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엘리베이터 사용기

이사 간 건물은 딱 봐도 좁은 땅 위에 억지로 올린 높은 건물이라 엘리베이터 사정이 나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비싼 땅에 지은 싸구려 고층 빌딩은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이 좁아 건물 규모에 비해 엘리베이터 수가 적은 것이 보통입니다. 이에 비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일해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 시간이 되면 아주 많은 인원이 동시에 엘리베이터에 몰려 아수라장이 되곤 합니다. 동네가 복잡한데 비해 지하철 역까지 거리가 짧아 그나마 최악은 아니었지만 단단히 각오했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예상보다 훨씬 더 나빴습니다. 일단 비슷한 규모 건물에 비해 엘리베이터 수가 적었습니다. 이 정도 규모 건물이라면 비상 엘리베이터를 제외하고 엘리베이터 여섯 대가 운용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네 대 뿐이었습니다. 또한 엘리베이터 운용 방식이 멍청했는데 모든 엘리베이터가 1층부터 마지막 층을 모두 커버해 고층부 입주사들이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또 엘리베이터 각각이 연동되지 않아 각 층에서 모든 엘리베이터를 별도로 호출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도착한 엘리베이터 한 대를 타고 나면 나머지 석 대가 아무도 없는 빈 층에 정지하고 이런 동작을 모든 층에서 반복했습니다. 그렇잖아도 오르내리는데 대기시간을 제외하고서도 5분 이상 걸리는 고층 입주자들의 화를 돋우는 괴상한 동작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상태에서도 문 주변 센서에 물체가 감지되면 삐 소리를 냈습니다. 문이 열려 있을 때 소리가 나는 건 당연한 동작입니다만 문이 닫힌 상태에서 만원에 가까울 때 문 가까이 다가서면 듣기 거북한 삐 소리를 반복해서 냈습니다. 또한 이 소리는 만원 경고음과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이동과 조작에 관한 모든 음성 안내가 누락되지 않았습니다. 우선 음성 안내가 한국어와 영어로 나와 길이가 깁니다. 가령 단순이 이동하기만 해도 이런 안내가 나옵니다. ‘문이 닫힙니다’, ‘도어 이즈 클로징’, ‘올라갑니다’, ‘고잉업’, ‘삼층입니다’, ‘디스이즈써드플로어’, ‘문이 열립니다’, ‘도어이즈오프닝’. 여기에 층 버튼을 조작할 때도 모든 조작을 설명합니다. ‘십층’, ‘텐뜨플로어’, ‘육층’, ‘식뜨플로어’, ‘십층 취소’, ‘텐뜨플로어 캔슬’. 출근시간대에 1층부터 높은 층까지 올라가는 모든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각자 버튼으로작하면 음성 안내가 누락되지 않아 한참 올라가는 도중에도 약 1분쯤 전에 누군가 했던 조작 각각의 음성 안내가 계속해서 나옵니다. 덕분에 층에 도착하거나 출발할 때 안내 역시 뒤로 밀려 이상한 층에서 이상한 안내를 했습니다. 여기에 오래 기다렸고 만원인 상태인 데다가 삐 소리는 계속해서 나고 상황과 맞지 않는 음성 안내가 계속됨에 따라 사람들은 점점 더 빡쳤는데 내려가는 도중 누군가가 지하까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인 줄 알고 탔다가 10초쯤 허둥댄 다음 잘못 탔음을 알고 내리는 순간 엘리베이터 안에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한숨을 쉬었습니다.

며칠 지나자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엘리베이터 제조사와 모델을 검색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엘리베이터 탑승자들이 평생에 걸쳐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선택할 일은 없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만약 그럴 일이 있다면 이 제조사의 엘리베이터는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겁니다. 분명 그 회사 엘리베이터에도 더 좋은 모델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엔트리 모델의 기본 상태가 이렇게 까지 나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사용자들이 엘리베이터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이를 바꿀 수 없음을 인식한 질 나쁜 비즈니스 방법니라고 생각합니다.

엘리베이터 여러 대가 연동되어 한 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호출하면 엘리베이터가 한 대만 도착하는 동작은 건물에 입주하고 몇 주가 지나서야 설치됐습니다. 별도 구매해야 하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능을 별도로 구매하도록 한 것은 옳은 선택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건물에 입주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 회사 엘리베이터에 대해 나쁜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회사 엘리베이터는 아파트 같은 싼 건물에나 설치되는 줄 알았다며 엘리베이터 제조사와 건물 임대회사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근본적으로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제품을 교체할 수 없음을 이용해 건설사는 돈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려고 하고 엘리베이터 제조사는 최대한으로 돈을 벌려고 하며 생긴 상황인 것 같습니다.

결론. 이 회사 엘리베이터 기본 모델은 쓰레기입니다. 제 평생에 걸쳐 건물에 설치할 엘리베이터를 고를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기회가 생긴다면 절대로 이 회사 엘리베이터가 선택되도록 놔두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누군가는 정확한 회사 이름을 바로 언급하더라고요. 이쯤 되면 근본적으로 그 회사 엘리베이터는 돈을 더 내도 똑같이 후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