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에 대한 잘못된 신호

몇 년 전에 터널 안에 들어가면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마치 사고가 난 것 같은 무서운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이런 행동이 중요한 신호를 평소에 소모 시켜 이 소리가 실제로 나는 상황이 올 때 충분히 주의를 환기 시키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이렌 소리와 반짝이는 경광등, 호루라기 소리, 아래위로 움직이는 감속 신호 등은 분명 각각이 강한 주의 신호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동시에 나타나는 상황을 터널에 진입할 때마다 마주하다 보면 실제 상황에서 이 신호들이 동시에 주어질 때 이 상황을 실제 상황으로 인식할지 아니면 평소와 똑같은 여느 터널 안이라고 생각할지 걱정스러웠습니다. 터널에 진입할 때 분명 주의를 환기해야 하는 것 까지는 맞지만 그 방법이 이런 식이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장기적으로 안전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최근 하릴없이 유튜브 타임라인을 새로고침 하다가 유튜브 알고리즘이 점지해 준 한국의 쓰레기 배출과 분리수거에 대한 다큐멘터리 몇 개를 보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 포멧을 썩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종종 의미 있는 정보와 메시지를 전달해 주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정보 밀도가 너무 낮고 또 공영방송에서 제작한 경우 나레이션이 해도해도 너무 느려 한 시간 동안 봤는데 결국 전달 받은 메시지는 텍스트 한 두 줄 정도일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별 것 없는 내용을 종종 대단한 비주얼이나 설득력 있는 영상과 함께 전달하기도 하므로 아예 의미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엄청나게 늘어난 플라스틱 쓰레기와 우리가 이들을 분리수거 하고 있지만 실제로 재활용 과정의 요구사항을 충족하지 못해 그대로 버려지는 현실과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가 갈 곳이 없이 지방 어딘가에 그냥 무단투기되어 일어나는 온갖 일들, 또 그런 쓰레기를 재활용 가능한 상태라고 속여 수출했다가 수입한 국가로부터 항의를 받고 또 조금씩 되돌아오는 사건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분리수거 한 쓰레기는 재활용 과정의 요구사항을 충족하지 못해 버려지는데 그 쓰레기는 결국 어딘가에 쌓아야 하고 모두가 쓰레기를 쌓기를 원하지 않는 상황은 글로 표현하면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당장 한국 어딘가에 저 끝이 보이지 않도록 쌓인 무시무시한 쓰레기 더미가 하루에도 눈에 띌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현실은 걱정스러웠습니다. 재활용 업체는 재활용 요구사항에 만족하는 쓰레기를 구하지 못해 쓰레기를 수입해 재활용 처리하고 있었는데 우리들이 매주 분리수거에 쓰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허탈한 상황이었습니다. 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와 헌옷 때문에 마을 가운데 거대한 쓰레기 강이 생긴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의 사례는 도대체 이게 뭔가 싶었고요.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다큐멘터리들은 뒤쪽에 가서 분리수거가 잘 동작하지 않고 있으며 분리수거를 더 잘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는데 방금 전까지 거대한 쓰레기 산과 쓰레기 강과 분리배출된 플라스틱 쓰레기를 뒤로 하고 또 다른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입하는 상황을 보며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과는 달리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분리수거는 완전히 잘못되었으며 전혀 쓸모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번은 어느 아파트에 처음 이사가서 이것 저것 쓰레기를 버리다가 도자기 조각을 버리려고 했는데 그건 일반 쓰레기봉투에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쓰레기를 버리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아파트 경비 담당자는 그건 쓰레기 봉투에 버리면 안된다며 이걸 여기 버리면 어쩌자는 거냐고 내가 내려 놓은 쓰레기를 발로 툭 찼는데 이 사람과 싸워야 할지 아니면 이사 온 첫 날이니까 적당히 웃으며 넘어가야 할 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결국 이런 쓰레기를 버리는 전용 규격 자루?를 구입해 와 버리긴 했지만 정확한 방법을 설명하는 대신 상황을 공격하는 상황이 무척 불쾌했고요.

다큐멘터리는 비슷한 방식으로 시청자를 공격합니다. 우리가 우리들이 안내 받은 방식으로 분리수거한 쓰레기를 재활용 업체 담당자가 골라내며 이것과 저것은 다른 물질이어서 섞이면 안된다는 설명을 하며 볼펜 끝으로 쓰레기를 툭툭 치며 같은 것과 다른 것을 골라내고 있었는데 마치 그 쓰레기를 내가 버린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이전에 느낀 불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접하는 여러 물건은 다양한 소재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을 재활용 하려면 같은 소재끼리 분리해야 한다는데 까지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수행하는 분리수거는 종이, 금속, 비닐, 플라스틱 정도로만 구분 되어 있고 그나마 코팅된 종이, 종이에 붙어 있는 비닐, 플라스틱인지 비닐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 소재, 천 따위를 이 기초적인 분류에 맞추느라 고통 받고 있는데 그나마 그런 고통이 아무 소용 없다는 말을 듣자 어차피 소용도 없는 분리수거를 계속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만약 이 다큐멘터리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목적이었다면 외국에서 수입한 플라스틱 쓰레기는 몸체와 뚜껑과 제품명 모두가 같은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지목하며 이렇게 제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파고들고 또 분리수거 과정에서 플라스틱이 서로 다른 플라스틱을 구분하지 않는 문제를 파고들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방송 프로그램은 플라스틱 제조사에 대해서는 단 1초도 말하지 않고 오직 거대한 쓰레기 산, 잘못 분리된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한탄, 그리고 현재의 분리수거가 쓸모 없음을 이야기할 뿐이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들은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분리수거를 하는 각 가정에서는 쓰레기를 잘못 버릴 때 받게 될 과태료 처분을 두려워하며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미 규칙은 충분히 복잡한데 이 규칙을 소화할 더 잘게 나눠진 분리수거 체계는 있지도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가 맞이하는 분리수거는 플라스틱은 모두 플라스틱으로 뭉뚱그려 놓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분리수거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방법도 없이 공격하면 이건 결국 우리가 분리수거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신호를 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