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다고 생각합니다

블로그에 글을 쓸 때 질보다 양에 집중해 일주일에 다섯 번 트위터에 새 글을 공유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한동안 신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아무 것도 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반 년 이상 일과 생활의 밸런스를 어느 정도 되찾으면서 어느 날 갑자기 이제는 일이 아니더라도 생각을 글자로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렇게 된 김에 언젠가 다시 찾아올지도 모르는 글을 쓸 수 없는 때에 대비해 최대한 글을 많이 만들어 두기로 했습니다.

질보다는 양 위주로 주중에 잠깐이라도 고민한 주제는 주말에 생각을 풀어 글로 만들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7월 초 왜 디아블로 이모탈은 포션 갯수가 제한되어 있나요?로부터 시작해 반 년 째 계속하는 중입니다. 글을 한번에 여러 개 만들어 두고 트위터마스토돈을 통해 하루에 하나 씩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글을 만드는 속도가 글이 공개되는 속도보다 더 빨라 시간이 흐르니 글을 쓰는 시점과 글이 공유되는 시점 사이에 시차가 점점 더 커졌습니다. 2022년 12월 현재 이번 주에 마지막으로 공유한 글은 이벤트를 둘 이상 동시에 집행하는 사례인데 글 쓴 시점과 공유한 시점 사이에 만 4개월 차이가 나게 됐습니다.

이런 상황의 장점은 타임라인을 통해 공유되는 글은 그걸 쓴 내 스스로도 몇 달 만에 다시 읽게 된다는 점입니다. 글을 직접 쓰면 아무리 질보다 양에 집중한다 하더라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행간의 모든 정보를 내 스스로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글을 평가할 수가 없습니다. 괜히 퇴고한다고 시간 낭비 하느니 눈에 띄는 오타만 빨리 수정하고 끝내는 쪽이 훨씬 나을 거라고 판단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몇 달 만에 글을 다시 보면 이번에는 그 글을 쓴 나와 현재의 내가 상당히 달라져 있어 몇 달 전과는 꽤 다른 시각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내용에 동의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내거나 아예 다시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를 동력 삼아 새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질보다 양에 집중한 몇 달 전 글을 읽을 때 느끼는 두드러진 특징은 ‘생각합니다'를 지독하게 많이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공유위키에 오래된 리비전에 의미가 있을까?를 다시 읽다가 ‘생각합니다’라는 표현이 유난히 자주 보이길래 한번 세어봤다가 이건 좀 너무하다 싶었습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글에 같은 표현을 거의 스무 번 가까이 사용했습니다. 문장을 끝맺을 방법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나 싶기도 하고 또 내 생각을 표현하기에 얼마나 주저함이 많았으면 말 끝마다 생각한다는 표현을 반복했을까 싶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쿠션어를 쓰는 습관이 몸에 베어 나타난 결과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근본적으로 블로그에 글쓰기는 일종의 일기와 속성이 비슷하고 이곳에 쓰는 글은 왜 게임에 카메라 옵션이 있나요? 처음에 이야기한 대로 출처가 없고 근거가 없는 내 생각일 뿐입니다. 그래서 굳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모든 글은 내 생각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굳이 생각한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쓸 뻔 했습니다.

어딘가 글에서 둘러대지 말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는 말을 읽었습니다. 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내 말과 생각을 삼인칭으로 말하며 내가 아닌 척 하고 또 의도에 가깝게 말하는 대신 온갖 비유적 표현을 통해 의도에 잘 접근할 수 없는 모호한 표현을 하도록 어느 정도 훈련 받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와 닿는 말이었습니다.

내 말이 무례하지 않다면 혹시 틀릴 수 있더라도 굳이 ‘생각합니다’로 앞뒤를 감싸 조심스럽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김에 생각한다는 쿠션어를 덜 쓰려고 노력해 볼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