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램프 서비스는 무의미 할 수도 있다.

일을 하면서 인게임 경제 시스템 뿐 아니라 이 경제 시스템에 연동될 블록체인 경제 시스템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금 참여하는 프로젝트에서 기획 입장에서 가장 도전적인 부분 중 하나는 전통적으로 닫힌 경제에 기반해 설계하고 오직 닫힌 경제에 기반해 동작하는 인게임 경제 시스템에 게임 입장에서 전혀 또는 거의 통제할 수 없는 블록체인 기반 경제 시스템을 연동하면서도 인게임 경제가 망가지지 않도록 하는 설계를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애초에 그런 일이 가능하기는 한지 의심스러웠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유로존에서 찾을 수 있는데 유로존에 속한 각 국가들은 국가 별 중앙은행이 보증하는 화폐를 사용하는 대신 모두 유럽 중앙은행이 보증하는 같은 화폐를 사용합니다. 국가 마다 경제 규모나 처한 상황이 서로 다른데 이 때 국가 별 중앙은행이 보증하는 별도 화폐가 있다면 취할 수 있을 통화정책을 유로존 국가들은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제 시스템 속에서 항상 이득을 보는 국가와 항상 손해를 보는 국가가 생기고 이들 사이의 균형을 정치적으로 접근해 조절해야 하기도 합니다.

게임 경제도 비슷한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모든 게임의 경제는 서로 완전히 고립된 상태였고 한 게임 경제가 다른 게임 경제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게임 경제는 이런 특성에 기반해 설계했는데 이 기반에 의해 가능한 설계 중에는 의도적으로 성장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게임 전체에 성장 압력을 가하는 것이 있습니다. 흔히 수직 성장 요소를 추가한다고 말하는데 이전까지 게임 상에서 가장 강했던 요소들이 의도적인 성장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다음에는 더 이상 이전만큼 강하지 않아 새로운 수준에 적응하기 위한 플레이를 요구합니다.

물론 전통적인 게임 중 서로 완전히 고립되지 않은 사례도 있습니다. 가령 한때 넥슨캐시는 넥슨닷컴에서 서비스하는 모든 게임에 사용할 수 있었는데 고객이 유동성을 지불하고 넥슨캐시로 바꾼 상태이더라도 아직 넥슨캐시는 특정 게임에 지출되지 않았으며 게임의 운영 상 이벤트나 인기에 따라 지출되는 게임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게임들이 서로 완전히 고립되지 않고 같은 플랫폼 상에서 서비스 되는 서로 다른 게임으로부터 영향을 주고 받곤 했습니다.

일 때문에 블록체인 관련 생각을 하면서 전통적인 게임 경제 시스템을 설계하던 관점과 여기에 게임 입장에서 거의 혹은 전혀 제어할 수 없는 블록체인에 기반한 경제 시스템을 붙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어떻게 하면 블록체인에 게임 경제를 노출시키면서도 전통적인 게임에서 하던 것처럼 강력하게 인게임 경제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사실 유로존을 생각하면 답이 없는 것 같은 문제 같아 보이면서도 한국의 지역화폐를 생각하면 또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블록체인에 기반한 경제 시스템에 익숙한 고객들에게 인게임 경제를 어느 정도 제어 가능한 반 고립 상태로 만들기 위한 또 다른 화폐 시스템은 반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지만 만약 이런 체계를 채용한다면 이를 게임의 문법으로 반감을 최소화하는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것 또한 인게임 경제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블록체인을 통하든 통하지 않든 인게임 안팎으로 재화가 드나들 때 실제 세계에서 외환 관리 시스템이 하는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뭔가의 장치가 필요할 거라고 예상합니다.

그나저나 지금부터 할 이야기 때문에 지금까지 엉뚱한 이야기를 마구 해 댔는데 이렇게 블록체인에 경제 시스템이 노출된 상태로도 인게임 경제 시스템이 망가지지 않거나 최대한 덜 망가지게 만드는 규칙을 설계하면서 한 가지 지적을 받았는데 온램프 서비스와 연동되는 지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온램프 서비스는 간단히 기존 블록체인 환경이 고객들에게 적대적인 사용 경험을 주는 문제가 있어 블록체인에 기반한 거래를 활성화하는데 한계가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중간에 추상화 레이어를 추가해 기존에 다른 서비스에 유동성을 지불하고 게임 화폐를 구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객 입장에는 마치 과거 넥슨닷컴에 로그인 해 유동성을 지불하고 넥슨캐시를 구입하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되지만 추상화 레이어 뒤에서는 화면에 표시된 넥슨캐시가 사실은 어떤 블록체인에 등록된 일종의 코인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블록체인에 기반한 서비스에 지불하려고 할 때 넥슨캐시를 사용하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사용 경험을 통해 사실은 블록체인을 통한 지불이 일어납니다.

이런 구조와 역할을 생각해볼 때 온램프 서비스는 게임 입장에서는 그저 결제수단 중 하나가 더 추가되는 거라고 이해했습니다. 게임에 돈을 내고 싶어진 고객이 유동성을 지불하려고 할 때 표시되는 여러 가지 결제수단, 가령 페이팔, 비자, 마스터, 애플페이, 삼성페이 같은 목록에 그냥 우리가 채택한 온램프 서비스 하나가 추가되어 있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에 있는 다른 결제수단을 선택하면 우리가 직접 고객의 유동성을 수취하고 인게임 재화를 발급하고 온램프 서비스를 선택하면 블록체인에 기반해 이른바 코인을 수취하고 동일하게 인게임 재화를 발급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온램프를 고려하든 고려하지 않든 게임 경제 시스템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접근은 경제 시스템을 리뷰하는 기간 내내 지속적으로 지적을 받았고 결국 개인적으로는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온램프 서비스 적용이 게임 경제 시스템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이해한 것처럼 자료와 문서를 수정해 리뷰 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온램프 서비스는 게임 입장에서 사실상 무의미할 뿐 아니라 블록체인 관점에서 대단히 위험한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온램프 서비스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 블록체인의 적대적인 사용 경험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고객으로부터 유동성을 수취하고 특정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폐로 교환해 주는데 이 과정이 블록체인에 기반한다 하더라도 고객 입장에서는 이를 알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온램프 서비스의 역할이자 장점이기는 하지만 온램프 서비스에 의해 블록체인에 의한 거래 과정이 완전히 추상화 되는 순간 고객 입장에서는 블록체인에 기반한 게임이나 그렇지 않은 게임을 구분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그저 페이팔로 지불할 수 있는 게임과 온램프로 지불할 수 있는 게임이 있을 뿐이며 블록체인에 기반한 게임으로써 가지는 특징에 전혀 관심을 가지게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온램프 서비스는 분명히 사용하기 편리한 것은 맞지만 온램프 서비스 스스로가 블록체인에 사용할 공개키와 비밀키를 모두 가지고 있어 스스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동시에 보안 사고에 대단히 취약합니다. 만약 온램프 서비스 주체가 악의를 가지는 순간 모든 비밀키를 유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악의적인 주체에 의해 시스템이 장악되었을 때에도 모든 비밀키가 노출되어 온램프 서비스를 사용하는 모든 고객이 한 번에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결론. 블록체인에 경제 시스템이 노출된 게임 경제 시스템을 설계하며 온램프 서비스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온램프 서비스는 사용자 적대적인 블록체인의 사용 경험을 추상화 해 다른 결제수단과 거의 동일한 경험을 통해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온램프 서비스를 통한 고객은 블록체인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거나 인식할 필요가 없으므로 블록체인에 경제 시스템이 노출된 게임에 매력을 느끼거나 별도의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온램프 서비스 자체가 보안 사고에 취약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