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네트워크에서 평판의 구성

전통적인 업계에서 개발팀에 속한 우리들은 함부로 말해선 안됩니다. 우리 의견은 회사의 공식 의견과 다를 수 있고 개발팀 안에서 보고 느끼는 상황과 회사 밖에서 보고 느끼는 상황은 서로 전혀 다를 수 있어 잘못된 말 한 마디로 큰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회사의 유일한 입은 PR 부서에만 있고 모든 대외적인 말은 PR 부서를 통해야만 합니다. 이 방법은 일관되고 또 안전하지만 한편으로는 억울함에 의한 불만이 쌓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물론 여기에 익숙해지면 웬만한 악평에도 잘 반응하지 않게 됩니다. 악평을 직접 받으며 견디기 보다는 회사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악평은 제품에 대한 것이지 나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기도 하고요.

반면 지금 일하는 업계에서는 개발팀 구성원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회사와 제품에 대한 의견을 말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전히 이런 접근이 의미 있는지, 효율적인지, 안전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전에 입 없이 살아가던데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에 새로운 접근에 더 불안해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 역시 소심하게 프로젝트와 멀리 떨어진 주제로부터 시작해 나선을 그리며 아주 천천히 핵심 주제를 향해 접근하고 있습니다.

대략 디센트럴랜드 네임 사례, 메타버스는 스스로 자신이 메타버스임을 입증할 수가 없다, 활동에 보상하는 방법, 여러 세계 사이에 물건 호환, 크립토 게임에 사용할 토큰 체계를 설계할 때 가질 마음가짐 같은 이야기를 소심하게 해봤는데 이런 이야기는 언어 측면이나 형식 측면, 그리고 공유 방법 측면에서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 특히 언어 측면과 공유 방법 측면에서 다른 접근을 해 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한번은 팀에서 트위터 사용법 강좌가 열린 적이 있습니다. 트위터를 통해 사실을 전달하는 선에서 이야기할 수 있고 고객들의 질문에 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10년 넘는 세월 동안 트위터에 글을 쓰던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개발팀 구성원들 상당수는 트위터의 존재만을 간신히 알고 있었고 트위터는 도무지 익숙해지기 어려운 서비스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이 서비스의 핵심 컨셉과 주요 사용 방법, 사람들 사이에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문화에 대해서 설명해야만 했는데 다행히 제가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평판에 따라 사람들과 연결되거나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핵심은 평판을 평가할 수 없는 상태일 때 함부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연결을 시도하면 영구적으로 연결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트위터 식으로 이야기하면 포스트가 하나도 없는 알 계정이 갑자기 팔로잉 해 온다면 일단 스팸으로 인식할 겁니다. 때문에 최소한의 평판을 얻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이름, 소개를 적당히 작성하고 빈 방 안에서 혼자 외치는 느낌이겠지만 뭐라도 말한 다음에 누군가와 연결을 시도해야 합니다. 혹시 이미 알고 있는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말을 주고 받는 것도 불특정 다수로부터 평판을 획득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이 자리에서 만들어진 샘플 계정들이 팀에 알려진 계정을 팔로잉 했지만 이 계정들은 방금 이야기한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칼블럭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번에 마스토돈의 계정 이동성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 마스토돈이 주장하는 계정 이동성은 이동하기 전과 후 모두 해당 서버가 반영구적으로 유지될 것을 가정했고 또 이동에 따라 이전에 작성한 포스트는 이전되지 않는다는 점을 우려했습니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한 계정의 평판은 이 계정의 소셜그래프와 이 계정이 그동안 작성한 포스트로 구성됩니다. 이 두 가지 요소 중 하나를 없애버리는 이전 방식은 새 서버에서 평판의 절반을 완전히 새로 구축해야 하는 상황을 만듭니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소셜네트워크 사례는 아니지만 블록체인 상의 지갑 주소에 평판을 부여하려는 시도에는 이전에 활동에 보상하는 방법에서 언급한 SBT가 있습니다. 지갑의 거래 내역은 블록체인 상에 공개되지만 단순히 거래 내역 만으로는 지갑을 운영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성격을 파악하는데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갑의 활동을 거래 불가능한 토큰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이 역시 소셜네트워크에서 계정이 평판을 얻기 위해 소셜그래프와 포스트로 계정을 구성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지갑의 평판은 거래 내역과 SBT로 구성됩니다. 전자가 단순히 거래 내역을 확인하는 역할이라면 후자는 지갑에 일종의 인격을 부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생각 끝에 정리하면 소셜네트워크에서 계정의 평판을 평가하는 데는 소셜그래프와 포스트 모두가 필요하고 마스토돈의 계정 이동 기능은 이들 중 한쪽을 없애버리므로 걱정스러우며 블록체인 상의 지갑 역시 평판을 부여하고 평가하려는 시도가 있는데 이쪽도 소셜네트워크 계정과 비슷하게 거래 내역과 SBT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당장은 여전히 조심스럽게 일 이야기를 하겠지만 언어와 공유 방법에 변화를 주는 실험을 해 볼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