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트림원

인스타그램 타임라인에 이전에 구입했다가 좌절을 준 트림원 바이크컴퓨터 광고가 가끔 나타났습니다.장거리 라이딩으로 잘 알려진 분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는 모습도 보이고요. 특히 장치가 신뢰할 수 있게 동작해야 하는 장거리 라이딩을 하시는 분들이 이 기계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또 무사히 라이딩을 완료하며 기계의 도움을 받으시는 경험을 보며 이제는 쓸만해진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전에 제가 겪은 좌절스러운 경험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해결됐다면 다행이고 또 이런 컨셉이 실제로 유효하게 동작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셈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슬슬 제가 가끔 저 기계를 달고 나갈 때 이게 뭐냐고, 또 괜찮냐고 물어보시는 분들께 추천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적어도 제 이전 장거리 라이딩 경험은 여전히 훌륭하지 못했습니다.

두어달 전에 제주200 때 혹시 길 헛갈릴 때 도움이 될까 해서 들고 갔습니다. 여전히 이 기계는 여러 번 신뢰를 깨는 경험을 주고 있었고 항상 가민이 차지하고 있는 메인 바이크컴퓨터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출발하면서 가민과 동시에 시작했습니다. 첫 CP에 도착할 때 즈음 계속해서 삑삑거리길래 뭔가 하고 보니 제게 인도어 트레이닝 중인지 묻고 있었습니다. 이 기능은 처음엔 없다가 겨울에 인도어 트레이너를 사용하며 아무것도 기록하지 못하는 현상을 여러 번 겪고 나서 더이상 인도어 트레이닝에 이 기계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할 때 즈음 추가됐습니다. 예상하기에는 GPS정보를 수신하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파워미터 정보나 심박 정보만 입력받으면 인도어 모드로 전환할 거냐고 묻는 기능 같습니다. 똑똑하게 동작한다면 나쁘지 않았겠습니다만 이번에는 아웃도어 라이딩에서도 계속해서 인도어냐고 묻고 있었고 여러 번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번에도 이 기계는 망했다 싶어 마운트에서 분리해 저지 주머니에 넣고는 신경을 꺼버렸습니다. 그렇게 점심이 지나고 교래리에 올라가기 전 함덕 CP를지나 근처 편의점에 멈춰 삼각김밥을 먹다가 문득 오전에 이 기계를 저지 주머니에 쑤셔놨던 기억이 나서 꺼내봤더니 이 꼴이 나 있었습니다. 일단 아침부터 달린 거리가 59킬로미터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편의점은 출발지점으로부터 16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고요. 하지만 오전에 이미 인도어 트레이닝 중이냐고 여러 번 물을 때부터 이미 이 라이딩의 거리 기록은 맛이 가 있을 거라고 예상해 이전처럼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트림원이 트림원했다고 생각한 정도였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획득고도는 1400이 넘는다면서 현재 고도는 -5천미터쯤이라고 표시됐습니다. 제가 무슨 지구 외핵 근처에 가 있는 것도 아닌데 또 이건 뭔가 싶었고요. 어이가 없어 사진을 찍고는 다시 저지 주머니에 넣고 라이딩을 마칠 때까지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두어 달이 지난 지금까지 충전하지도 않았고요.

지금을 포함해 한참 전부터 제가 완전히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했고 이건 신뢰할 만한 기계가 아니며 제 잘못된 판단은 현대의 바이크컴퓨터 비즈니스는 작은 회사가 진입해 잘 하기 쉽지 않은 분야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데 있습니다. 항상 가민의 이상한 동작을 보며 '왜 이걸 이렇게밖에 못 만드나' 라고 말하곤 하지만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이 글을 쓰며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기계를 충전해 다음 라이딩에 사용해볼 겁니다. 그때 또 다시 문제를 일으키면 이번에는 아예 파괴해서 건전지 수거함에 버릴 작정입니다.

인스타그램 타임라인에 가끔 나타나지만 여전히 저는 이 기계 구입을 만류합니다. 아직도 긴 라이딩에 신뢰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