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머링크

결론: 지난 20년 동안 퍼머링크를 네 번 깨먹었는데 그때마다 별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올해 문득 구글애널리틱스에 남은 10년전에 없앤 경로를 찾는 시도를 보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처음 도메인을 사용하기 시작한지 올해 딱 20년이 됐습니다. 다들 인터넷 홈페이지를 처음 만들던 시대에 도메인이 있으면 간지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실제로 간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다만 여러 회사와 서비스의 흥망성쇄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대응할 계기가 된 점 정도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회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영구적이지 않으며 하다못해 개인이 운영하는 도메인의 유지기간보다도 짧은 시간 안에 사라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쉽게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기도 했습니다.

20년 동안 글을 써오긴 했지만 중간에 솔루션을 여러번 바꾸면서 퍼머링크를 여러번 없앴습니다. 도메인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할 때는 한창 블로그 붐이 일어 다들 글을 쓰고 트랙백을 주고받던 시대였는데 왜 그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남들이 다 쓰던 이글루스 대신 직접 블로그 도구를 만들어 쓰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 얼기설기 만든 도구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5년쯤 사용한 다음 한동안은 모니위키를 사용했습니다. 주변 사람들 사이에 갑자기 웹사이트에 위키를 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널리 퍼졌고 저도 유행에 따랐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유행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는데 이유는 모든 사람들의 위키는 각자에게 분리되어 있었고 사람들 각각은 다른 사람의 위키를 편집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블로그 도구나 게시판에 비해 불편하게 느껴졌고 금새 아무도 사용하지 않게 됐습니다.

2005년 경에는 태터툴즈라는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퍼머링크를 크게 고장냈습니다. 새 블로그 도구는 페이지 주소를 숫자 1부터 증가시키는 모양이었고 그 전에 사용하던 블로그 도구는 좀더 큰 숫자를 사용했습니다. 이때도 퍼머링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개인 웹사이트에 크게 고민할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2010년 경에는 워드프레스 한동안 워드프레스를 사용했습니다. 이 즈음에는 퍼머링크를 옳기기 위해 꽤 노력했습니다. 기존에 블로그에서 글을 모두 익스포트해서 새 블로그 도구에 임포트할 수 있는 포멧으로 정성들여 수정한 다음 임포트해보고 제대로 될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블로그 주소 뒤에 숫자를 붙이는 똑같은 형식을 사용해 이전 블로그 글을 같은 주소로 옮겨오는데 성공했습니다. 사실 기존에 사용하던 도구에 별 불만은 없었지만 새 도구가 좀더 있어보였던 기억입니다. 아니면 새 도구가 궁금해서였을 수도 있고요. 그냥 다른 위치에 설치해놓고 잠깐 사용해봤어도 됐을텐데 이 즈음에는 새로운 도구를 보면 꼭 내 컨텐츠를 모두 임포트해서 완전히 옮겨야만 직성이 풀렸습니다.

1년쯤 뒤에는 갑자기 내 계정에 설치해 사용하는 모든 도구에 갑자기 염증을 느꼈는지 텀블러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텀블러는 도메인을 가지고 있으면 도메인을 그대로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메인 이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내 계정에 뭘 인스톨하고 데이터베이스를 연결하는 등 아무 작업도 할 필요가 없었고 호스팅 서비스에 돈을 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어떻게든 모든 글을 옮기려고 꽤 노력했던데 비해 이 즈음에는 모든 글을 항상 유지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텀블러로 옮기면서 이전에 있던 글은 그냥 없애버렸습니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딱히 아까운 생각은 안 드는데 그때 왜 그렇게 생각이 바뀌었는지는 아직도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후로 3-4년 동안 잠자코 텀블러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사이에 깃헙 페이지를 사용한 정적 페이지 생성 도구에 한눈을 팔았습니다. 이 즈음의 제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였고 이번에도 텀블러를 없애고 jekyll로 옮겨 한동안 사용했습니다. jekyll로 옮길 때는 텀블러로부터 이전하는 도구까지 있었습니다. 기존 주소를 모두 유지하고 블로그 도구만 바꿀 수 있었습니다. 글을 수정한 모든 기록이 남기를 원하던 요구에 딱 맞았습니다. 하지만 정적 페이지 생성 도구를 한동안 사용하면서 제게는 글을 쓸 때마다 정적 페이지를 모두 새로 익스포트하고 이걸 커밋하고 푸시하는 과정과 이 과정을 수행할 기계를 항상 사용하는 과정 자체가 글쓰기를 방해한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이 이후로는 더이상 정적 페이지 생성 도구를 사용하는 대신 항상 글 작성 환경을 서버 쪽에서 동시에 제공하는 도구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약 4년 전부터 도쿠위키에 정착했습니다. 위키는 방금 이야기한 페이지 각각과 이들을 연결하는 하이퍼링크 유지관리 기능을 외부 프로그램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처리할 수 있고 웹브라우저만 있으면 글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도메인을 유지한 상태로는 하위에 아무 주소나 자유롭게 만들어낼 수 있었고 제가 이때까지 가지고 있던 블로깅 스타일에 가장 가까웠습니다. 이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위키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다만 여느 블로그에서 제공하던 기능은 무시했습니다. 가령 오래 전에는 인기있던 트랙백이나 피드 제공, 답글 기능 같은 것들이요. 가령 답글은 요즘 세상에 누가 블로그 답글에 피드백을 남기나 싶었습니다. 그런 피드백은 트위터에서 찾아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싶고요.

지금 이렇게 정리하면서 보니 20년 동안 중간에 퍼머링크를 네 번 깨먹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퍼머링크를 고장내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개인 웹사이트인데 뭐 별거 있겠나 싶었고요. 그러면서도 종종 구글 검색결과의 다른 웹사이트 링크가 깨진 것을 보며 짜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구글 애널리틱스의 방문 기록에 2005년쯤에 심심해서 만들었다가 널리 퍼졌던 심리테스트 주소가 나타난걸 봤습니다. 이 주소는 처음 만든 다음 약 5년쯤 유지하다가 텀블러로 옮기면서 도메인에 있던 자잘한 스크립트를 모두 없애버리면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올해 기준으로 이 주소가 없어진지 거의 10년이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이 주소로 접속을 시도하는 기록이 있었고 저는 그 주소를 서빙하던 스크립트조차 가지고있지 않습니다.

문득 내가 뭘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년 전과 지금 사이에 별로 달라진 점이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제를 짧은 제목으로 적어놓고는 그걸 일주일 동안 가끔씩 떠올리다가 주말에 같은 제목 아래에 한번에 머릿속에 있던 생각을 거의 덤프하다시피 한번에 쭉 늘어놓고 저장한 다음 오타만 수정해서 그냥 공개해버리는 식으로 블로그를 작성해 오고 있습니다. 어떤 시대에 어떤 도구를 사용하던 똑같이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때그때 호기심이나 기분에 따라 도구를 바꿨고 어떤 때는 퍼머링크를 유지했지만 또 어떤 때는 모든 글을 날려버렸습니다. 그 글들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값비싼 인터넷 자원을 사용해 머릿속을 덤프하는데 사용하고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그런 덤프를 사용하고 또 재미삼아 만든 심리테스트를 몇 년 동안 찾아왔습니다. 제가 퍼머링크를 날려버린 건 그런 가능성을 없애버린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쎄요. 지금은 위키 시스템에 만족하고 당분간 이 체계를 없앨 가능성은 아주 낮습니다. 위키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어느정도 정규화된 모양으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고 이제 이 기록이 많이 쌓여 이전처럼 블로그 글 몇 천 개를 버릴 결정을 하던 수준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또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퍼머링크를 유지하고 내 자신에게 의미가 없어졌더라도 누군가에게 의미있을지도 모르니 함부로 퍼머링크를 없애버리고 또 그 주소에 있던 컨텐츠를 없애는 결정은 웬만해선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사라진지 10년쯤 된 주소로 여전히 접근을 시도하는 기록이 있다는 점을 새겨둘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