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라 이슈키의 쓸모

지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개발되고 또 사용되어 오면서 다른 시스템에서 티켓이라고도 부르는 단위를 가리키는 여러 단어가 생겼습니다. 같은 대상을 두고 태스크라고도 부르고 또 이슈라고도 부릅니다. 지라 옵션을 살펴보면 아틀라시안 스스로도 이 표현을 헛갈려 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슈마다 부여되는 프로젝트키-숫자의 형태로 부여되는 일련번호는 다들 ‘이슈키’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아틀라시안 커뮤니티를 살펴봐도 ‘태스크키’라고 부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 빌딩 단계에서 이슈트래커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사실 고려 대상은 별로 없었습니다. 우선 문서 관리에 사용하던 노션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이슈트래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노션을 고려했습니다. 이전에 노션을 이런 용도에 적극적으로 사용해본 적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나쁘지 않아 보였습니다. 일단 노션의 일부이므로 노션에 아주 잘 통합됩니다. 아무데서나 불러올 수 있고 아무 모양으로 만들 수도 있었으며 상상하는 모양 거의 대부분으로 만들어 페이지에 첨부할 수 있었습니다. 또 데이터베이스를 정의해 이슈를 추가하면 이 항목 자체가 이슈를 설명하는 페이지를 가리키는 링크가 됩니다. 그래서 이슈 설명을 어디에 어떻게 기입해야 할 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 보였습니다. 노션 자체가 페이지를 계층 구조로 만들 수 있게 해 주지만 데이터베이스 항목에 기반해 페이지를 만들면 계층 구조에 대한 고민 자체를 생략하게 합니다.

데이터베이스는 노션을 이슈트래커로 사용할 수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지만 이슈트래커에 기대하는 조건에 따른 상태 전환이나 상태 전환 규칙을 재정의하는 기능을 지원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단순하지만 몇몇 이슈트래커를 사용하며 익숙해진 이슈키를 정의하기 어렵다는 점 역시 노션을 결정하기 어렵게 만든 이유였습니다.

지라는 노션 자기 자신만큼 노션에 잘 통합되지는 않습니다. 우선 지라 링크를 노션에 붙여 넣으면 지라와 통신해 적당히 예쁜 모양으로 보여주기는 하지만 컨플루언스에 붙여 넣을 때만큼 예쁘고 편리하지는 않습니다. 또 최근에서야 지라 필터를 노션 데이터베이스에 미러링 하는 기능이 생겼는데 지라 필터 페이지를 직접 사용하는데 비한 장점을 찾기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구성원 거의 전부가 이전에 지라를 사용해봤고 여러 사람이 규모가 큰 프로젝트에서 지라를 운용해본 경험이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었고 결정적으로 지라는 이슈를 이슈키 모양으로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지라를 선택했습니다.

이슈키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중요합니다. 이슈키는 프로젝트 키와 '-'문자, 그리고 일련번호를 붙여 생성되는데 이 단순한 모양은 은근히 쓸모가 많습니다. 먼저 뒤에 붙는 일련번호를 통해 이슈키를 들었을 때 이 이슈가 얼마나 오래 된 이슈인지, 아니면 최신 이슈인지 빠르게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오늘 아침에 새로 생성한 지라 이슈키가 5000번대였는데 다른 팀원이 내게 들고 온 이슈키가 523번이라면 뭔가 고대에 저지른 실수가 현대에 영향을 끼치는 상황일 거라고 설명을 듣기 전부터 미리 예상하고 각오할 수 있습니다.

팀 내에 유명하고 또 작업하는데 오래 걸린 이슈키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어 이슈키만으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어떤 프로젝트에서 xxx-4484는 주요 시스템을 모조리 갈아엎도록 만드는 근본적인 요구사항 변경을 개발하는 이슈였는데 개발이 끝나고 나서도 오랫동안 게임에 큰 영향을 끼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밤중에 다 같이 모여 족발을 먹다가 xxx-4484!!라고만 외쳐도 사람들이 식욕을 잃어 족발을 더 많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슈키는 팀에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하기에 굉장히 간결하고 쉬운 시작점 역할을 합니다. 만약 이슈키가 없다면 이슈 이름을 외우거나 포스트잇에 메모해 들고 가서 이슈 이름을 너절하게 말하고 이슈 내용을 설명하며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슈키가 있으면 간단히 이슈키를 외워 가서 이슈키를 말하고 상대가 브라우저에 지라 이슈를 띄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화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이슈를 오늘 안에 해결해야 한다면 외울 수 있지만 굳이 포스트잇에 적어 들고 가서 이야기를 마치며 책상에 붙여 놓고 돌아올 수도 있고요.

지라를 선택한 다른 이유가 더 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슈키의 유무가 이슈트래커를 선택하는 큰 조건입니다. 근미래에 노션이 이슈키를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면 - 어쩌면 이미 있는데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음 - 다음번에는 노션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추가로 개발비를 지출하는 대신 노션을 사용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내가 노션을 싫어하는 이유를 다시 읽고 다시 생각해보긴 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