레이블 컴포넌트처럼 제한된 영역 안에서 커져 글자가 사라지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위에서 설명한 글자 획 굵기는 그대로 둔 채 글자 크기만 키워서는 시력이 낮은 사람의 요구사항을 전혀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며 화면 상의 글자 크기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화면을 확대하는 방식은 시력이 나쁜 사람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식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강한 선입견을 가졌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운영체제와 그 위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 모두 그럭저럭 이전 시대에 비해 다양한 환경에서 서로 다른 크기로 글자를 표시하면서도 인터페이스가 망가지지 않도록 개선되기는 했지만 항상 완벽하지는 않았고 완벽하지 않은 이상 컴퓨터를 편안하게 활용할 수 없었습니다. 가령 웹 브라우저에서 글자 크기를 키우면 컨텐츠 영역의 글자는 커졌지만 이를 둘러싼 타이틀, 메뉴, 주소표시 등의 인터페이스 영역은 그대로 였기 때문에 여전히 브라우저를 원활하게 사용할 수 없었고 이는 어떤 소프트웨어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 극적으로 도움을 준 소프트웨어는 마이크로소프트 마우스 드라이버인 마이크로소프트 인텔리포인트에 포함되어 있던 돋보기 기능이었는데 당시 윈도우에 내장된 돋보기 기능은 마우스 커서 주변의 영역을 확대한 결과를 화면 상단의 고정된 위치에 확대해서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글자 크기를 키우는 대신 화면 자체를 확대해서 보여줬기 때문에 도움은 됐지만 마우스 커서 주변 영역을 마우스 커서와 동떨어진 화면 상단에 고정해 보여줘 컴퓨터를 원활하게 사용하려면 화면의 두 장소를 동시에 쳐다봐야 했는데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인텔리포인트 드라이버를 설치하면 마우스 버튼 중 하나에 돋보기 기능을 할당할 수 있었는데 이 돋보기는 ‘렌즈’ 모양으로 마우스 커서를 중심으로 원하는 영역 안에 원하는 배율로 화면을 확대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돋보기는 마우스 커서를 따라다녀 동시에 두 곳을 보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고 상황에 따라 렌즈 크기를 조절할 수도 있어 편리했습니다. 특히 화면에 나타난 거의 모든 요소를 제약 없이 확대해 준 덕분에 깨알같이 표시되는 인게임 채팅을 하는데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기능을 계속해서 사용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마우스만을 사용해야 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이 돋보기보다 더 나은 화면 확대 수단이 등장하지 않아 마이크로소프트 마우스만을 사용하는 인생이라도 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도구를 무척 오랫동안 사용해 왔는데 현대에는 이 기능이 마우스 드라이버에서 윈도우 운영체제로 옮겨져 마이크로소프트 마우스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전히 이 돋보기 기능은 적어도 십 수년은 된 돋보기가 켜진 상태로 윈도우가 잠기면 마우스 커서가 초기 상태도 아닌 이상한 상태로 바뀌거나 갑자기 돋보기 앱이 CPU를 마구 먹으며 컴퓨터가 느려지거나 한 앱에서 여러 번 돋보기를 켰다 껐다 하면 다른 앱으로 전환할 때까지 돋보기가 응답하지 않는 등의 버그가 여럿 있고 아마도 영원히 수정해 주지 않을 것 같지만 버그를 회피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 마이크로소프트가 갑자기 미쳐서 돋보기를 없애지만 않는다면 윈도우 운영체제 상에서 여러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맥에서도 화면을 확대하는 기능이 있는데 특히 설정을 켜면 컨트롤 키를 누른 상태로 터치패드를 위, 아래로 스와이프 해서 화면 전체를 확대할 수 있는데 이 기능도 화면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윈도우 돋보기 처럼 게임 화면이나 동영상 화면 따위를 구분하지 않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맥에서 화면을 확대하면 안티앨리어싱을 위해 글자 주변에 뭉개진 효과가 두드러져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글자를 읽는데는 지장이 없어 맥을 사용할 때 항상 이 기능을 사용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윈도우 돋보기 기능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맥에서 화면 전체를 확대하면 확대된 영역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화면 전체를 스크롤 해야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맥은 좀 더 나중에 윈도우 돋보기의 렌즈 모드에 해당하는 기능이 생김) 가령 윈도우든 맥이든 화면 한쪽에 태스크바 혹은 독이 있어 이 곳에 어떤 앱이 실행 중인지, 또 각 앱이 어떤 상태인지 표시되는데 화면 전체를 확대하면 이런 인터페이스를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특히 맥은 하단의 독과 상단의 메뉴바를 동시에 봐야 하는데 화면 전체를 확대하면 이 두 인터페이스 모두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 화면의 글자를 읽을 수 있다는 점 외에 실제로 인터페이스를 조작하기에는 불편했습니다.

아이폰을 시작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맥 돋보기가 생각보다 훌륭하지 않은 것에 비해 아이폰 돋보기는 비슷한 방식을 사용하면서도 훨씬 사용하기 편리했는데 이는 기기의 화면 영역이 좁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이폰에서 돋보기 옵션을 켜면 손가락 세 개로 화면을 두 번 두드려 돋보기를 활성화 할 수 있는데 기본값은 맥에서처럼 화면 전체를 확대하지만 손가락 세 개로 화면을 쓸어 스크롤 할 수 있고 그 화면이 맥처럼 넓지 않기 때문에 작은 글씨를 읽기에 상당히 편리합니다. 오히려 아이폰에서는 윈도우에서 편리하게 사용하던 ‘렌즈’ 방식의 돋보기가 오히려 불편했는데 그렇잖아도 좁은 영역에 돋보기를 띄우면 돋보기 안쪽과 바깥쪽을 함께 조작하기가 오히려 불편했습니다.

윈도우에서도 맥에서도 아이폰에서도 여전히 온갖 소프트웨어는 운영체제 수준에서 글자 크기를 조절하거나 글자 굵기를 변경하거나 스크린 리더로 화면을 읽거나 하는 온갖 시도에 지독할 정도로 엉망으로 동작합니다. 어떤 앱은 시각적으로는 멀쩡했지만 글자 크기를 바꾸자 인터페이스가 화면 밖으로 튀어나가 사용이 불가능해졌고 또 다른 앱은 스크린 리더를 적용하자 화면에 아무 글자도 없었습니다. 아니 그럼 지금 눈에 보이는 이건 글자가 아니면 뭐란 말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떤 앱들은 보기 좋으라고 그런 것인지 주요 인터페이스에 나타나는 글자를 모두 이미지에 기반한 예쁜 글꼴로 만들어 글자 크기 조절에 반응하지 않았고 또 어떤 앱은 스크린 리더를 적용하자 의도하지 않은 접근이라며 앱을 꺼 종료해 버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폰 돋보기의 화면 전체 확대, 윈도우 돋보기의 화면 일부만 확대하는 렌즈 기능 정도가 시력이 약한 사람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의미 있는 기능이고 그 이외에 운영체제 수준에서 글자 크기를 조절하거나 웹 브라우저가 컨텐츠 영역의 배율을 조절하거나 소위 접근성 인증을 받았다는 앱들의 ‘모든’ 기능은 이런 기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검수된 듯 실제 시력이 나쁜 사람 관점에서 일말의 쓸모도 없었습니다.

다시 위에서 어느 분의 할머니께서 웹으로 뭔가 작업을 하셔야 하는 상황으로 돌아가면 아마도 글을 쓰신 분 역시 평소에 화면을 확대해 볼 일이 없으셨을 것 같기는 합니다. 만약 평소에 화면을 확대해 볼 일이 있었다면 그런 기능이 실제 글자를 크게 보고 싶은 사람 입장에서 얼마나 의미 없이 만들어져 있는지 미리 아실 수 있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부기관 뿐만 아니라 현대에 웬만한 웹사이트는 반응형 웹을 적용해 글자를 확대하려고 하면 ‘화면이 좁아졌다’고 판단해서인지 레이아웃이 변해 방금 보려던 인터페이스가 갑자기 화면 하단으로 밀려나 사용하기 어렵게 변하기도 하고 텍스트로 멋을 낸 타이틀은 그 큰 크기의 배율에 따라 확대되어 거대하게 변해 화면 밖으로 날아가 버리기도 합니다.

안전하게 화면 상의 글씨를 크기 만드는 방법은 이 기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기능이 어떻게 사용될 지 고민하지 않고 만들었을 것 같은 기능을 사용하는 대신 화면 구성요소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소프트웨어 바깥에서 화면 전체를 대상으로 확대하는 방법 뿐입니다. 윈도우 돋보기의 렌즈 모드, 아이폰 돋보기의 전체화면 확대 모드는 둘 다 인터페이스 구성요소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은 채로 화면을 직접 확대해 인터페이스를 깨지 않고 화면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윈도우에서는 렌즈 내부만을, 아이폰에서는 화면 전체에 전체 인터페이스의 일부분만을 볼 수 있어 답답하기는 하지만요.

결론. 여러 컴퓨터나 스마트폰에는 시력이 나쁜 사람을 배려한 글씨를 크게 만드는 기능이 내장되어 있지만 이 기능은 지난 수 십 년에 걸쳐 단 한 번도 의미 있게 동작한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이 기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검수 되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현대에 시력이 나쁜 사람이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 윈도우 돋보기의 렌즈 모드, 아이폰 돋보기의 전체화면 모드가 유의미한데 이유는 화면 상에 전혀 사려 깊지 않게 만들어진 인터페이스에 영향을 주지 않고 화면을 확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근본적으로 화면의 일부를 확대하고 나머지를 보기 위해 화면을 스크롤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시력이 나쁜 사람이 여전히 컴퓨터를 사용해 돈을 벌 수 있게 하는데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앞에서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저를 광화문에 나가 있게 만들었던 에피소드 이후 일본의 어느 민박집에서 피식거리지 않을 수 없는 피켓을 만나게 됩니다. 대체 이 피켓이 대체 이런 장소에 고이 보존되어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