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포머에 약한 사람은 플랫포머를 퍼즐로 만들었다

지난 4회차 뉴스레터 커버스토리로 MMO만 만드는 세계에서 다른 경험을 할 기회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는데 두 달 동안 이 일만 한 것은 아니어서 결론적으로 제한된 고객 분들께 전달될 빌드에는 이런 메커닉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수준의 결과물이 들어갈 예정입니다. 지난번 개인 수준의 테스트 때 사용한 아무 발판에 비해 훨씬 예쁜 발판을 아트에서 만들어 주셨지만 그 공에 비해 하잘 것 없는 결과를 만들게 되어 스스로도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 일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최소한의 시간 안에 돌파구를 찾아 일단 돌아는 가는 결과물을 만들었고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으니 근미래의 충원에 따라 발전 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플랫포머 게임을 지지리도 못 하는 사람이 단지 MMO 게임에 흔히 들어가는 메커닉과는 꽤 다른 메커닉을 만들 기회를 얻었다고 해서 당장 플랫포머 메커닉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플랫포머는 고객의 본능적인 판단과 이를 존중하거나 배신하는 기믹을 종합한 일종의 심리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2차원 플랫포머 디자인에서는 곧이곧대로 스프라이트 충돌을 처리하면 점프에 성공하지 못하는 위치라도 투명한 발판을 조금 더 길게 만들어 고객이 플레이어가 아슬아슬하게 발판을 밟는데 성공했다고 느끼게 만드는 일종의 꼼수가 널리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를 좀 더 과학적으로 파고 들면 기계에서 모니터로 신호를 보내는 딜레이, 모니터에서 출발한 빛이 눈에 와 닿은 다음 뇌로 전달되는 딜레이, 뇌가 판단하는 딜레이, 뇌에서 신경으로 신호를 보내는 딜레이, 신경을 타고 손에 신호가 도달해 손을 움직이는 딜레이, 손에 의해 조작된 게임패드의 신호가 전파 모양으로 공기를 타고 다시 기계에 도달해 게임에 반영되는 딜레이, 그리고 다시 여기부터 출발해 모니터와 눈과 뇌와 손과 게임패드와 기계 사이에 반복되는 신호 전달이 그리 빠르지 않으며 특히 사람의 눈에서 뇌를 거쳐 손에 도달하는 구간이 지독하게 느려 이를 감안하지 않으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가혹한 플레이를 만들게 됩니다.

이런 과학적 원리를 자세히 알 필요 없이 발판 좌우에 투명하지만 밟을 수는 있는 공간을 좀 더 만들어 게임 바깥에 있는 사람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딜레이 때문에 캐릭터 조작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가혹하게 캐릭터를 낭떠러지로 떨어뜨리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발판 끝에 발 끝이 반 쯤 걸쳐 있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이러면 우리들 입장에서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가혹한 디자인을 피해 이런 디자인을 직접 테스트할 우리들 스스로를 시험하지 않을 수 있고 또 고객들에게는 분명 떨어질 거라고 순간 예상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발판 끝에 걸린 캐릭터를 보며 짜릿한 감정을 느끼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고객은 본인이 이 게임을 잘 한다고 생각하고 좀 더 어려운 레벨에 도전할 동기가 될 수 있으며 고객 입장에서는 기왕에 산 게임을 포기하지 않고 플레이 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우리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만든 바이너리 덩어리가 누군가의 시간을 재미있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됩니다.

그런데 게임 메커닉을 만들다 보면 결국 이 메커닉을 스스로 잘 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보통 그 메커닉을 더 잘 만들기도 합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만약 이 말이 항상 통용됐다면 프로게이머들이 만든 게임이야말로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스스로가 가장 즐거워할 요소로 가득 차 있을 겁니다. 게임을 하는 것과 만드는 것은 꽤 궤가 달라 한 쪽을 잘 한다고 해서 다른 쪽을 잘 할 수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균형이 어느 정도 맞는 상황이라면 만들려는 메커닉을 스스로 즐기고 잘 하는 사람들은 직업적인 이유로 자신이 그 메커닉을 왜 즐거워하는지 본능적으로 탐구해 자신의 업무에 이를 반영해 굉장한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또 반대로 메커닉을 담당하기는 했는데 평소에 이 메커닉이나 장르를 그리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플레이가 왜 재미있는지, 어떻게 만들어야 이 메커닉이 재미있어질지 감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감을 잡는데 실패해 분명 버그 없이 동작하지만 플레이 해 보면 재미는 커녕 그냥 동작한다는 느낌 이상의 경험을 얻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두 달 전에 제가 처한 상황은 바로 이 상황에 가까웠습니다. 플랫포머 게임을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코 잘 하지는 못합니다. 레이싱 게임을 하며 종종 스티어링 휠을 돌려야 하는 순간에 스티어링 휠 대신 몸을 기울여 조작을 망치거나 아슬아슬한 발판을 향해 점프할 때 전혀 쓸모 없는 게임패드를 몸 쪽으로 끌어당기며 ‘으어어어어어!!’ 하고 아슬아슬한 기분을 외부로 표출하는 스타일로 그런 모습을 보면 뭐 대단한 걸 하는 것 같지만 바로 다음 상황은 자동차가 언더스티어로 벽을 긁거나 캐릭터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곧 플랫포머 메커닉을 사용해 게임에 작은 놀 거리를 만들어야 하지만 스스로 플랫포머를 잘 이해하지 못하며 잘 플레이 하지도 못해 이런 사람이 만든 메커닉이 과연 실제 플랫포머를 즐기는 플레이어들에게 재미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핑계를 대고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도 없었습니다. 그냥 현재 우리들은 정말 최소한의 게임디자인 인력으로 개발하고 있기 때문인데 제가 안 하면 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플랫포머를 잘 하지도 못하면서 플랫포머를 흉내낸 뭔가를 만들기라도 해야 했고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접근 방법은 맨 처음 이야기한 일종의 심리의 예술을 만드는데 도전하는 대신 플랫포머 처럼 보이는 퍼즐을 만들기로 합니다. 플랫포머는 잘 못 하지만 퍼즐이라면 시간을 충분히 쓸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머릿속으로 온갖 방법을 실험해 가며 추측하고 결국은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을 좋아합니다. 이 역시 잘 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아슬아슬한 발판 위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반만 걸친 채로 올라서는 그 순간에 느끼는 즐거움과 도대체 반복되는 규칙이 뭔지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방법을 찾아내 올바른 정답을 입력할 때 느끼는 즐거움은 방법이 다르기는 하지만 결국 그 순간의 희열과 성취감 같은 면에서는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플랫포머와 퍼즐 중 하나를 고른다면 퍼즐을 고를 겁니다. 그쪽에서 더 자주 그런 좋은 느낌을 받으니까요.

먼저 게임 상에서 점프 조작에는 몇 가지 서로 다른 방식이 있습니다. 제자리에서 점프, 제자리에서 특정 방향으로 점프, 걷거나 달리며 캐릭터에 관성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점프, 첫 번째 점프로 공중에 떠 있을 때 한번 저 점프 할 수 있는 일종의 이단점프가 있습니다. 이들은 상황마다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강 각 조작마다 비슷한 거리만큼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발판 사이의 간격과 높이를 조절해 두 발판 사이를 이동할 때 특정 이동 방식을 강제할 수 있으면 겉보기에는 플랫포머 처럼 보이지만 정작 플레이 해 보면 한 발판과 다음 발판 사이에 정확한 방법으로 이동해야만 이동에 성공하는 일종의 퍼즐처럼 만들 수 있습니다.

또 점프, 이단점프, 달리기에 의한 가속 같은 서로 다른 이동 방법은 이들을 입력하는 순서에 따라 이동 거리, 점프 높이 등이 처리된 결과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이 주제를 조금 파고들면 언리얼 엔진에는 아마도 전통적인 게임 틱 외에 물리엔진이 사용하는 틱이 따로 있고 종종 캐릭터의 움직임과 이 가칭 물리 틱이 일치하지 않는 순간이 생기는데 이 때는 시각적인 상태와 물리엔진이 판정한 결과가 서로 일치하지 않기도 합니다. 가령 시각적으로는 분명 발판 위에 착지했지만 갑자기 없던 관성에 의해 미끄러져 발판으로부터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일단 발판마다 특정한 조작을 의도한 거리와 높이 차이를 두고 배치하고 물리엔진의 특징을 고려해 처음에 설명했던 보이지 않는 발판을 조금 더 넓게 만드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게임을 너무 가혹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앞에서는 사람의 한계 때문이었다면 이번에는 소프트웨어의 한계 때문에 이렇게 만들었다는 점이 다릅니다.

다음으로 고려할 점은 모든 발판과 발판 사이를 퍼즐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근본적으로 공간 상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을 반복하는 플레이를 요구할 때 모든 시도를 연속해서 한 번에 성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은 실수를 하기 때문에 이 점프 메커닉을 퍼즐로 접근해 한 발판에서 다른 발판으로 이동하는 정답을 이미 알고 있다고 해도 머릿속으로 정답을 는 것과 실제 손으로 그 정답을 정확히 입력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연습을 통해 머릿속 정답을 점점 더 정확히 손으로 옮길 수 있게 되겠지만 이 상태를 처음부터 의도하고 설계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이 메커닉은 이 공간에 있던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도전해볼 만한 것으로 여기에 목숨 걸고 도전할 만한 대상이 아닙니다.

또 발판 사이사이의 모든 시도를 연속으로 모두 성공할 거라고 가정해서도 안됩니다. 사람은 실수를 하며 분명 머릿속으로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몸이 본능적으로 정확한 궤도를 그리며 날아가고 있는 캐릭터가 옆에 있던 기둥에 부딪쳐 떨어질 거라고 착각하고 캐릭터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다가 결국 바닥에 떨어질 수도 있는데 모든 발판 사이를 완전한 의도를 가진 퍼즐로 만들면 이런 순간들이 합쳐져 기분 나쁜 경험을 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메커닉은 플레이어들의 상태가 서로 동기화 되는 멀티플레이 환경에 놓이게 됩니다. 만약 혼자서플레이 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시간을 들여 여러 번 반복해 익숙해져야만 클리어 할 수 있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멀티플레이 환경에서는 나 말고 다른 플레이어들이 항상 돌아다니고 있으며 내 플레이는 다른 플레이어들에 의해 쉽게 방해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밟으려고 준비한 다음 발판에 다른 플레이어가 서 있을 수도 있고 내가 전 발판으로부터 떠오른 순간에는 다음 발판에 아무도 없었지만 갑자기 다음 발판에 도달하기 전에 그 발판을 먼저 점유한 플레이어와 아슬아슬하게 부딪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발판마다 정답을 요구하는 퍼즐을 만드는 대신 어느 구간은 좀 빡쎈 정답을 요구하고 또 다른 구간은 대강 달리는 관성으로 점프만 해도 쉽게 다음 발판에 내려설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각 발판이 가까이 온 플레이어를 약간 자석처럼 붙여 아슬아슬하게 성공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사운드 넣느라 더 이상 파고들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물리엔진 틱과 안 맞는 순간 발판에 착지하면 이상하게 발판 위를 미끄러지는 것처럼 보여 혹시 떨어질까 가슴 졸이게 만들고 또 종종 실제로 떨어져 빡치기도 합니다. 팀 테스트를 보니 너무 쉽게 의도를 눈치 채는 분들이 계신가 하면 그냥 평소대로 점프 하면 되는 단순한 요구사항에도 가슴을 졸이는 분들이 계셨는데 난이도를 올려야 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같은 상황이 여러 사람이 동시에 시도하는 멀티플레이 환경에서 일어나면 알아서 난이도가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과연 이렇게 대강 만든 플랫포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은 퍼즐 모양으로 접근해서 만들어 놓은 메커닉이 실제 멀티플레이 환경과 다양한 고객들에게 어떻게 동작할까요. 이제 곧 알 수 있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