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것과 본질

게임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이 창의적이고 또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국외의 네임드 개발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게임에서 가장 반짝이고 가장 재미있는 부분에 대해 설명하고 또 그런 부분을 만들기 위한 개인의 철학에 대해 말할 때가 많습니다. 실제 프로젝트는 그 작은 반짝이는 부분을 돋보이게 하고 또 그 반짝이는 부분을 포함하더라도 게임 전체가 온전한 상업적 결과로써 동작하게 만들기 위한 반짝이지 않는 나머지 부분과 공존합니다. 반짝이는 부분만 있다면 그건 상업용 게임 프로젝트라기 보다는 초기에 회사 안에서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해 개발한 아주 작은 프로토타입에 불과하거나 스팀에 카피 당 3천원에 판매할 수밖에 없는 아주 작은 게임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개발팀에 소속되어 개발에 참여하다 보면 팀에 소속되어 개발하는 사람들 조차 게임이 오직 반짝이고 또 창의적인 것들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도리어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팀의 다수를 차지하거나 팀의 높은 위치에 있어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상업용 게임으로써 완성되게 만드는 반짝이지 않는 나머지 모든 부분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에게 이들이 받아야 할 적당한 존중과 존경을 없애 버리곤 합니다. 상업용 게임의 반짝이지 않는 거의 모든 부분을 실체화하는데 기여하는 사람들이 적당한 존중을 받지 못하기를 오랜 기간에 걸쳐 반복하다 보면 이들이 조용히 팀을 떠날 때 이들의 의미를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고 결국 팀에는 반짝이는 것 만을 따르는 사람들만이 남아 아무리 개발을 반복해도 상업용 게임으로써 출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바이너리 덩어리를 반복해서 빌드하는데 전기를 허비하고 또 스폰서에게 거대한 경제적인 손실을 남깁니다.

한번은 게임의 경제시스템을 설계하면서 오랜만에 또 다시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경제시스템은 말은 거창하지만 부분유료화 상업용 게임 시장에서 어느 정도 정답이 있는 문제에 가깝습니다. 2천년대 초반 넥슨이 마이크로트랜잭션을 발명하면서 시작된 부분유료화 모델은 고객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질 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상업 게임을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긴 세월에 걸쳐 갈고 닦으며 인간 내면의 충동을 제어해 고객이 기대한 감정적 변화를 부여하고 그 댓가로 아주 작은 비용을 지불하는 체계로 가다듬어 왔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시장이 변하고 또 결제 환경이 변하며 방식은 조금씩 달라져 왔지만 근본은 충동의 제어, 감정적 변화 부여입니다. 그 동안 이 시스템이 겪은 변화는 주로 여러 국가의 법령에 대응하고 플랫폼 홀더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홀더의 결제 규정을 준수하고 또 다양한 결제 방식에 대응하는 것들입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경제시스템의 바깥을 둘러싸고 있으며 이들이 변한다고 해서 경제시스템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게임의 경제시스템을 잠깐 설명하고 넘어가면 게임 경제는 사실 지구 전체의 경제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게임 경제는 닫힌 작은 세계 안에서 게임이 허용하는 방법을 통해 주로 게임 안에서 인정되는 부가가치를 생산해 내고 이를 게임 안에서 유통 시켜 이익을 얻거나 효율을 얻으며 위에서 설명한 감정적 변화를 얻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는 지구 전체를 구성하는 실제 세계의 경제와 별로 다르지 않은데 지구는 규모가 훨씬 크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닫힌 경제이며 그 안에서 지구 주민들이 부가가치를 생산해 이를 유통 시켜 이익을 얻거나 삶의 효율을 얻으며 살아갑니다. 좁은 지역 안에서 부가가치의 생산과 재판매가 반복됨에 따라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 더 큰 지역을 대상으로 부가가치의 생산과 판매를 반복해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시간을 지연 시키고 그 사이에 사람의 한 세대가 지나가기를 반복합니다. 결국 지구 전체에 걸친 통신수단의 발달과 물리적인 이동 시간의 감소를 통해 지구 전체를 대상으로 한 생산과 판매를 달성하는 시점에 도달하면 지구 전체 역시 하수구를 똑똑하게 설계하지 못한 게임이 맞이하는 경제적 열평형 상태에 도달하는 것처럼 지구 전체 역시 똑같은 상태를 맞이하게 됩니다. 게임은 다만 이 시점이 빨리 찾아올 뿐이고 지구는 그 시점이 적어도 우리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점 정도가 다를 뿐입니다.

전에 왜 두 가지 토큰을 사용했을까요?에서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의 태동기에 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이 도구를 활용해 정치적, 경제적인 여러 실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거듭해 오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이미 인류 역사를 빠르게 반복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접근은 2023년 봄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데 이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개념을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또 새로운 개념을 개발 중인 제품에 포함하지 않으면 흐름에 뒤쳐졌거나 세계 전체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되곤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업계에서 게임의 경제시스템을 설계하는 관점에서는 지난 세월에 걸쳐 근본이 달라진 적은 없으며 근본을 둘러싼 환경이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었습니다. 근본을 둘러싼 환경은 근본적으로 반짝이는 모양을 하고 있었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본질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

그래서 크립토 게임의 장르와 환경에 맞는 경제시스템을 설계해 이를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 온램프 시스템의 부재를 문제 삼아 전체 경제시스템의 설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더라도 그리 이상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상업용 게임 관점에서 온램프는 단순히 결제수단이 하나 더 늘어난 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에 모바일 게임을 예로 들면 모바일 게임은 거의 현금을 제외한 온갖 방법으로 결제할 수 있습니다. 신용카드, 체크카드, 직접 입금, 온갖 상품권, 신용카드를 랩핑한 온갖 간편결제 서비스를 비롯해 온갖 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포인트 시스템이나 쿠폰 시스템을 통해서도 결제할 수 있고요. 이렇게 다양한 결제 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근본적으로 게임 경제시스템 바깥에 있고 이들이 추가된다고 해서 인게임 경제시스템에 영향을 받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크립토 게임에 온램프 결제 체계가 추가되는 것 또한 이와 완전히 똑같습니다. 고객이 법정화폐를 거래소에 지불하고 가상화폐를 구입해 이를 게임 결제에 사용하는 것과 고객이 법정화폐를 온램프 서비스에 지불하고 온램프 서비스가 게임 결제 시스템에 접근해 고객 입장에서 법정화폐를 지불하고 게임에 결제하는 것 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 사이에는 고객 입장에서도, 게임 입장에서도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마치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에서 밴의 역할처럼 이들이 중간에 있어도, 혹은 없어도 양쪽에 위치한 고객과 서비스 제공 주체의 역할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경제시스템에 온램프를 언급하지 않은 점이 경제시스템 전체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연결되는 상황에서 이 문제 제기가 개발팀 밖의 상대적으로 이해도가 낮은 주체로부터 오는 경우와 개발팀 안의 상대적으로 이해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주체로부터 오는 경우 사이에는 차이가 적어도 없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후자는 시작할 때 이야기한 반짝이는 요소에 집중해 이 요소와 함께 상업용 게임을 구성하는 나머지 부분에 대한 중요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상업용 게임 개발팀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본질에 집중하도록 의식적인 훈련을 하지 않으면 쉽게 반짝이는 것에 눈과 마음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또한 상업용 게임에 그런 반짝이는 요소가 없으면 고객들이나 스폰서들의 관심을 받을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상업용 게임이 오직 그런 요소들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요소를 언급하지 않는 설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상업용 게임은 반짝이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나머지로 구성되는데 반짝이는 부분은 쉽게 주의와 관심을 받지만 그렇지 않은 나머지 부분과 합쳐지지 않으면 결코 상업용 게임으로 완성될 수 없습니다. 전통적인 부분유료화 게임을 설계하며 긴 세월에 걸쳐 본질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이를 둘러싼 결제환경은 계속해서 변화해 왔습니다. 크립토 게임의 경제시스템 입장에서도 본질은 전통적인 게임과 별로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반짝이는 새로운 결제수단을 언급하지 않았음을 문제 삼는 관점은 팀 바깥의 관점으로는 이해할 만 하지만 팀 안의 관점으로는 실망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