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폴리오 문서의 독자 고려 전략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고려한 제목은 ‘대체 포폴에 무슨 이야기를 써 낼까’였는데 아웃라인을 쓰고 나서 제목을 ‘포트폴리오 문서의 독자 고려 전략’으로 바꾼 다음 두 제목의 온도차가 너무 커서 웃겼는데 사람들을 낚는 관점에서 바꾼 제목을 유지하려고 하니 미리 양해를 부탁 드립니다.

항상 트위터에서 쿨타임 되면 지나가는 주제 중 하나에는 게임 업계에 처음 진입하려고 할 때, 혹은 업계 내에서 이직 하려고 할 때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작성해야 할 지 전혀 모르겠다는 내용입니다. 학교 커리큘럼을 충실히 이행해 온 사람 입장에서 난데 없이 포트폴리오를 요구하면 지금까지 이런 소리를 제대로 들은 적도 없고 다른 포트폴리오를 볼 일도 없었으며 혹시 포트폴리오를 본다 하더라도 그게 올바른 방법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때때로 유명한 상용 개발환경에서 뭔가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기획서를 바닥부터 작성하기는 어려우니 다른 게임의 소위 역기획서를 써 보기도 하지만 이런 자료를 포함한 포트폴리오가 적당한 것인지 아닌지 알 방법은 사실상 없어 보입니다.

지난 이직 때도 포트폴리오 준비하기 어려움에 투정을 부린 적이 있고 실제 개발로 연결되지 않을 구직에 사용하기 위해 작성하는 이른바 포트폴리오용 기획서 작성에 대한 가혹한 의견을 보고 포트폴리오 기획서는 의미 없지 않아요 라고 말한 적도 있었으며 합격한 포트폴리오 모아 놓은 곳이 있느냐는 질문에 꽤 동의한다는 의견을 말한 적도 있습니다. 오히려 처음 이 업계로 옮겨 올 때는 뭣 모르고 아무렇게나 작성한 포트폴리오가 그냥 운이 좋아서 통과된 다음부터는 이전까지 했던 일을 어떻게 이리 저리 끼워 맞춰 작성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게임디자인 입장에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은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은 타임라인을 지나가다가 여러 게임의 역기획서와 여러 분야의 기획서, 작은 개발 경험 등을 갖추고 계시지만 아직 기회를 찾지 못하신 분의 고민을 보게 됐는데 문득 개인적인 관점에서 회사에 나를 광고하는 문서를 내고 그 문서가 회사의 관심을 끌기 위한 전략을 정리해 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야기 했듯 게임디자인 입장에서 포트폴리오 문서를 만들기 쉽지 않은 이유는 뭔가 정형화된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서를 검토하는 입장에서도 문서를 검토할 기준을 정립하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소위 ‘'이 오는 문서와 이를 작성한 분을 찾아내는 스킬이 생기긴 하지만 이를 깃헙 리파지토리 주소, 좋은 코딩 스타일, 다양한 프로젝트에 기여, 기술에 대한 관심사처럼 직접적인 요구사항으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는 ‘개인적인 기준에 불과하다’는 제한을 걸고 신입이든 이직이든 포트폴리오를 작성할 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고려할 만한 점, 그리고 스스로가 서류를 검토할 때 관심을 가지는 점 등을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포트폴리오 문서의 핵심은 이 문서를 통해 문서를 작성한 내가 대단함을 설명하는 문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원한 분들 대부분은 뚜렷한 결격 사유가 있지 않다면 이미 다들 대단하고 훌륭합니다. 다들 흔한 메커닉을 유니티 기반으로 만들어낼 수 있고 기술적으로 이해가 조금 더 깊은 분들은 멀티플레이 가능한 게임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누군가는 이를 플레이스토어에 올려 문서에 ‘이 주소에서 받아 플레이 할 수 있다’고 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무슨 공모전 입상 경력이 있고 자신이 만든 작은 게임을 유명한 게임 유튜버가 소개한 영상을 걸어놓기까지 합니다.

이런 문서를 검토하다 보면 당장 집어치우고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이 상황의 핵심은 포트폴리오 문서는 내가 대단함을 설명하는 문서가 아니라 문서를 검토하는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한 문서라는 점입니다. 이미 모든 지원자는 충분히 대단합니다. 이 상황에서 내가 더 대단하다고 이야기해봐야 들인 노력에 비해 그 차이가 적어 변별력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포트폴리오 문서는 내 자신의 대단함을 표현하는 문서가 아니라 문서를 검토하는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입니다. 구인 하는 프로젝트는 모두들 그 나름의 목적이 있습니다. 개발의 어느 시점에 일을 하다가 어떤 상황에 인력 부족을 느끼거나 예측했고 그에 따라 인력을 채용하려 하는 겁니다. 상황을 편하게 만들려면 경력직을 채용하면 좋겠지만 2023년 여름 현재 업계에 좋은 경력직을 이직 시켜 채용하기는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어렵습니다. 돈을 두 배 준다고 하면 부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이를 회사에서 납득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신입을 채용해 교육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사실 신입 직원은 문서를 통해 그 분이 아무리 대단한 분임을 어필하더라도 기대하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일단 들어오시면 바닥부터 일을 배우셔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는 한 명 몫은 커녕 보나마나 0명 미만의 역할을 하게 되며 이건 특별히 잘못된 상황이 전혀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류를 검토하는 사람의 관심사는 지금 자신이 채용하려고 하는 분이 제출하신 문서로부터 자기 자신의 관심사를 투영해 교육 비용이 얼마나 낮을 지를 검토하는 것입니다. 말이 좀 길고 복잡한데 간단히 교육 비용이 얼마나 낮을지, 달리 말하면 관심사가 얼마나 비슷한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만약 흔한 한국식으로 강한 성장과 경쟁에 초점을 맞춘 모바일 MMO 게임을 개발하는 팀에서 구인을 하고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구직자 분들의 서류를 검토하는 사람은 아마 방금 전까지도 흔한 모바일 MMO 게임에 들어갈 온갖 시스템을 고민하고 개발 과정을 관리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하는 게임 말고 집에 가서 쉬며 할 법한 싱글플레이 게임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들은 결코 만들 기회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는 게임 리뷰, 역기획서를 접해도 이 문서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 눈에 알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같은 상황에서 비슷한 장르 게임을 플레이 한 경험에 기반한 리뷰나 비슷한 장르의 이미 출시된 다른 게임의 일부에 기반한 역기획서를 접한다면 방금 전까지 하던 고민의 연장으로 문서에 좀 더 집중하고 이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지금 개발하는 프로젝트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부분에도 관심을 가지게 될 겁니다.

이는 문서를 작성하는 근본적인 이유로 돌아가게 되는데 바로 문서는 누군가에 의해 읽히기 위해 작성하는 것입니다. 만약 나 혼자 사용하는 개인 위키에 문서를 작성한다면 이 문서는 미래의 내가 읽게 됩니다. 그러면 미래의 내가 이 문서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내 요구사항에 맞춘 문서를 작성하면 미래의 내가 지금 이 순간 과거의 나에게 감사할 일이 생길 테고 그럼 이 문서는 자기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습니다.

만약 문서를 읽을 사람이 확실하지 않다면 나는 이 가상의 독자에 이입해 독자의 요구사항을 추측해 보고 이에 맞춰 문서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PC MMO 게임 개발팀에서 신입 기획자를 채용하려고 한다면 어쩌면 이 팀에 제출한 내 포트폴리오를 검토하는 사람은 이 프로젝트의 기획 부서에 중간 관리자이거나 상위 관리자일 겁니다. 이들은 같은 장르의 비슷한 다른 게임의 여러 요소들을 좋든 싫든 주의 깊게 관찰하고 프로젝트에 맞는 요구사항을 정의하고 개발을 진행하는데 골머리를 앓을 겁니다. 그렇다면 포트폴리오의 가장 중요한 점은 이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을 만한 주제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적어도 비슷한 장르의 다른 게임에 기반한 문서일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길 텐데 그러면 서로 다른 장르, 다른 플랫폼에 기반한 게임을 개발하는 서로 다른 회사와 프로젝트에 제출할 포트폴리오를 제각각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인지 의심이 들 겁니다. 맞습니다. 그 이야기 맞습니다. 사실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위에서 설명한 '감'에 의해 앞에 이야기한 복잡한 조건을 만족하지 않아도 서류를 통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리라 확신할 방법은 전혀 없기 때문에 그나마 확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문서의 근본적인 목적인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함’에 집중해 문서를 읽는 서로 다른 가상의 독자의 관심사에 기반한 문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실은 종종 같은 포트폴리오 세트를 서로 다른 프로젝트에 제출하며 최소한의 수정 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문서의 훌륭함을 떠나 이런 시도와 마주치면 좋은 평가를 내리기 쉽지 않게 됩니다. 일단 최소한의 수정은 둘째 치고 독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문서의 배포와 여기에 문제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분이라면 어쩌면 문서의 대단함과는 별개로 바닥부터 교육해 함께 일할 결정을 내리기에는 감수할 위험이 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리들을 정확히 타겟팅한 문서를 제출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솔직히 이런 분들은 무섭기도 합니다. 우리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준비를 하시나 싶지만 아무리 무서워도 이런 분이라면 바닥부터 교육해 함께 일할 우리 입장에서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모험을 한번 해 볼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이미 한 이야기의 관점을 약간 비틀어 같은 이야기를 사례에 기반해 설명하면 한번은 적어도 겉으로는 모두가 별로 플레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한국식 양산형 장르와 플랫폼에 기반해 개발하면서 공채 면접을 본 자리에서 자신의 관심사는 우리들도 집에 가서 기쁘게 플레이 하는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게임에 집중되어 있으며 지금 우리들이 개발하고 있는 그런 소위 ‘짜친’ 장르에는 관심이 크지 않음을 어필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실은 서류에서도 이미 이를 짐작할 수 있었는데 공채 과정의 특성 상 어쩔 수 없이 면접 단계까지 간 상황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어려웠습니다. 사실 어떤 장르를 좋아하든 또 어떤 게임을 좋아하든 그건 개인의 취향이자 자유이지만 이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모인 팀과 회사에 대한 존중은 필요합니다.

결론. 문서를 작성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문서를 읽는 사람이 문서로부터 도움을 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포트폴리오 문서는 작성하는 내 관점에서는 내 구직을 위한 것이지만 내 구직 여부를 결정할 누군가가 독자이므로 이 가상 독자의 관심사를 고려한 문서 작성 전략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