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서랍

얼마 전에 시험 삼아 사용하던 카카오톡 톡서랍 서비스가 곧 유료화된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카카오톡을 통해 주고받은 채팅과 여러 파일들을 자동으로 보관하고 기기를 바꾸더라도 이를 다운로드 받아 복원해준고 합니다. 어떤 데이터든 그냥 사라지는걸 가만 놔두질 못하는 입장에서 이 서비스는 잠깐 동안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서비스가 정확히 어떤 장점을 제공해주는지 지금까지 시험 삼아 사용을 눌러놓던데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카카오톡은 근본적으로 서버에 내 채팅 기록과 주고받은 파일을 짧은 기간 동안만 보관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수사기관에 대화를 쉽게 제출한다고 알려진 후 회사는 대화 내역을 짧은 기간 동안만 보관해 지나치게 광범위한 자료를 수사기관에 제출할 수 없는 기술적인 이유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덩달아 최종사용자 입장에서 대화 내용은 쉽게 사라졌습니다. 폰을 바꿀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텅 빈 대화창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20년전에 사용하던 메신저가 대화기록 뿐 아니라 대화상대목록 마저도 로컬에 보관해 이를 유실하면 대화상대들에게 다른 방법으로 연락해서 자신이 새로 발급받은 번호를 추가해달라고 이야기해야만 하던 상황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다행히 아이폰을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매번 기기를 바꿀 때 아이클라우드 백업을 통해 대화내용이 사라지는 사고를 겪지는 않아 왔지만 항상 스트레스거리입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은 카카오톡이 백업으로부터 복원된 데이터를 신뢰하지 않는 간단한 정책 변경만으로도 완전히 달라질테니까요.

또 카카오톡 내부에 남은 미디어파일은 다시 접근하기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1년쯤 전에 단톡방에서 본 기억이 있는 이미지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만약 찾더라도 이 이미지가 온전한 상태일지 아닐지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그런 검색으로 한참만에 이미지를 주고받았던 대화에 접근한다 하더라도 이미지는 서버에 보존 기한이 끝나 조그만 섬네일만 남아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폰의 스토리지가 부족해 내 손으로 직접 모든 미디어파일을 삭제해버린 후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주고받은 미디어 파일을 그냥 날려버리고 싶지 않은 단톡방에는 며칠에 한번씩 들러 갤러리를 열어 미디어 하나하나를 스크롤하며 폰에 원본 크기 이미지와 비디오들을 따로 다운로드해놓습니다. 이들이 언제 필요할지 모르지만 언젠가 필요한 순간에 깨진 사진 이미지가 나를 놀리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입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카카오톡을 통해 주고받는 파일은 그때그때 별도로 저장해 카카오톡 내부가 아닌 다른 위치에 복사했습니다. 카카오톡을 통해 많은 사진을 주고받는건 굉장히 고통스럽지만 다들 이 작업에 익숙해졌습니다. 이를 대신할 더 나은 온갖 방식이 있었지만 웬만해서는 카카오톡을 그냥 사용하기를 선호했습니다. 이 방법이 아무리 불편하더라도요.

카카오톡 톡서랍은 이런 상황을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어 보였습니다. 여전히 검색은 잘 안되지만 최소한 이미지를 다시 찾아낼 때 깨진 이미지가 나를 놀리는 상황을 만들지는 않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짧게 실험해봤습니다. pdf 파일을 주고받는 단톡방이 있는데 내가 파일을 열어보든 그렇지 않든 톡서랍에 파일이 보관되고 먼 미래에 카카오가 ‘제대로 된’ 검색 기능을 붙여준다면 의미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톡서랍은 여전히 위에서 내가 사진을 로컬에 보관하기 위해 눌러보는 것과 같이 내가 직접 폰에 다운로드한 파일만 백업했습니다. 잘 들르지 않는 단톡방에 파일이 지나갈 때 내가 이걸 직접 눌러보지 않으면 톡서랍을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며칠 지나면 다시 이 파일에 접근하지 못하게 됩니다. 언젠가 개선될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 당장 돈을 내고 이 서비스를 사용하기에는 불안합니다. 기껏 몇 년에 걸쳐 작은 가능성 하나만으로 돈을 내 왔는데 정작 이 기능이 필요한 순간에 역할을 못한다면 차라리 그 돈을 모아 게임스탑 주식을 사는 편이 세계를 위해 더 나을 겁니다.

이제 제 폰에 카카오톡이 차지하는 공간은 50기가에 달합니다. 저 공간을 로컬에서 사용하기 위해 애플에 상당한 돈을 지불해야 했고 매달 아이클라우드 스토리지에도 돈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카카오톡의 파일 재사용성은 후지기 짝이 없고요. 카카오톡이 제시한 월 990원은 내가 아이폰에 거의 활용되지 않는 공간 50기가를 구입하는데 사용할 비용에 비해 압도적으로 저렴합니다만 카카오톡의 미디어파일 관련 기능은 여전히 후지고 이를 그대로 이어받은 서버 보관 기능에 돈을 내기에는 미래의 재사용에 대한 보장이 불확실해 보입니다. 당장 돈을 내며 실험적인 서비스에 돈을 내기보다는 이 돈을 내가 가지고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가능성을 유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