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터 메커닉과 성장 장르

2023년 초여름 현재 디아블로 4가 나온 지금 최신 유행을 따르지 않고 여전히 파크라이 6을 플레이 하고 있습니다. 어느새 플레이 시간이 40시간을 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스토리는 중반을 진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실은 디아블로 4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에 없지는 않고 또 이런 장르는 사람들이 플레이 할 때 함께 플레이 해야 가장 재미있게 플레이 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며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번 장르는 핵 앤 슬래시를 유지하지만 디아블로 이모탈처럼 보다 MMO 장르에 가까워졌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지금 플레이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기는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참 플레이 하던 게임을 잠깐 멈추고 다른 게임을 플레이 하다가 다시 이 게임으로 돌아올 자신이 없었고 그럼 같은 비용으로 한참 더 재미있게 플레이 할 수 있던 게임을 갑자기 그만 둬 버리는 것 같아 돈이 아깝기도 하고 또 아쉽기도 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파크라이 6을 플레이 하면서 이전에 파크라이 뉴던과 이번 파크라이 6을 플레이 하면서 과연 인게임 성장 장르와 슈터가 서로 잘 어울리며 한 게임 안에서 동작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 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게임 상의 무언가를 성장 시키는 장르는 역사가 너무나 깊어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할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인게임에 시간을 투자해 게임 상의 자신 또는 자신을 대변하는 무언가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여러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고 이런 감정에 기반한 여러 장르가 나타나 큰 성공을 거둡니다. 가령 MMO 장르들이 큰 성공을 거뒀고 모바일 매니지먼트 장르가 나타나 이들 역시 경제적인 성공을 거뒀습니다. 특히 이들은 게임 상의 무언가를 성장 시키는 경험 뿐 아니라 그 무언가 자체를 소유하는 경험을 함께 요구하면서 이들을 조합한 수집형 장르가 한동안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편 슈터 장르는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동작에 가까운 행동을 의미 있는 게임 경험으로 만들어낸 장르로 맨 처음 발명된 순간부터 2023년 초여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핵심 규칙이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핵심 규칙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이 규칙이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환경에서 위험 요소를 감지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움직이는 것을 본능적으로 발견하며 이들을 가장 간단한 조작으로 공격하는 과정 일체가 수 만년 전부터 인간을 살아남게 만든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 장르는 게임 안의 나 보다는 게임 밖의 내가 이 행동에 점점 더 익숙해지는 방식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적에게 무기를 조준하는 스킬과 게임 전체의 판세를 읽는 전략적인 측면이 성장하게 되며 고객은 자기 자신의 성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장르가 다른 게임 상의 대상을 성장 시키는 게임에 비해 가지는 큰 특징은 성장 시키는 대상이 게임 안에 있지 않고 게임 밖에 있으며 개인차가 크고 또 성장을 게임이 도와주기 쉽지 않다는 점에 있습니다.

1인칭이나 3인칭에 관계 없이 슈터 장르에 인게임 성장을 붙이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는데 왜 이런 시도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냥 본능적인 슈터 장르에 게임 속 대상이 성장하게 만들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 일차원적인 호기심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입니다. 그런데 슈터와 성장은 서로 한 게임 안에 공존하기 쉽지 않은데 가장 큰 이유는 방금 설명한 대로 두 장르가 서로 성장 시키는 대상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성장 시키려는 대상이 실존하는 장소가 게임 속과 게임 밖으로 완전히 다릅니다.

이런 이유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핵심 메커닉이 슈터이지만 이 슈터를 둘러싼 나머지 부분을 성장 게임 만들던 식으로 접근하면 분명 사람 모양인 상대의 보호되지 않은 머리를 정확히 맞췄는데 상대가 죽는 대신 체력만 깎인 채 나를 보고 달려와 총을 쏘기 시작하는 슈터 고객 입장에서는 전혀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실제로는 영화처럼 머리에 총을 맞는다고 해서 바로 죽지는 않는다고 하며 머리에 총상을 입거나 아예 관통상을 입고서도 살아 남아 정상적인 생활을 한 사람들의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슈터 장르의 가장 흔하고 또 당연하게 여겨지는 문법에는 정교한 조작으로 사람 모양을 한 대상의 머리를 맞추면 대상을 한 번에 무력화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슈터 장르를 예상한 고객들이 성장 요소가 부주의하게 포함된 게임을 시작했다가 게임이 예상한 슈터 문법대로 동작하지 않을 때 큰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굳이 성장 장르의 문법을 채용하지 않더라도 슈터 장르 자체만으로도 기승전결이 있는 온전한 싱글플레이 게임을 만드는데 문제가 있었는데 이들 중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난이도를 올리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싱글플레이 기준으로 스테이지를 거듭할 수록 난이도를 올려야 한다는 생각은 일종의 고정관념처럼 여겨지고 스테이지를 거듭할 수록 난이도를 올리는데 집중하기 보다는 새로운 경험을 부여하는데 집중하는 쪽으로 게임디자인 목표가 바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슈터 장르 역시 근본적으로 고객에게 어떤 감정을 유발해야 하며 그 감정 중에는 성취감도 포함됩니다. 게임이 뒤로 갈수록 난이도가 올라가고 게임 바깥의 고객이 성장해 난이도가 올라간 스테이지를 클리어 할 때 성취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로 사람 모양의 적이 나타나는 게임에서 난이도를 올리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앞에서 설명한 헤드샷 전통이 난이도를 올리기 어렵게 만듭니다. 아무리 강하게 설정된 상대라도 머리를 잘 맞추면 순식간에 게임을 끝낼 수 있기 때문에 사람 모양의 적만 가지고서는 난이도를 올리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밀리터리 게임의 싱글플레이를 보면 처음에는 사람 모양 적을 상대하다가 뒤로 가면 나는 여전히 사람이지만 상대는 갑자기 장갑차나 탱크, 거대 메커닉처럼 딱 봐도 헤드샷 만으로는 절대 죽지 않을 것 같은 상대가 나옵니다. 게임에 따라서는 설정 상 뒤로 갈수록 강력한 거대 괴수를 출연 시켜 슈터 문법을 무시하더라도 그렇게까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하기도 합니다.

또한 슈터 장르에서는 적을 구성하는 머리를 포함해 여러 부분 각각을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성장 장르에서 그저 체력이 줄어드는 표현 만으로는 게임에 몰입하게 만들기 쉽지 않습니다. 게임에 따라서는 적으로 자동차가 등장할 때 자동차의 각 부분을 맞춤에 따라 자동차가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이는 게임에 몰입하고 또 다양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게 해 주지만 만들기 어렵고 또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강한 상대를 공격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체력을 표시하는 것이지만 이 방법만으로는 슈터 장르의 문법에 익숙한 고객들의 몰입을 끌어내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한편 게임에 따라 게임 내 대상의 성장을 대상 그 자체 뿐 아니라 게임 속 세계 전체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로 오픈월드 장르에서 사용하는 방법인데 성장 장르이면서 동시에 슈터 메커닉으로 플레이 하는 게임은 게임 속 나 자신의 성장이나 이에 맞춘 적들의 강함을 슈터 장르의 문법에 따라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게임 상에서 성장을 게임 속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게임 속 세계에 초점을 맞춰 게임을 플레이 함에 따라 게임 속 세계에 플레이어가 영향을 끼치는 지역이 더 넓어지고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보스를 처치하고 더 많은 탈것을 얻고 더 멀리 까지 돌아다니며 더 많은 숨겨진 요소를 찾아내도록 만드는 식으로 세계 전체에 고객의 성장을 투영합니다. 이런 방법은 싱글플레이 환경에서 유용하지만 같은 세계를 여러 고객이 공유하는 멀티플레이 환경에서는 이 방법을 사용하기 쉽지 않거나 거의 불가능합니다. 퍼시스턴트 월드에서 개인화된 경험 같은 시도가 있지만 아직 까지는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파크라이 6은 이전 시리즈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이런 고민의 결과 중 하나 입니다. 이전에는 보다 슈터에 가깝게 만들거나 보다 성장을 중시한 형태에 집중한 시리즈를 각각 출시한 적이 있는데 양쪽 모두 썩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가령 어쎄신크리드 시리즈는 오리진부터 액션에서 롤플레잉으로 장르가 바뀌며 성장을 중시하게 됐는데 덕분에 건물 3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며 병사를 머리 꼭대기부터 칼로 내리 그었지만 죽지 않고 멀쩡히 나를 향해 칼을 휘두르는 경험을 하게 만들며 파크라이 시리즈 전작 뉴던에서는 성장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적들 머리 위에 체력 바가 나타나 이 게임을 슈터 장르라고 생각한 사람들의 심기를 크게 거스른 나머지 나중에 체력 바 인터페이스를 숨기는 옵션이 추가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파크라이 6에서는 이런 고민이 뒤섞여 기묘한 형태가 되었는데 일단 전작과 같이 적들 머리 위에 체력 바를 표시하고 더 이상 이 게임이 순수한 슈터가 아니며 성장 장르를 포함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싱글플레이 오픈월드를 통해 게임 속 성장을 표현하기는 하지만 슈터 장르 관점에서 뻔뻔하게 체력 바를 표시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사람 모양을 하고 있지만 웬만큼 총알을 맞아도 여전히 멀쩡히 움직이며 나를 공격하는 상대를 인정해야만 하는 세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온전히 도입하지는 않아 여전히 적들은 전통적인 슈터 장르의 규칙 대로 헤드샷이 가능한데 총알 종류의 상성을 잘 맞추면 게임 상에 헬멧으로 머리를 보호하고 있다고 인식되는 상대에게마저 이들의 강함 여부에 관계 없이 헤드샷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어중간한 규칙은 사람 모양 적의 머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맞출 때는 성장 장르처럼 동작하지만 머리를 맞출 때는 슈터 장르처럼 동작해 난이도를 완전히 망가뜨리는데 검색해 보니 게임이 너무 쉽다는 의견이 자주 보였고 그 원인이 이런 특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특징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지금 일로써 만들어야 하는 게임 역시 성장을 해야 함과 동시에 핵심 메커닉은 슈터이기 때문입니다. 유비소프트처럼 이런 게임을 오래 만들어 온 곳들도 아직 이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지 못해 이런 어중간한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과연 우리가 잘 할 수 있을지 지레 겁먹을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지금은 이런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는 있고 해결 방법을 결정하거나 해결 방향을 수립하지는 않은 상태인데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 문제에 대한 접근 과정을 설명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