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과 함부로 약속하지 않아요

한번은 비공개 테스트를 준비하면서 비공개 테스트 고객들께 어떤 보상을 줘야 할 지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현대에 비공개 테스트는 종종 바로 이어지는 런칭을 고려해 사실상 얼리 액세스에 가까운 형태이기도 했지만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전통적인 의미의 비공개 테스트에 더 가까워 게임은 아직 온전히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심지어 게임에는 아직 인벤토리 시스템과 아이템 개념도 없고 게임 상에 화폐가 유통되지도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게임 상에서 어떤 행동에 의한 보상을 주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래도 로그에 기반해 고객들에게 행동을 요구한 다음 로그를 통해 행동을 확인할 수 있는 분들께는 게임 밖에서 보상을 지급하는 이벤트를 할 수는 있었습니다.

NFT 중에는 소울바운드토큰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름이 되게 뭐 있을 것 같지만 실은 ‘일반적으로’는 거래 불가능하게 설정한 스마트컨트렉트에 기반한 NFT로 이전까지는 블록체인에 기반한 지갑을 가리키는 토큰이 세계의 경제적 가치를 대신하는 역할을 하는데 집중했다면 이 개념은 지갑을 가리키는 토큰이 이 지갑 소유자가 실제 세계 및 가상 세계에서 한 행동이나 관심사 따위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일종의 확인 증서 같은 역할을 합니다. 토큰에 따라 거래할 수 없도록 설정되기도 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가치는 없거나 거의 없고 주로 이 지갑의 소유자가 이 토큰을 부여하는 이벤트에 참여하거나 특정 행동을 수행했음을 블록체인 바깥의 오라클이 확인한 다음 토큰을 지갑으로 전송해 이 사실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블록체인에 기반한 토큰을 게임에 도입하려고 할 때 게임의 주 화폐 역할을 할 토큰 외에도 소울바운드토큰 형식으로 발행한 인게임 및 그 바깥 세상에서 경제적 가치를 가지지 않는 토큰을 발행해 고객들의 이벤트 참여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비공개 테스트에서 인게임 행동으로부터 고객들에게 부여할 보상이 없고 또 인게임 상에서 보상을 줄 방법 자체가 아직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실제 경제적 가치가 있는 보상을 주는 계획을 세웠는데 경제적 가치가 있는 보상은 그 양을 늘리기 쉽지 않았고 또 보상의 양에 따라 국가 별 규제를 고려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경제적인 가치는 덜하지만 테스트와 이벤트에 참여한 고객들에게 기념이 되고 또 재미를 줄 수 있는 보상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다가 근미래에 어떤 형태로든 사용될 계획이 없음이 확실하지만 이번 이벤트에 참여했음을 우리가 보증하는 소울바운드토큰을 발행해 고객들의 지갑에 전송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이 토큰은 경제적인 가치가 없거나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블록체인에 기반해 지갑 소유자의 행동을 증명할 수는 있기 때문에 지갑을 통해 어떤 경험이나 업적을 증명하는 역할을 할 수는 있습니다.

가령 스트라바에서 미션을 수행하거나 업적을 달성하면 디지털 트로피를 받을 수 있는데 스트라바에 등록된 다른 사람들의 프로필을 조회하면 그 사람이 지금까지 획득한 트로피 목록을 볼 수 있습니다. 트로피목록을 통해 이 사람이 어떤 스타일의 운동을 좋아하고 어느 시점에 가장 열심히 운동했는지 여부 등을 파악할 수 있으며 유명한 트로피를 가지고 있다면 놀라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역할을 기대하며 이벤트 보상으로 기념 토큰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고민해 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의견 중에는 우리가 로드맵에 따라 근미래에 개발할 예정인 기능에 근거해 그 기능이 출시될 시점에 아직 특정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이익을 부여하는 약속을 토큰에 포함하자는 것도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기념으로 부여하려는 소울바운드토큰은 경제적으로 가치를 가지지 않고 단지 토큰을 소유한 사람에게 자기만족을 주는 정도의 동작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근미래에 개발할 것이 확실한 어떤 요소에 대한 이익을 준다고 약속하면 분명 토큰은 이전에 비해 훨씬 강하게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난 세월에 걸쳐 장기간 서비스 하는 게임을 만들어 오면서 본능적으로 고객들에게 확실하지 않은 미래의 뭔가를 함부로 약속했다가 그 약속을 달성하는데 실패하면 엄청난 후폭풍을 맞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간단한 예로 개발팀이 고객들과 만나는 행사에서 근미래에 어떤 기능이나 컨텐츠를 추가할 작정이라고 정확히 이야기했다가 시간이 흘러도 이 이야기가 달성 되지 않으면 아무 말도 안 하고 같은 상황을 맞이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강력한 비난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말했으니 억울해 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개발에는 온갖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 분명 로드맵에 따라 근미래에 개발할 것이 확실해 보이는 기능들도 상황 변화에 따라 개발하지 않게 될 수도 있는데 이를 하나하나 고객들에게 설명하기는 아주 아주 어렵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고객들에게 미래의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 대한 약속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했습니다.

한편 서비스를 운영하며 고객들과 사소한 약속을 잘 만들지 않는 흔한 사례에는 아이템 가격을 조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 300다이아로 설정한 어떤 아이템이 있습니다. 서비스를 해 보니 이 아이템의 적정 가격은 200다이아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아이템을 200다이아로 설정할 때 고객들이 남은 다이아를 더 적극적으로 이 아이템 구매에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고 이 아이템이 200다이아로 팔릴 때 아이템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뿐 아니라 이전 가격에 비해 가격을 낮췄음에도 전체적으로 보면 더 많이 팔릴 수 있을 것 같아 보입니다.

아이템 가격을 조절해야 함이 명백하지만 아이템 가격은 절대로 손대지 않습니다. 아이템 가격을 직접 낮추는 대신 이 아이템 가격을 할인하는 이벤트를 무기한으로 집행합니다. 아이템 가격을 직접 낮춰 설정하든 아이템 가격을 할인하는 이벤트를 통해 아이템 가격을 낮추든 어차피 결과는 같습니다. 하지만 미래에 아이템 가격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야 할 때 차이가 납니다. 아이템 가격을 직접 조정했다면 고객들의 반발에 부딪치게 될 겁니다. 아이템 가격은 일종의 약속이며 특히 아이템이 유료 아이템일 때 고객들은 이런 조정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템 가격 할인 이벤트를 무기한 진행 중이었다면 아이템 가격이 원래대로 돌아가겠지만 이는 이벤트라는 특수한 형식에 의해 무기한이었지만 일시적으로 조절되었던 것으로 일시적 조정이 끝나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으로 인식되어 훨씬 덜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이런 사례의 핵심은 우리들이 덜 열심히 일하고 의도적으로 약속을 깨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지만 고객과 함부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 그 댓가가 아주 크기 때문에 아무리 달성이 확실해 보이는 목표이더라도, 아무리 개발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여도, 아무리 가격 인하 말고는 답이 없어 보이더라도 이런 행동을 고객과 직접적으로 약속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