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모든 기능이 게임의 가장 큰 목표에 부합할 필요는 없어요

시간을 뒤로 돌려 처음 게임의 큰 부분을 시작부터 끝까지 기획해야 했을 때로 돌아가 봅시다. 그 전까지는 주로 기능의 시작과 끝이 서로 아주 가까운 항목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이미 완성되어 있지만 완성 이후 게임 곳곳이 바뀌면서 현 시점의 새로운 요구사항을 만족하지 못하는 기능이 현 시점의 요구사항을 만족하도록 하는 소위 ‘개선 기획’을 하기도 하고 또 작은 기능을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가령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표시되는 공지사항 팝업의 기능을 설계하거나 인게임 채팅 인터페이스를 설계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 좀 더 범위가 크고 결과가 모호한 메커닉을 설계할 일이 생깁니다. ‘전투 하이컨셉’이나 ‘성장 구조 하이컨셉’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이름을 들으면 지금도 망했다는 생각부터 드는데 이유는 이런 일은 일의 시작과 끝을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일에 의해 무엇을 어디까지 정의해야 하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을 진행하는 내내 지금 하고 있는 이 고민이 내가 담당한 일에 어울리는지 고민하게 되고 결과물을 만들어 가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의심하게 되며 심지어 결과물에 의해 모두의 작업이 영향을 받기 시작하며 질문을 받는 순간에도 과연 이전에 정의한 이 모든 규칙들이 올바른지 의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해야 하는 순간은 이 일을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면 누구에게나 찾아 오고 누구나 요구사항과 결과가 모호한 기획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처음으로 MMO 게임의 ‘밸런스 기획’을 시작할 때 게임의 큰 목표에 기반해 밸런스로 고객이 얻을 경험과 우리가 얻을 개발 경험을 정의하고 이 경험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정의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 힘든 점 중 하나는 이렇게 높은 수준의 요구사항을 설계해 구체적인 실행 계획까지 내려오다 보면 게임의 모든 실행 계획 하나하나가 높은 수준의 요구사항과 직접 연결된 구체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형태로 설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게 올바른 접근일 수도 있습니다. 가끔 유명한 개발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우리가 직접 마주하는 자잘한 시스템 하나까지도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설계되었다고 말하곤 하니까요. 그렇게 설계하지 못하는 우리들이 아직 그분들에 비해 한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원칙 상 게임의 모든 구성요소는 가장 높은 수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기적으로 연관을 가지고 정의되어야 하며 가장 높은 수준의 목표와 별 관련이 없는 항목은 설계에서 제거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정작 개발해 보면 예쁘고 아름다운 가장 높은 수준의 요구사항과 관련이 없는 기능을 설계해야 하는 상황은 항상 나타납니다.

어떤 MMO 게임이 던전에서 밀도 있는 강렬한 경험을 주기 위해 개발되고 있다고 해봅시다. 던전에서 밀도 있는 경험을 준다면 이 게임은 근본적으로 MMO 장르여야 할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사정이나 투자자들의 요구, 시장의 요구 등에 의해 게임의 핵심은 던전의 강렬한 경험을 향해 개발하고 있지만 게임의 껍데기는 MMO여야만 하는 상황이 항상 일어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밀도 있는 경험을 주는 던전 이외의 기능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불행한 상태가 됩니다. 그 기능들이 게임의 큰 목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게임 전체의 공통 목표에 부합하고 또 기여하는 것 같은 형태로 설계하고 또 그렇게 설명해야 할 것 같은 압력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현대로 돌아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어떤 게임디자이너의 고민을 들어 봅시다. 전투 디자인의 근간을 설계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번에도 던전 플레이에는 밀도 있고 강렬한 경험을 줄 계획을 세우고 이 경험이 게임 전체의 목표에 부합함을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에 도달하는 중간 과정 즉 마을을 빠져나와 던전까지 걸어가는 동안에 마주치는 몬스터들과 가벼운 전투를 하는 경험을 게임의 큰 전투 목표와 연결하기 어려워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이제 이 상황에 행동할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방법이 올바른 방향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요. 아직 스스로가 잠깐 이야기한 인터뷰에 나오는 대단한 개발자들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단순한 결론에 다다른지도 모르고 또 그런 결론으로 프로젝트 전체의 가능성을 재단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상황을 해결하는 내 접근은 게임의 모든 구성요소가 게임 전체에 관여하는 가장 큰 목표를 해결하는데 직접적인 연관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강렬한 던전 플레이 경험을 목표로 하는 게임이 있다면 던전 플레이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기능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향으로 디자인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와 관련이 적은 기능들은 이 게임의 가장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억지로 쥐어 짤 필요도 없고 쥐어 짤 수도 없습니다. 가령 이벤트 팝업을 담당한 사람이 강렬한 던전 경험과 이벤트 팝업 사이의 연관을 억지로 만들어내 아무 의미 없는 말을 발표에 포함해야만 하는 압력을 느낄 필요가 없고 또 그런 압력을 덜 느끼도록 조율해야 합니다.

인게임 상점은 우리 모두가 오늘 집에 돌아가 밥을 먹고 두 발 뻗고 잘 수 있게 만드는 핵심 요소이지만 게임의 근본적인 목표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역시 게임의 근본적인 목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하더라도 상점 본연의 목표에 집중하면 됩니다. 굳이 게임의 가장 큰 목표와 연관을 고민하느라 시간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결론. 종종 우리들은 게임의 여러 작은 요소를 디자인할 때 게임의 가장 큰 목표와 연관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대단한 분들의 인터뷰에서, 대단한 분들의 책에서 마치 그런 것처럼 보이니까요.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의 가장 큰 목표는 이 목표와 직간접적인 연관을 가진 기능에 영향을 줘야 합니다. 하지만 그 외의 기능은 각자의 목표에 따라 개발하면 됩니다. 그 외의 기능이 게임의 가장 큰 목표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내는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