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스트랜딩

이번달에 플레이한 게임은 데스스트랜딩이 아닙니다. 이번달 초에 ‘메트로 엑소더스’를 시작했는데 업무 일정 상 플레이할 시간을 거의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플레이한 시간이 이 게임의 특징을 얼마나 설명할 수 있을 경험인지 판단하기에도 부족해 이번달에는 작년 한창 더울 때 플레이했던 데스스트랜딩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데스스트랜딩은 좀 묘한 게임입니다. 위키피디아에는 ‘액션’장르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오픈월드를 배경으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며 스토리를 진행하고 전투를 플레이할지 말지를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여러 장르의 특징을 빌려 만든 게임이 많은 현대이지만 이 게임은 그런 현대의 기준을 바꿔야 할만큼 장르를 설명하기 쉽지 않은 게임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장르를 구분하는 행동이 독특한 게임플레이를 만들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임의 핵심은 짐을 목적지까지 배달하는 겁니다. 짐은 온몸에 짊어질 수 있고 이 점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과장해 짐을 가지고 걸어가는 행위만 가지고 게임을 만들어냈습니다. 플레이어는 배경과 상호작용해 자연스럽게 위험한 상황을 만들고 유저는 이 상황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단지 게임 상에서 앞으로 걸어가기만 하는데도 이런 긴장이 필요하며 굳이 적대적인 대상을 출연시키지 않고서도 핵심 메커닉이 동작하는 신기한 상태가 됩니다. 여기에 서서히 이동하기 힘든 지형, 짐을 노리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은 적대적 대상, 더 많은 짐을 옮기기 위한 특색있는 탈것과 탈것 각각이 지형과 상호작용하는 서로 다른 특성들이 어우러져 억지스럽지 않고 유저의 결정에 따라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지만 상당히 다른 창의적인 플레이 방식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주고 있습니다.

종종 생존 장르 게임들은 플레이어를 폭력적으로 대합니다. 이 장르는 시간이 지나 플레이어가 충분한 자원을 얻어 잘 죽지 않는 상태가 되면 재미가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게임을 떠날 생각을 하기 직전까지 최대한 시련을 줍니다. 게임의 설정에 따라 맥락은 있지만 플레이어에게 갑자기 꽤 폭력적인 장치를 던져주고 그동안 쌓아온 자원을 빼앗아 다시 살기 위해 게임에 투쟁해야 하는 상태를 만듭니다. 생존 장르의 특징이자 이 장르를 시작한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인데요, 데스스트랜딩도 비슷한 장치를 갖고있지만 그 과정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우선 이러한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자원과 그렇지 않은 자원을 구분했습니다. 거점과 포스트박스에 보관한 자원은 게임 상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합니다. 반대로 세계에 노출되어 있는 자원은 너무 멀리 떨어지거나 비를 맞으면 사라집니다. 이 게임의 비는 타임폴이라는 독특한 설정에 따라 우리에게 익숙한 ‘비가 내린다’는 행동을 플레이어로부터 자원을 빼앗는 동작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했습니다. 그래서 실컷 만들어놓은 구조물이 망가져도 ‘아. 비를 맞았으니 어쩔 수 없지’ 하는 식의 감정을 이끌어냅니다.

지난달 ‘사이버펑크 2077’리뷰에서 오픈월드를 만드는 몇몇 접근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데스스트랜딩의 오픈월드 제작 접근방법 역시 한번 짚고 넘어갈만 합니다. GTA나 사이버펑크가 공간 집약적으로 오픈월드를 만들었다면 고스트리컨이나 파크라이 시리즈는 상대적으로 자연물에 가까운 열린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플레이를 만들어내는 스타일입니다. 또 메탈기어솔리드 팬텀페인은 비슷하지만 지형 디자인을 꽤 강하게 통제해 각각의 미션이 통제된 레벨 안에서만 진행되도록 디자인했고요. 이에 비해 데스스트랜딩은 플레이어가 자연환경과 강하게 상호작용하게 만들었습니다. 평평한 길과 바위가 걸린 지역, 얕은 여울과 깊은 강물, 절벽과 낭떠러지, 바람과 눈과 비 같은 자연현상에 따라 플레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이는 플레이어의 행동에 시청각적으로 세세한 피드백을 줍니다. 그래서 GTA에 비해 훨씬 느슨하게 만들어진 오픈월드이지만 여러 지형으로 구성된 거점 사이를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플레이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이제 코지마 히데오식의 스토리텔링은 그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제 이런 스토리텔링은 분명 풍부하지만 장황하고 어떤 순간에는 도리어 몰입을 방해합니다. 여러 캐릭터들의 과거사들과 이들이 모여 이루어진 현대에 이르는 설정은 훌륭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끼어들어 게임에 지금 눈앞에 일어나느 상황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또 다양한 플레이스타일을 지향하면서도 중간중간의 보스 체크포인트만은 이런 플레이를 허용하지 않아 플레이스타일에 따라 이 부분을 클리어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는 비슷한 장치를 채용한 게임들이 겪는 문제와 비슷한데 RPG 어쎄신크리드 시리즈에서 암살만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지만 체크포인트 보스는 이 플레이를 허용하지 않는 구성이어서 유저에게 좌절을 주는 식입니다.

데스스트랜딩은 개인적으로 영감과 좌절과 실망감을 함께 안겨준 꽤 모호한 게임이었습니다. 참고로 선택한 이미지는 다분히 의도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