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작별인사를 준비하며

고백하면 인디애나존스 시리즈를 좋아하지만 인디애나존스 시리즈가 출시될 때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습니다. 첫 3부작이 마무리될 때도 여전히 영화관에 갈 수 있을 만한 나이는 아니었고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영화관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는데 이유 중 하나는 지방의 아주 조그만 도시에는 아무리 양보해도 제대로 된 영화관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도시에서 나지는 않았지만 자라는 인생의 절반 동안을 그 도시에서 보냈는데 현대에는 구도심이 된 옛 중심가에는 무슨 극장이 있기는 했었지만 또 극장에 가려니 용돈이 넉넉하지 않았고 또 무슨 영화가 개봉되어 있는지 알기도 어려웠습니다. 어쩌면 그 극장 앞을 직접 지나다녔다면 영화 간판을 보고 무슨 영화가 상영 중인지 알 수 있었을 텐데 집과 학교 사이를 오가는 동선과 영화관은 서로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공중파에서 수 년에 걸쳐 인디애나존스 시리즈를 여러 번 더빙해서 방영했는데 그 때 한 번 보고 영화 뿐 아니라 영화 속 캐릭터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영화에 나오는 여러 캐릭터들은 모두가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고 지금 생각해봐도 단순하지 않은 캐릭터들이었으며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그렇듯 대공황과 세계 대전으로 인한 암울한 면 보다는 벨 에포크 시대의 유산을 매력적으로 보여주는데 크게 매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공중파를 통해 그렇게 여러 번 방영해 주는 동안 VHS 미디어에 녹화했다가 대사를 외우도록 여러 번 돌려 보곤 했는데 덕분에 공중파에서 영화를 더빙해서 방영할 때 성우들이 한 번 더빙한 다음 그 결과를 여러 해에 걸쳐 여러 번 반복해 방영하기도 하지만 뭔가의 이유로 같은 성우들이 다시 모여 다른 대본으로 다시 더빙해서 방영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클래식 인디애나존스 3부작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은 너무 단순하지도 않지만 또 지나치게 복잡하지도 않은 적당히 매력적이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또한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장르와 그 시대와 캐릭터들 사이의 관계를 가장 잘 드러냈다고 생각하는 장면은 3편에 나오는 ‘No Ticket’과 ‘Indie meets Hitler’라고 생각합니다. 대공황에 이은 세계 대전의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이 시리즈의 장르는 액션이자 코미디이며 때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제국주의와 제3세계, 추축국과 나치 같은 심각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나머지 거의 모든 부분은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장면들로 가득한데 이 사실을 잘 표현한 장면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미 다 본 것 같지만 계속해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영화 프랜차이즈에는 스타워즈가 있었는데 스타워즈 7편이 오랜 세월 끝에 상영할 때 지금이야말로 나만 빼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볼 때라고 생각해 유튜브에서 스타워즈 시리즈를 헐값에 구입해 보다가 아무 사전 정보 없이(하지만 1편부터 보진 않았음) 마주친 해리슨 포드의 젊고 껄렁해 보이는 모습에 적응을 못 해 한참이나 황당해 한 적도 있습니다. 제 마음 속 배우 해리슨 포드의 가장 큰 역할은 인디애나존스와 도망자에 머물러 있었고 이 이미지와 아주 멀지 않은 캐릭터들은 호감을 가지기 어렵지 않았지만 한 솔로는 암만 생각해도 호감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인디애나존스는 한 배우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완전히 각인 시키고 또 그런 세계의 암울한 면을 잘 감추고 매력적인 시대와 세계로 인식하게 해 줬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이후 바이오쇼크 시리즈를 받아들이는데 영향을 끼칩니다.

한편 이미 클래식 인디애나존스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 1989년작이어서 이 시리즈가 다시 나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시리즈의 마지막으로부터 온전히 20년이 지나기 전에 다음 편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성장기에 공중파를 통해 보고 성장기의 어느 작지는 않았을 한 축을 이뤘을 그 영화의 다음 편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이상한 이야기였을 겁니다. 다만 그 때는 일을 시작하고 오래 지나지 않을 때였는데 한창 회사에서 밥 냄새를 맡으며 정신이 나가기 바로 직전까지 일하고 있을 때여서 영화를 기대했지만 막상 영화를 보러 갈 시간과 돈과 정신력이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같은 팀에 아트 팀 시니어님 한 분이 ILM의 기원과 스타워즈 시리즈의 위대한 탄생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시곤 했는데 이 분 역시 체력은 간당간당했지만 회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코엑스 지하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냥 집에 가서 자고 싶다는 욕구보다 새 인디애나존스를 보겠다는 의지가 더 큰 아주 짧은 순간에 간신히 일을 마치고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각에 테헤란로의 밤공기를 마시며 코엑스까지 걸어갑니다. 그리고 그 날 저는 이 오래 된 영화 시리즈가 성장기에 제 마음 속에 구축한 한 세계와 작별을 고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은 사람들을 변하게 만들고 이는 종종 원숙함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또 다른 면으로는 성장기 때 본 그런 유쾌한 모험은 더 이상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짧지는 세월이 흐른 다음 그 영화의 다음 편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고 이제는 천하의 해리슨 포드 조차도 첫 영화를 찍을 때 했다고 전해지는 이 시리즈를 다섯 편 찍을 거라는 계약을 그 나이를 먹고서도 지켜야만 하는 것인가 싶은 계약의 무서움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하고 또 도대체 성궤, 샹카라의 돌, 성배, 그리고 외계인 까지 마주친 인디가 이제 더 이상 무엇과 마주칠 작정인지 궁금하면서도 또 허탈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잘 만들어진 티저 트레일러는 클래식 인디애나존스를 흥미롭게 만들었던 여러 영화적 장치를 답습해 관심을 끌었고 최신 그래픽 기술을 동원한 인디 본인과 매력적인 시대를 표현해 나름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솔직히 테이블에 채찍을 휘둘러 모두에게 겁을 줬지만 뒤이어 모두가 총을 꺼내 드는 장면이 너무나 인디스러워서 낄낄거린 것도 사실입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시대에 나치와 대립하던 존스 박사의 이야기를 40년 쯤 전에 처음 접했는데 이제 40여년이 흐른 서기 2023년 여름의 인디는 아직도 죽은 지 80년이 다 되어 가는 히틀러와 아직도 싸우고 있다는데 실망과 좌절과 한심함과 한숨과 웃음과 허탈함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제가 정의하는 클래식 인디애나존스 시리즈, 그리고 지난 2008년의 나름 모던 인디애나존스의 장르는 액션 코미디입니다. 때때로 좀 더 심각한 이야기를 할 때가 없지는 않지만 야라와 실제 세계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의 전이에서 설명한 실제 세계와 실제 역사와는 조금씩 어긋나는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이 세계가 실제 하지 않아 이 영화 속 가상 세계에서 일어나는 때로는 잔인한 여러 장면들을 웃어 넘길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가령 이 세계에서 중절모는 절벽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는 이상 머리에서 절대로 벗겨지지 않고 주먹질을 할 때는 고깃덩어리에 방망이를 휘두르는 소리가 나며 작은 권총을 쏠 때마다 엽총 쏘는 소리가 나고 또 독일군과 이집트의 암살자들은 인디의 주먹, 채찍, 총, 칼에 맞아 타격감 있게 죽어 나가는 모습은 분명 사람이 잔인하게 죽는 장면인데도 이 장면을 보고 웃은 다음 영화가 끝난 다음에는 다시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 보통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런데 서기 2023년 여름 현재 현대의 액션 코미디 영화는 양극화 되어 있고 새 인디애나존스는 이들 중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은 애매한 위치에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인디애나존스 프랜차이즈 자체가 애매한 위치였던 것은 아닙니다. 이 프랜차이즈는 한때 액션 코미디 영화의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마블 영화로 대표 되는 대단하고 환상적인 화면을 보여주지만 그 안에 등장하는 액터들은 최신 그래픽 작업을 위한 소스를 만들기 위해 크로마키 앞에서 열연 했을 것이 틀림 없어 보이는데 이런 영화들이 액션 영화의 한쪽 끝에 있습니다. 다른 한 쪽 끝에는 액터들의 안전을 위해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고 그 외에는 액터가 직접 웬만한 스턴트를 소화해 내며 이 사실이 영화를 홍보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존윅이나 미션임파서블 같은 프랜차이즈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쪽 끝에 있는 영화들은 장면 하나하나가 대단하고 아름답지만 액터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그들을 둘러싼 가상 세계와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 이질감을 불러일으켜 관객이 상황 하나하나에 몰입하기 보다는 그 장면들이 모인 전체적인 서사에 집중하도록 합니다. 한편 다른 쪽 끝에 있는 영화들은 바로 이 액터들의 행동 하나하나와 그들을 둘러싼 세계 사이의 이질감이 아예 일어나지 않도록 액터를 둘러싼 세계를 실제 세계의 한 시점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스턴트 대부분을 직접 소화한다고 알려진 존윅 시리즈나 미션임파서블 시리즈가 여기에 속하고 또 영화 전체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었으면서도 액터들이 물 속에서 연기할 때 물의 무게감이 몸짓에 충분히 표현되지 않아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는 점을 해결하기 위해 액터들을 물 속에 집어넣고 모션 캡처를 한 아바타 2 같은 영화도 있습니다.

현대의 액션 영화는 이렇게 완전히 양극화 되어 있고 액션 장르라지만 어느 한 쪽으로 쏠려 있지 않은 영화들은 뭐 액션이긴 한데 그렇다고 대단하고 신비롭고 또 아름다운 화면을 보여줄 것도 아니고 또 영화 속 액터의 표정이 진짜 본인 힘을 써서 이륙하는 수송기에 매달린 표정으로 관객들 마음을 졸이게 만들 것도 아니라면 굳이 그걸 영화관에 비싼 돈 내고 그 앞뒤로 짧지 않은 시간을 들여 가며 봐야만 할 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런 시대에 다시 돌아온 새 인디애나존스는 양극화된 액션 코미디 영화의 양 쪽 중에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이도 저도 아닌 위치에 있을 뿐입니다.

실은 지난 주말에 가까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볼까 말까 엄청나게 고민했는데 이 계절에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결정은 휴일 저녁 시간에 이 미친 더위와 습한 공기를 뚫고 대중교통을 타고 한참을 이동한 다음 거대한 백화점 건물의 미로 속을 통과한 다음 팝콘 냄새 진동하는 거대한 로비를 통과해 어둡기는 하지만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떠드는 소리,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는 밝은 폰 불빛들 속에서 영화를 볼 각오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한참이나 영화관의 별로 크지도 않은 스크린에서 상영하는 인디애나존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앱을 닫고 한숨을 쉬고 말았습니다. 서기 2023년의 인디애나존스는 한때 제 성장기의 어떤 부분을 구축해 냈고 지독한 야근 사이에 시간을 내 잠 잘 시간을 쪼개 보러 가던 그런 영화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팀 회의를 하다가 잠깐 잡담을 할 만한 타이밍이 됐을 때 혹시 인디애나존스 보신 분 있느냐고 물었고 그 분으로부터 이번에 인디애나존스 신작을 봐야 하는 이유는 이전 인디애나존스 팬들이 이제 마지막으로 인디를 절대적이고 또 상대적인 시간이 흐르는 이 거대한 우주 속에 놓아 줄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의식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들었고 이제 그런 시대가 되었음을 실감했습니다. 결국 아마도 주말 어디 즈음에 시간을 내서 집 근처에 있는 영화관에 위에 설명한 여러 자원을 소모해 가며 영화 관람을 방해하는 수많은 주변 사람들이 둘러싸여 인디와 작별 인사를 할 겁니다.

최근 디아블로 4를 구입하면서 이전에 함께 일했던 멤버들로부터 ‘디아 재밌나여?’ 란 질문을 받았는데 문득 저는 이 게임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구입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역시 성장기의 어떤 부분을 구축하는데 기여한 그 게임의 신작이 나왔으니 그게 재미가 있든 말든 그저 반사적으로 구입해 반사적으로 플레이 하고 있다고 대답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솔직히 썩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직업적인 이유로 왜 이 게임을 제가 재미 없다고 느끼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조만간 그 이야기도 글로 남길 계획입니다. 그 글은 아마 그리 친절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돈을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인디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는데 돈을 지불하고 나면 이 애매모호한 기분을 좀 더 직설적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결론. 인디애나존스 시리즈는 성장기에 자신의 일부를 구축하는데 기여한 영화입니다. 그 영화의 2008년 신작은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으며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누구에게나, 무엇에게나 시간은 흐른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현대 액션 코미디 영화는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환상적인 장면을 통해 장면 하나의 몰입보다는 영화 전체의 사서 중심으로 풀어 나가는 부류와 액터의 안전을 위해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액터가 직접 스턴트를 소화해내며 촬영해 장면 하나하나에 몰입하게 만드는 부류로 양극화 되어 있으며 어느 한쪽에 가깝지 않으면 썩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새 인디애나존스는 아마도 인디와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는 의식이 될 겁니다. 아직 안 봤으니 지금 작별 인사는 좀 미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