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매월 중순이 다가오면 에스케이텔레콤으로부터 요금고지서가 이메일을 통해 도착합니다. 요굼고지서 내용은 항상 필요한 것 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가령 내가 사용하는 이름이 복잡한 요금제의 원래 요금에서 출발해 원래 함께 제공되는 서비스 요금 여러 개를 제외하고 또 여러 가지 명목으로 할인되는 비용을 차례로 제거한 다음 남는 비용에 부가가치세를 더하고 원단위를 버림하고 남는 비용이 맨 아래에 적혀있습니다. 제법 큰 비용으로 시작해서 맨 아래에는 그럭저럭 납득할만한 금액으로 끝나고 항상 같은 금액이 청구됩니다. 그래서 정확한 금액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달에는 비용이 조금 달랐습니다. 천 얼마가 추가돼있었습니다

부가서비스 항목에 PASS 세이프가드라는 항목이 추가되어 있었고 이 명목으로 천 얼마가 청구됐습니다. 한동안 바빠서 정신이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내가 뭔갈 가입한 기억은 없었습니다. 또 그 즈음에 제 모든 기록을 찾아봤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상황을 설명하고 이게 뭐냐고 물었습니다만 상담원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지난달 어느 시점부터 이 서비스에 가입했고 이 서비스는 금융거래정보를 요약해주고 침해사고가 발생할 때 일종의 보험처럼 동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에스케이텔레콤은 요금수납을 대리할 뿐 실제 제공되는 서비스에 대한 문의는 '핀브릿지'라는 회사를 통해야 하며 이 상황을 그 회사의 대표번호로 전화해서 설명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기 전에 문자메시지와 PASS 앱의 인증요청 기록을 확인한 상태였고 내가 저 'PASS 세이프가드'라는 서비스를 신청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날짜에는 인증요청 기록이 없었습니다. 문자메시지에만 이 서비스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었는데 다른 메시지에 묻혀 놓친 모양입니다. 내가 PASS 앱을 통해 유료 서비스에 가입했다면 나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전송된 핀코드 입력을 요구하거나 PASS 앱 자체에 인증내역이 남아있을 것을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상담원은 내가 그 날짜에 서비스를 신청했다는 기록 외에 내가 어떤 방법으로 이 서비스 가입을 승인했는지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상담원이 수행한 쓸모있는 일은 나 대신 저 핀브릿지라는 회사에 문의를 직접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마저도 수행하지 않았다면 문제는 좀 더 빨리 심각해졌을 겁니다. 이미 이 시점에 저는 이게 사기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저 핀브릿지라는 회사가 정확히 뭘 하는 회사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게 PASS 라는 인증 앱을 만드는 회사인지 아니면 그 앱을 통해 가입되는 '세이프가드'라는 일종의 보험 서비스를 판매하는 업체인지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내 상황을 저 회사에 문의해달라고 한 다음 통신회사를 통한 상담은 종료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난 다음 핀브릿지라는 회사의 대표번호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처음 몇 분 동안은 에스케이텔레콤 고객센터로부터 들은 내용을 똑같이 반복했습니다. 내가 지난 달의 어느 시점에 PASS 세이프가드라는 서비스게 가입했고 그때부터 요금이 일할로 청구되기 시작했다고요. 저는 아까 에스케이텔레콤에 문의하며 한 설명을 똑같이 반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뭔가의 유료서비스에 가입했다면 내가 가입을 승인한 어떤 기록이라도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나에게 핀코드를 전송한 기록이나 내가 PASS 앱을 통해 인증요청을 수락한 뭔가의 흔적이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 핀브릿지라는 회사는 여전히 앵무새처럼 내가 그 날 서비스에 가입했다는 이야기 외에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PASS 앱을 통해 내가 서비스 가입을 승인한다는 개념을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저 회사는 끝까지 내가 서비스 가입을 승인한 경로를 설명하지 못했고 세이프가드 서비스의 원래 목적인 금융사기사건의 배상기능과 비슷하게 비용을 환불해주기로 했습니다. 다만 지난달과 이번달 통신요금에는 여전히 비용이 청구되며 이 비용은 7월 말일날 계좌로 정산받기로 했습니다. 소액이지만 그 동안 저 돈은 제가 처분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또 다음달 중순에도 요금고지서에 청구되어 이 사기사건을 기억나게 할 겁니다.

2천원쯤을 돌려받기 위해 거의 30여분간 전화를 한 다음 생각해봤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에스케이텔레콤은 다른 회사로부터 서비스요금 수납을 대행하지만 그 다른 회사의 서비스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핀브릿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인지 아니면 앱 개발 대행사인지조차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핀브릿지라는 회사 역시 PASS 앱을 통해 내가 유료 부가서비스에 가입했다는 말을 되풀이할 뿐 앱의 어디에도 기록이 없었고 문자메시지에도 가입완료 메시지 이외에 아무런 승인요청 흔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했습니다. 악의적인 행동이 여러 겹 겹쳐져 이런 문제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작은 돈을 뺏는 낡은 소액결제사기와 똑같아 보였습니다. 문제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에스케이텔레콤은 부가서비스 요금수납을 대행하는 업체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통화내용으로 미루어 통신회사와 핀브릿지 양쪽 모두 정보수준은 거의 비슷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내가 서비스에 가입한 날짜는 알고있지만 내가 어떤 방법으로 가입을 요청했고 승인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내게 가입 완료 문자메시지가 전송된 사실을 양쪽 다 알고있지만 그 외에는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둘째. 미션 크리티컬한 인증시스템이 자기 자신을 통한 인증 및 가입승인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PASS 앱은 온라인에서 본인인증을 대행하는 시스템입니다. 이 앱은 최근에 광고를 공격적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핵심 기능에 접근하기 전에 전체화면 광고를 표시하고 짧은 시간 동안만 광고를 끄는 옵션만을 제공합니다. 조금만 실수하면 앱의 핵심 기능을 사용하려던 목적을 잃어버리고 광고 페이지로 끌려갈 수 있습니다. 푼돈 좀 벌겠다고 그런 짓을 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라도 푼돈을 벌어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온라인 거래에서 본인인증과 부인방지기능을 수행하는 미션 크리티컬한 앱입니다. 그런 앱이 다른 서비스로부터 인증요청 기록은기록하면서 자기 스스로 고객에게 제시한 어떤 가입 인터페이스와 그 인터페이스를 통한 승인 기록은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은 지나치게 안일합니다.

마지막으로 세이프가드라는 서비스는 금융거래가 일어날 때 내게 정보를 제공하고 만약 이게 사기에 의한 거래로 밝혀질 경우 보상해준다고 합니다. 이건 일종의 보험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서비스 제공업체들 스스로 내가 가입을 승인한 절차를 설명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댓가를 과금한다는 것 자체가 상품이 불완전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만한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조그만 보험 하나라도 가입하려면 나는 온갖 장소에 내 승인 기록을 남겨야만 합니다. 그런데 누구도 내가 가입을 승인한 기록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말 내가 금융사기사건에 휘말려 배상을 요구하면 과연 이들이 본인들이 말한 서비스를 끝까지 책임질지 아니면 내가 승인한 기록이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여느 보험회사들처럼 지급을 거절할지 판단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딱히 신뢰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는 한달 반 뒤에 2천원을 돌려받기 위해 30분을 통화하는데 낭비했습니다. 그나마 날더러 핀브릿지에 전화하라는데 항의해서고객센터 상담원이 나 대신 문의했고 이게 그나마 이 모든 일로부터 제가 겪은 가장 책임감있는 행동이었습니다. 고객센터 상담원은 핀브릿지 대표번호에 회사 전화로 통화를 시도했지만 이 번호는 핸드폰 번호로만 발신할 수 있게 되어 있었고 개인 전화로 문의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그거면 어딘가 싶어 평가라도 좋게 해야겠다 싶었습니다만 3번 문항에 주관식 문제가 있었고 타이핑하지 않으면 서브밋할 수 없게 되어 있어 그냥 꺼버렸습니다.

사기를 방지해주는 서비스를 한다는 자들이 오히려 사기를 치고 있습니다. 다음부터 통신회사 요금고지서가 도착하면 이전보다 좀 더 신경써서 볼 겁니다. 통신회사와 뭐 하는지 알기 어려운 대행회사가 언제 또 이런 사기를 칠 지 모릅니다. 저는 아직 제 돈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