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바이크 고장신고

서울에 있는 회사에 다닐 때는 따릉이 1년 이용권을 구입해 사용했습니다. 굳이 회사 가까이에 지하철 역이 있었지만 가끔 좀 떨어진 한적한 장소까지 따릉이로 이동한 다음 지하철을 타기도 했습니다. 어스름한 저녁에 퇴근하며 바로 하늘을 올려다볼 수도 없고 선선한 바람이 불지도 않는 지하로 들어가버리기는 좀 아쉬웠거든요. 그러다가 판교로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퇴근할 수 없게 되어 좀 아쉬웠습니다. 다행히 회사에 샤워 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 집에서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몸무게도 줄이고 체지방률도 낮추는 효과를 추가로 얻다가 올 시즌에는 바이러스 확산 우려로 더이상 샤워 시설을 개방하지 않게 되어 자전거로 출퇴근 할 수 없어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가끔 카카오자전거를 이용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높은 비용에도 어쩌다 아쉬운 순간에 자전거를 찾을 수만 있다면 꽤 괜찮았습니다. 가끔 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때 길 한복판에 놓인 카카오자전거를 피하느라 위험한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또 내가 사용하려고 할 때는 짜증이 아쉬움으로 바뀌는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카카오자전거를 별 부담없이 사용했고 또 시간이 흘러 자전거들이 서서히 고장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아무렇게나 넘어뜨려서 그런지 바구니가 찌그러져 있었고 다음에는 잠금장치 덮개가 사라져있었으며 변속기가 고장나 있었고 그 다음에는 어느 한 쪽 브레이크가 고장나 있었습니다.

바구니나 잠금장치 덮개야 그냥 넘어갈만 했지만 브레이크는 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제동할 수 있더라도 브레이크가 불안한 자전거는 제대로 수거해다가 고쳐놔야만 합니다. 안 그러면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변속기나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는 자전거를 만나면 조심조심 목적지까지 이동한 다음 고장신고를 하는데 귀찮음을 감수하고 고장신고를 하려고 해도 카카오자전거의 고장신고 방식은 고장신고를 할지 말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일단 고장신고 할 자전거를 선택하려면 고장신고를 하려는 그 순간에 자전거를 빌릴 때와 똑같이 바코드를 찍어야 합니다. 자전거를 빌려 판교역까지 간 다음 반납하고 에스컬레이터 위에 서서 역으로 내려가며 고장신고를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방금 타고 온 그 자전거가 기록에는 남아있지만 이 자전거를 고장신고 하려면 다시 그 자전거 옆에 서서 바코드를 촬영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에스컬레이터에 타고 내려가는 중이고 고장신고 버튼을 눌렀다가 이내신고를 포기하게 만듭니다.

또 고장신고를 하고 나면 이 자전거를 대여할 수 없게 됩니다. 가령 역까지 이동했다가 돌아올 때 이 자전거를 다시 빌릴 생각을 하고 있다 칩시다. 그런데 역까지 이동하는 동안 자전거에 문제를 알게 됐고 역에 도착해 이번에는 에스컬레이터를 바로 타기 전에 깜빡 하지 않고 바코드를 찍어 고장신고를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고장신고를 마치는 순간 이 자전거는 더이상 대여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덕분에 나는 일을 마치고 다시 역에 돌아와 빌릴 자전거가 사라졌습니다. 이 상황을 겪지 않으려면 역까지 타고 간 자전거에 고장을 발견했더라도 신고하지 않고 일을 마친 다음 다시 그 자전거를 빌려 최종 목적지까지 이동하고 나서 잊지 말고 바코드를 다시 촬영해 고장신고를 해야 합니다.

변속기 고장은 조만간 구동계 고장으로 확대될 수 있고 브레이크 고장은 말할 것도 없이 즉시 수리해야 하는 심각한 결함입니다. 그런데 고장신고 과정이 귀찮고 또 고장신고가 나를 곤란하게 만들며 이 곤란함을 고장신고를 하지 않고 피할 수 있어 보이게 만드는 고장 신고 과정은 사용자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