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한 포트폴리오 모아 놓은 곳이 있느냐는 질문에 꽤 동의함

전에 포트폴리오 만들기 어렵다고 투정 부린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포트폴리오 문서를 만들었던 때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그 경험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파멸적이기 그지없습니다. 문서를 읽는 사람이 궁금해 할 만한 사항을 중심으로 내 경험을 설명해야 했는데 항상 설명하고 싶은 경험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그걸 끄집어내 좁은 파워포인트 문서에 나열하려고 보면 정말 하잘 것 없었습니다. 고민과 야근을 거듭해 간신히 만들어낸 업적들도 그걸 머릿속으로 떠올릴 때는 이런 경험을 설명하면 누구라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정작 실제 한 일 중심으로 건조하게 문서로 옮겨 보면 큰 거 한 방으로 태평양 전쟁을 시작할 수조차 없을 나약한 바람과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꾸역꾸역 문서를 만들다 보면 페이지를 거듭할수록 자신감이 없어져 끄트머리쯤 가면 이 짓 그만 하고 뭔가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종종 게임디자인 포트폴리오 문서 작성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의견을 보면 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어 포트폴리오 기획서는 의미 없지 않아요 같은 투정을 부리기도 습니다.

어느 날 트위터에서 합격자 포트폴리오만 모아 놓은 곳은 없느냐는 글이 박제된 모습을 보고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은 스스로 구인을 하면서 합격하시는 분들의 문서를 볼 일은 있습니다. 다만 그 문서를 머릿속에 넣어 둘 수만 있을 뿐 그 문서를 보관할 수도 없고 보관해서도 안됩니다. 만약 합격한 분들의 문서를 보관해 놓은 어딘가, 또는 뭔가가 있다면 매번 포트폴리오 문서를 준비할 때마다 느끼는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곳을 본 적은 없었습니다.

제발 다른 사람이 만든 잘 만들어 합격한 포트폴리오 문서를 좀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징징거리다가 어떤 게임 관련 교육기관 블로그에 취업된 포트폴리오 스크린샷과 인터뷰를 모아 놓은 것을 소개 받았습니다. 실은 종종 교육기관을 통해 첨삭을 받은 것이 분명한 형식과 내용 구성이 완전히 똑같은 문서를 접한 적은 있었습니다. 그런 문서를 연속으로 여러 개를 본 다음 이 문서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이 문서들은 적어도 유명한 회사에 합격한 포트폴리오라는 점에서 형식이 비슷하든 아니든 큰 의미가 있는 문서들입니다.

진지하게 앞으로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며 자괴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저런 게임 관련 교육기관에 등록해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약간은 농담이고 또 나머지는 진심이긴 하지만 아마도 계속해서 일해야 할 테니 게임 교육기관에 등록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언제나 포트폴리오 문서를 작성하려고 할 때마다, 이전에 수행한 일을 떠올리고 그 기록을 찾아 읽을 때마다, 그리고 그 기록을 문서에 건조하게 옮겨 적을 때마다 매 순간 느끼던 뿌리 깊은 자괴감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느낄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비록 빌런으로 치부되고 또 욕을 먹으며 글이 삭제되기는 했지만 합격한 포폴을 모아놓는 곳이 없느냐는 의 의도에 꽤 동의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뭘 어떻게 할 것인가 하면 일단 한동안 포트폴리오 문서를 작성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프로젝트를 잘 개발하고 런칭해 시장의 평가를 받고 우리들과 우리를 둘러싼 회사가 좋은 평가를 받게 만들어 다음 기회를 얻기를 반복하면 포트폴리오 문서를 안 써도 될 겁니다. 자신 없는 일을 어떻게든 잘 하려고 전전긍긍하며 징징거리기 보다는 아예 그 일을 안 할 방법을 찾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만약 다음에 또 문서를 작성할 일이 생긴다면 … 아마 그때 또 징징거리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