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 보고와 게임 커스터미이징

온라인 게임에서 커스터마이징은 꽤 재미있기도 하고 또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하는 기묘한 기능입니다. 전통의 온라인 게임에서는 캐릭터의 이름과 외형이 세계에서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기 때문에 기능 상으로는 부족했지만 그 부족한 기능에 집중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종종 커스터마이징에 엄청나게 신경을 쓴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인게임에 진입하기도 전에 몇 시간 씩 커스터마이징에 집중하게 만든 나머지 커스터마이징을 마친 사람들은 이미 지쳐 게임을 꺼 버리는 사례가 등장하기도 하고 또 게임 엔진의 도움으로 커스터마이징 기반을 구축하는데 비교적 크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서도 남들과 비슷한 커스터마이징을 구축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커스터마이징 결과물은 현대로 오면서, 또 현대 게임의 장르와 현대 게임으로부터 고객들이 원하는 결과가 비슷해지면서 게임마다 차이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인간 캐릭터는 지금 머릿속에 이미 떠올리고 있을 것 같은 뻔하디 뻔한 남성형 캐릭터와 또 다른 뻔하디 뻔한 여성형 캐릭터가 아무 게임에나 똑같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검은사막처럼 누군가의 사념이 섞여 들어간 정도로 만들어내지 않는 이상 커스터마이징이 더 이상 고객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편 이번까지 해서 서로 다른 게임의 커스터마이징을 개발하는데 네 번째 관여하게 됐는데 각 상황을 되돌아보고 커스터마이징에 대한 요구사항의 변화, 프로젝트 내에서 커스터마이징을 대하는 태도나 이 기능이 개발 자원을 획득하는 수준과 요령, 그리고 어느 프로젝트에서나 일어났던 똑같은 사건에 대해 차례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맨 처음 참여한 커스터마이징은 정확히는 커스터마이징이라기 보다는 웨어러블 시스템에 가까웠습니다. 이미 게임에 등장할 강한 캐릭터성을 지닌 캐릭터들이 있었고 이들의 외형을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이미 영상을 제작하는 외주사가 제작한 하이폴 모델이 우리가 사용하던 로우폴 모델과 형태가 미묘하게 달라 서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고요.

이 시대에는 3D 캐릭터의 웨어러블을 어떤 식으로 교체하는지 기술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 헛소리를 일삼으며 이 작업에 참여하던 다른 협업자들을 어처구니 없게 만들곤 했습니다. 이 때 배우게 된 것은 3D 캐릭터가 옷을 바꿔 입으려면 옷을 안 입은 몸에 옷을 입히는 개념이 아니라 옷과 몸이 한 덩어리로 묶여 있으며 옷을 바꾸면 옷과 몸이 통째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만약 게임에 캐릭터가 여덟 종이 있고 인게임에서 웨어러블을 하나 얻었는데 이 웨어러블을 모든 캐릭터가 입을 수 있게 하려면 인벤토리 상으로는 한 개로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캐릭터마다 서로 다른 여덟 가지 메시를 제작해야 했습니다. 만약 게임에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려면 지금까지 게임에 등장한 거의 모든 웨어러블을 이 새로운 캐릭터에 맞춰 다시 제작해야만 했고 이는 캐릭터를 추가하는 의사결정을 하는데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모든 웨어러블이 캐릭터의 몸과 묶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안경, 마스크, 모자 같은 웨어러블은 몸을 함께 교체하지 않고 몸을 구성하는 약속한 본에 붙이는 식으로 동작하는데 이들은 캐릭터 변경에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얼굴 좌우 폭이 좁은 캐릭터에 맞춘 안경을 얼굴 좌우 폭이 넓은 캐릭터에 씌우려면 거의 곡예에 가까운 제어가 필요했고 결과만 놓고 보면 그냥 같은 안경을 여러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쓰고 있을 뿐이어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내부에선 상당히 고통 스런 나날을 보내야만 합니다.

한번은 모바일 MMO 게임의 꽤 뻔한 커스터마이징을 개발하는데 참여했습니다. 뻔하다고 말한 데서 이미 상상한 어떤 이미지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 이미지가 맞습니다. 중세 판타지, 인간 미형 캐릭터가 나오는 그런 게임이었습니다. 이전처럼 체형이 완전히 다른 캐릭터가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클래스와 성별 구분이 있었고 이에 따라 캐릭터의 체형이 상당히 달랐습니다. 가령 대검을 쓰는 남성 캐릭터는 몸집이 아주 컸고 너무 뻔하게도 마법을 사용하는 여성 캐릭터는 몸집이 작고 주요 애니메이션 역시 서로 완전히 달랐고요.

이번에는 이들 사이에 웨어러블을 어디까지 호환 시킬지 결정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는데 중세 판타지 배경으로 게임을 만들었더니 이 배경에 어울리는 복장들이 꽤 뻔했고 이 뻔한 복장은 캐릭터 간에 서로 다른 성별과 클래스 사이에 시각적으로 호환될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엔지니어 쪽에서는 굳이 웨어러블이 클래스나 성별 사이에 호환성을 가질 가능성이 필요한지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했고 게임디자인 쪽에서는 아무리 중세 판타지 배경이라도 결국 서비스를 게시하고 시간이 지나면 다양한 이벤트나 다른 기업과 협업을 통해 배경에 어울리지 않는 웨어러블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이를 대비해야 한다고 설득하곤 했습니다.

방식은 이전과 거의 비슷했지만 이번에는 이전에는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었던 웨어러블 메시가 서로 만나는 경계가 자연스럽지 않거나 종종 머리카락과 붙어 있는 모자 때문에 모자를 쓰면 헤어스타일이 바뀌어야만 하거나 등에 망토를 착용할 때 대검과 겹쳐 어색하게 보이는 현상들을 사내에서 강하게 지적 받았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본격적으로 비용을 들여 연구개발을 하고 또 여기에맞춘 에셋을 제작하는데 비용을 들여야만 했지만 프로젝트 전체에서 커스터마이징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고 항상 필수 기능이 아니면 자원을 끌어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커스터마이징은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처음 마주치는 기능이니 게임의 첫 인상을 결정하는데 크게 기여하므로 잘 만들어야 한다는 높은 요구 수준은 유지되었고요. 그래서 커스터마이징은 높지만 모호한 요구수준, 낮은 개발 우선순위를 동시에 뚫어야 하는 기능일 때가 많았고 이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게임 엔진은 웨어러블을 교체하는 기능 뿐 아니라 캐릭터의 체형을 변경하는 기능 역시 제공했는데 캐릭터를 구성하는 다양한 본을 제어해 체형과 얼굴형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키나 어깨, 팔 길이나 다리 길이와 굵기를 세세하게 조절하고 또 얼굴 위에 있는 다양한 본의 좌표를 조절해 다양한 인상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기능은 인게임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심지어 캐릭터를 플레이 하는 고객 자기 자신 역시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요소였지만 종종 ‘대작 게임’의 반열에 들기 위해서는 그리 유효하지 않은 부분이라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때문에 체형을 제어하고도 어색하지 않도록 보이며 동시에 전투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만드는데 상당한 비용을 들여야 했습니다. 게임에 따라 다를 수 있을텐데 고객이 미형 캐릭터를 쉽게 망가뜨릴 수 없도록 본의 좌표 이동에는 상당한 제한이 설정되었으며 특히 남성 캐릭터에 비해 여성 캐릭터는 더 강한 제한을 받아 얼굴에 의미 있는 변경을 가하기는 아주 어려웠습니다.

한편 얼굴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만들면서 게임 엔진이 제공한 얼굴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보며 얼굴 형을 바꾸는 영역과 그 얼굴에 의해 표정을 표시하는 영역 사이에 구분이 모호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가령 입과 눈 주변의 다양한 본을 조절해 이미 웃고 있는 얼굴을 만들 수 있는데 이 상태에서 얼굴로 표정을 지으려고 하면 이미 웃는 상태에 가까운 본을 어떻게 제어해야 할 지 모호합니다. 표정은 게임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끝났지만 만약 표정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면 얼굴 커스터마이징과 표정 변화의 영역을 서로 잘 구분해야 할 겁니다.

또 다른 MMO 프로젝트의 커스터마이징은 체형 보다는 웨어러블에 집중한 맨 처음 참여했던 커스터마이징과 비슷한 수준을 요구 받았는데 세월이 흐르며 엔진에서 좀 더 다양한 기능을 지원해 이전에 비해 웨어러블의 메시가 만나는 지점이나 망토와 머리카락, 망토와 가방이 겹칠 때 훨씬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아트에서 서로 다른 의상이 겹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사람이 직접 만든 메시를 사용하는 등 겉보기에는 확실히 자연스러워 졌지만 그에 드는 노력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비해 이번에는 기장이 긴 상의가 하의 일부를 덮거나 목이 긴 부츠를 신을 때 바지가 부츠 밖으로 나와 부츠를 덮을지 아니면 부츠 안으로 들어가 부츠가 위로 올라올지가 자연스럽게 결정 되고 또 자연스럽게 표시되게 하는데 이릅니다.

물론 이 댓가로 체형을 전혀 제어할 수 없게 됐는데 한편으로는 위에 설명한 것처럼 캐릭터의 체형 특성이 인게임에 큰 의미를 가지지 않으며 다양한 체형의 캐릭터들이 등장할 때 게임이 다 다채로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게임 상에서 보다 이상적인 외형을 선호하는 고객들을 고려하면 체형 변화가 빠졌다고 해도 크게 아쉽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독특한 체형을 별도로 제작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게임의 커스터마이징을 여러 번 만들며 항상 겪은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커스터마이징은 게임의 나머지 기능에 비해 우선순위가 낮아 자원을 얻기 어려우면서도 게임의 첫인상을 결정하므로 잘 만들어야 한다는 압력을 동시에 받는 기능입니다. 항상 우선순위가 낮아 커스터마이징은 기능이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최소한의 상태까지만 개발된 다음 런칭이 가까워서야 대대적으로 인터페이스와 연출을 가다듬고 웨어러블 에셋을 대규모로 추가하게 되는데 이 단계를 거치기 전의 커스터마이징은 기능이 동작하기는 하지만 그리 볼만한 상태는 아닙니다.

그래서 중요한 보고를 할 때 단 한 번도 빠짐 없이 커스터마이징을 없앤 빌드를 만들었습니다. 커스터마이징에 상당한 비용을 사용했지만 중요한 보고를 하기에는 충분히 화려하지 않고 도 그런 상태를 높은 분들께 보였다가 높은 분들이 나쁜 인상을 받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결정입니다. 이 상황을 처음 겪었을 때는 힘이 빠지기도 했는데 가장 최근에 같은 상황을 겪으며 아무래도 커스터마이징 기능은 원래 이런가보다 싶어서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래의 커스터마이징은 어떻게 될까요. 개인적으로 다음 프로젝트를 할 기회가 있다면 그 때는 커스터마이징을 별로 하고 싶지 않기는 합니다. 다들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며 현대 게임에서 고객들이 그리 관심을 가지는 요소가 아니며 인간형 캐릭터를 사용할 경우 성적 대상화를 지향헤 수익을 올리는데 사용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또 다시 관여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온라인 게임에서 고객들 개개인을 구분하는 근본적인 특징을 만들어내는 기반이라는 점에서 개발팀 안에서 낮은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것에 비해서는 좀 더 조명 받을 여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형 캐릭터를 사용한다면 지금까지 3D 그래픽의 한계로 웬만하면 시도하지 않는 독립된 애니메이션을 가진 긴 목걸이, 스카프,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는 모자 같은 웨어러블을 만들어 보면 재미있을 것 같고, 또 스포어 처럼 형태에 국한되지 않은 커스터마이징을 만들어 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만 한국어 화자로써 한국에서 개발하며 그럴 기회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