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컨트롤 경험과 새로운 온보딩

이전에 일하던 방법을 돌아보니 지금까지 마이크로컨트롤이라고 할만한 상황에 거의 놓이지 않아 왔습니다. 어느 팀에서나 대체로 온보딩이 끝나고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팀에 부여된 큰 목표를 달성하기만 하면 나머지 세부 목표에는 항상 어느 정도 자율이 주어졌습니다. 여러 프로젝트에 걸쳐 이렇게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이렇게 일하지 않는 모습을 상상하지 않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면 세상은 넓고 마이크로컨트롤에 의해 돌아가는 팀도 분명 있을 테고 또 그 수가 분명 적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컨트롤 자체를 거의 생각하지 않고 살았는데 한번은 마이크로컨트롤로 일하는 세계에서 살다 오신 분과 이야기를 할 일이 있었고 어쩔 줄 모르겠는 상황에 처했던 이야기를 할 작정입니다.

신규 인원이 온보딩하면서 대략 장비와 환경을 설정하고 주요 행정 절차가 마무리되고 또 팀이 당면한 과제와 그 과제 목록에 도달하는데 사용한 온갖 문서를 파악하시게 하고 나서 시간이 좀 지난 어느 날 이 분과 다음 번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면담이라고 해서 딱히 별 건 없고 그저 지금 진행상황,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정, 또 궁금한 점 등을 주고 받는 자리였습니다. 전통적인 업계로부터 구인 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질문이 나왔고 블록체인 중심적 표현, 왜 두 가지 토큰을 사용했을까요?, 메타버스와 NFT는 어쩌다 사기 키워드가 되었나 같은 주제는 이 여러 면담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들 끝에 다음 주에 각자가 할 일을 누가, 어떻게 정하느냐는 질문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질문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해 의미를 다시 여쭤봐야 했는데 질문은 대략 이번 주에 할 일, 다음 주에 할 일을 다른 누군가가 설정해 주고 그 일 각각을 진행하는 식으로 일해 오신 것 같았습니다. 사실 우리도 한 주 단위로 목표를 설정하고 점검하기는 하지만 각자가 할 일을 누군가가 하나하나 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이 질문이 내 관점에서 일종의 마이크로컨트롤에 대한 질문임을 깨닫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고 깨달은 다음에도 어떻게 답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서 ‘흠……’ 하며 시간을 끈 채로 두뇌를 풀 가동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냥 제 스스로가 지금까지 일해온 방식, 또 우리들이 일하고 있는 방식을 설명하는 것 외에는 다른 말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한 주에 누가 무엇을 할 지는 아주 중요하거나 아주 급한 일이 아니면 이전에 결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마일스톤 단위로 빌드를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는 있습니다. 이 목표는 우리들 스스로가 의견을 낸 것도 있고 프로젝트가 처한 상황에 따라 추가한 것도 있으며 또 누군가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추가한 것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목표를 보고 남은 기간 안에 이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에 따라 각자 알아서 움직입니다. 만약 어떤 작업이 추가로 필요해졌다면 필요성을 설득하고 비용을 평가해 실현 가능할 것 같으면 계획에 추가하고 조금 더 일하거나 어떤 작업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이 역시 설득하고 계획을 취소하거나 기능을 제거하면 됩니다.

이런 판단과 설득은 담당자 개인이 할 수도 있고 개인이 속한 팀이나 업무에 연관된 협업 부서 인원들과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런 변화가 프로젝트 전체에 잘 공유 되는 겁니다. 이 조건을 지키면 그 안에서 어떤 판단을 하고 또 어떤 일을 하든 일에 포함된 각자가 그 일이 옳다고 주변을 설득할 수만 있으면 그냥 하면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계획을 컨펌하는 과정도 조금 달라집니다. 모든 계획을 통제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기획서를 보고 이 계획을 추진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기 마련입니다. 이런 판단 기준에 맞추다 보면 기획서는 계획의 매력과 요구사항을 설명하기 보다는 장황하고 거창한 목표에 매몰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구성원 각자의 판단을 신뢰하고 문제상황만을 통제하는 입장에서는 기획서를 보고 이 계획을 혹시 추진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살펴 보고 그럴 이유가 없다면 추진하기로 결정하는 식으로 진행합니다. 이 계획을 추진해야만 하는 이유는 이미 계획을 수립한 사람 본인이 잘 알고 있고 또 잘 설명할 수 있는 상태일 것을 기대할 수 있어 계획의 매력과 구체적인 요구사항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번 온보딩은 이전에 경험한 온보딩에 비해 좀 더 신경 써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분명 다른 누군가가 좀 더 강하게 계획을 통제하고 진행에 관여하는 환경에서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마주하면 불안해 하거나 나태해질 수 있습니다. 이번 온보딩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우리들과 다른 경험을 해 온 분들 온보딩 시키는 요령을 깨닫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