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해본 디지털 펜 정리

디지털 기계로 '모든' 메모를 대체한지 이제 7년째입니다만 여전히 모든 메모를 타이핑으로 대체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계에 메모를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손으로 글씨를 쓰는 쪽이 더 재미있고 틀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빨리 메모로 만들어낼 수 있어서 손으로 하는 메모를 굳이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그 댓가로 항상 디지털 기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든지 안정적인 펜 필기 환경을 찾아내는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인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은 지금까지 사용해본 디지털 메모 펜을 소개합니다.

맨 처음 써본 펮은 아이폰 3GS를 처음 쓸 무렵에 구입한 것입니다. 처음으로 본격적인 터치 기계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아이폰을 사용하기에 인류의 손가락이 덜 진화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기에 정전식 터치를 지원하는 펜을 한 2만원쯤 주고 산 기억이 납니다. 글씨를 쓰기에는 너무 두꺼웠고 글씨를 쓰기에 적당한 소프트웨어도 없었습니다. 다만 자잘한 버튼을 더 잘 터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펜은 멍텅구리에 가까웠고 아무런 기능도 없었지만 별 기대도 불만도 없었습니다.

두번째는 53이란 회사에서 만든 펜슬이라는 제품입니다. 한참 아이패드로 필기를 대신해보려고 노력하던 시대였는데 아직은 누구나 10개씩 가지고 태어나는 스타일러스를 이야기하던 그분이 살아계시던 시대였던 나머지 애플펜슬 같은 기계를 상상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 펜슬은 같은 제조사에서 만든 페이퍼라는 앱과 함께 사용하면 꽤 괜찮은 감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블루투스로 약간의 필압도 지원했습니다. 또 펜을 뒤집어 문지르면 지우개 역할도 했습니다. 여전히 글씨를 쓰기에는 지나치게 두꺼웠지만 적당한 보정 기능이 있는 소프트웨어와 필기 확대 기능을 사용하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디지털 기계에 필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사람들이 애플펜슬 1세대의 충전방법을 놀리지만 이 펜슬의 충전방법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

세번째는 삼성 슬레이트 PC에 들어있던 S펜입니다. 와콤 기술로 만들었다고 알고있습니다. 드디어 두껍지 않은 펜을 사용할 수 있게 됐고 이때부터 모든 메모를 보관할 소프트웨어로 원노트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패드용 노트 앱은 여러 앱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어 장기간에 걸쳐 신뢰할만한 앱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필기 경험 자체도 마땅한 기계가 없어 나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쪽은 펜팁이 실제 펜에 가깝게 가늘었고 와콤 펜심과 호환되며 충전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본격적으로 필기를 시작하기에 완벽한 기계였습니다. 펜슬과 같이 뒤집어 문지르면 지우개 역할도 했습니다. 슬레이트 PC에 지문방지필름을 붙이고 하드펠트심을 사용했는데 나쁘지 않았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종이 질감의 필름이 나오지만 그 시대에는 그런 제품이 없었습니다. 어쨌든 이 S펜은 거의 4년 이상 필기를 담당하게 됩니다.

네번째도 S펜입니다. 이건 시간상으로는 가장 최근에 사용하게 됐는데 안드로이드 게임을 돌릴 생각으로 갤럭시탭 S3를 중고로 샀더니 의도하지 않게 펜이 딸려왔습니다. 동일한 와콤 기술 기반으로 동작하는 기계입니다. 방금 소개한 이전 세대 S펜과도 호환되고 갤럭시탭 뿐 아니라 슬레이트 PC에서도 호환됩니다. 펜팁이 더 가늘어져 필기하는 느낌은 좋아졌지만 더이상 와콤 펜팁과 호환되지는 않습니다. 또 뒤쪽에 지우개 기능도 없어졌고요. 개인적으로는 윈도우 OS에서 주로 펜을 사용하다 보니 안드로이드 OS에서 제공하는 펜 환경이 그리 편안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쉬운 점은 이제 다음에 소개할 배터리를 사용하는 서피스 펜에 비해 어쩔 수 없이 반응속도가 느리다는 점입니다. 이건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서피스 펜입니다. 이제 2년이 좀 넘었습니다. 그러니까 세번째 소개한 슬레이트 PC와 S펜 조합 다음에 사용하기 시작한 환경입니다. 처음에는 배터리가 들어가는 묵직한 펜에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았습니다. 서피스 펜은 압도적으로 무거웠고 쉽게 피로해졌습니다. 참다못해 다시 S펜과 슬레이트 PC를 집어들고 필기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무거운 펜에 익숙해졌고 무거운 댓가를 톡톡히 체험했습니다. 일단 서피스 펜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갑작스레 동체시력이 좋아졌는지 S펜의 딜레이가 크게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적당히 참아가며 쓸 수는 있겠지만 결코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서피스 펜 역시 뒤집어 사용하면 지우개로 쓸 수 있고 서피스 프로 옆에 자석으로 달라붙어 휴대하기도 쉽습니다. 또 서피스 기계의 세대가 넘어가거나 신형 서피스 펜이 나와도 S펜처럼 서로 호환되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도구로 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댓가로 이제 개인 원노트 크기는 수십 기가에 달해 어지간한 기계에서 메인 원노트 전자필기장을 열 수가 없는 상황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

지금의 필기 체계에 만족하지만 애플펜슬 같은 제품도 궁금한 것이 사실입니다. 잠깐씩 빌려서 사용해봤지만 그걸로는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전환비용이 엄청나고 세대교체 후에는 이전 모델과 서로 전혀 호환되지 않은 점은 이런 기계를 가장 자주 사용하는 도구로 삼기에는 부담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애플펜슬을 제외하면 서피스 펜과 원노트가 지금까지는 가장 나은 메모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