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약관 동의 사례

지난번 게임을 업데이트하고 새로 실행할 때 마주친 광고성 알림 수신동의 사례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선택적 동의로 충분한 약관을 때때로 별 생각 없이 동의하게 만들어 고객을 기만하는 다크패턴은 제가 자주 보는 게임에서는 아주 흔하게 사용된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어떤지 감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가령 토스가 내가 요청한 작업을 완료하면 항상 나를 광고 페이지로 보내서 내 할일을 끝마치면 즉시 앱을 강제종료하는 습관을 들이는 정도가 제가 게임이 아닌 다른 앱에서 마주치는 다크패턴의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카카오페이 앱에서 똑같은 경우를 만났습니다.

카카오페이를 실행하려고 보니 업데이트 후 로그인부터 다시 해야 했습니다. 카카오톡 앱을 거쳐 로그인을 한 다음 저를 처음 맞이한 화면이 바로 이겁니다. 지난번에 게임을 실행할 때 만난 바로 그 다크패턴과 똑같이 생겼습니다. 사용자들은 이미 이런 뭔가가 나타나면 별로 확인하지 않고 바로 확인버튼을 터치하거나 ‘전체 동의 후 시작’ 같은 거의 장난질이나 다름없는 인터페이스가 나타날 때 아무 버튼이나 눌러 빨리 인터페이스를 치워버리도록 훈련받아 왔습니다.

서비스를 처음 가입할 때 필수약관에는 이미 동의한 상태이기 때문에 화면에 나타난 모든 약관은 선택약관입니다. 그래서 체크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도 아래쪽의 ‘확인’ 버튼을 터치해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긴 화면을 만나면 사용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던가요?

이 화면이 며칠 전 만난 광고성 알림 수신 동의 사례보다 더 질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앱은 게임 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앱은 내 신용카드와 예금계좌에 접근하고 나 대신 신용카드에 승인을 요청해 대금을 지불하고 내 신용정보를 추측할 수 있는 앱입니다. 그런 앱이 다크패턴을 통해 ‘개인정보 제3자제공동의’를 받는다고요? 선택 약관을, 그것도 이 약관이 즉시 필요한 동작을 하는 상황도 아닌 단지 앱에 로그인하고 앱을 실행하는 순간에 이런걸 띄운다고요?

만약 제가 편의점 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놓고 이 앱을 켰는데 이런 화면이 나타났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내 뒤에 기다리는 사람 두 명이 더 있고 내 앞에선 계산원이 내가 폰을 내밀면 바로 스캔하려고 바코드스캐너를 손애 든 채 내 폰을 노려보고 있는 상황에 이 화면을 만나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지난번 게임 화면은 ‘모두 동의하고 시작하기’ 버튼이 악질적이었다면 이 사례는 빨리 앱을 실행해야 하는 상황 및 이 약관동의가 즉시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 이 화면을 띄움으로써 사용자가 약관의 필수성이나 시급성을 확인하지 않고 체크박스를 터치하게 만듭니다. 사용자는 심지어 체크박스를 터치할 필요 없이 바로 확인버튼을 터치할 수 있다는 것도 쉽게 인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것까지 의도할만큼 이 화면을 개발하는데 관여한 사람들이 강한 의도를 가지지 않았을 거라고 예상하지만 이 확인버튼은 폰을 어느 손에 쥐든 버튼의 활성 및 비활성 상태를 가리기 쉽습니다. OS 테마와 무관하게 노란색인 이 버튼은 검정색 텍스트 색상을 확인하기 전에는 체크박스를 체크하지 않고서도 ‘활성’ 상태라는걸 인지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버튼이 하단 전체에 걸쳐있지도 않고 가운데 ‘예쁘게’ 동그랗게 되어 있어 버튼 상태를 인지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다크패턴의 사용 수준으로는 지난번 게임을 시작할 때보다 못하지만 다크패턴의 악영향 측면에서 보면 훨씬 더 나쁩니다. 이 화면을 보고 당황한 다음 스크린샷을 남기는 경험을 하는 내내 악의 평범성에 대해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