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새로 오신 기획자님과 일하다가 문득 이분이 사용하시는 언어가 조금 거슬려서 뭐가 문제일지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작성하신 문서를 리뷰하다가 궁금한 점을 질문하면 짧은 이유와 함께 장황한 표현들이 따라붙었습니다. 저는 장황한 설명 중에서 영양가 없는 부분을 잔혹하게 잘라버리는데 이력이 나 있었으므로 몇 초 듣다가 “잠깐만요.” 하고 말을 잘라버리고 말았습니다. 다른 직군 스탭님들과 이야기할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문서로 정리하며 이걸 다른 스탭님들께 말로 전달하는 일이 핵심 업무입니다. 그렇다면 글을 잘 써야 하고 문서를 잘 정리해야 하며 말도 잘 해야 합니다.

말을 잘 하기는 원래 어렵습니다. 어떤 일을 연습해서 잘할 수 있다면 한국어로 글쓰기나 한국어로 말하기 역시 수 십 년 동안 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적고 문서를 잘 정리하는 사람은 더 적습니다. 심지어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일하며 만나본 모든 사람들을 통틀어도 소수입니다.

문서를 리뷰하거나 회의에서 브리핑할 때 말을 잘 들어보면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머릿속에서만 멤돌던 “게이지빠”같은 이상한 단어가 튀어나오고 주술호응을 맞추지 못할 뿐 아니라 문장을 제대로 끝맺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업무 내용을 브리핑하고 나머지 스탭들에게 협업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에서 “뭐뭐 할 것 같습니다.” 같은 표현을 쉴 새 없이 사용하기도 하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게임적인' 같은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냥 이러면 안됩니다.

실은 원래 한국어는 어렵습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한국에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해서 한국어를 잘 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를 잘 못한다고 가정하고 한국어를 잘 하려고 노력을 기울여 연습해야 합니다. 종종 드라마를 보면 머리 좋은 사람으로 설정된 캐릭터들이 말을 빨리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렇게 말을 빨리 할 수 있는 이유는 본인이 존카멕이거나 대본에 적힌 대사를 외워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둘 중 하나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멋지게 말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일단 말을 좀 천천히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말을 천천히 하기 시작하면 하고싶은 모든 말을 할 시간이 줄어들어 필요 없는 말을 하기 어려워집니다. 시간이 줄어든 만큼 정말 필요한 말만 해야 하거든요. 하지만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 말을 천천히 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술호응이 안 맞는 표현이나 괴상한 단어를 입 밖으로 내기 전에 머릿속에서 한번 더 거를 기회가 생기거든요.

말 하는 방법을 연습할 방법에는 자기가 한 말을 녹음해서 들어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회의를 녹음해서 들어보면 회의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횡설수설하며 똑바로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에 놀라게 됩니다. 그만큼 자기 자신의 말이 얼마나 이상한지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개인적으로 썩 추천하지는 않는데 일단 녹음을 듣고 교훈을 얻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자기 자신이 말을 얼마나 못하는지를 삼자 입장에서 들어보면 너무나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약한 분들은 상처받을 수도 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사용하는 단어를 의심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설명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면 도움이 됩니다. 가령 '게임적', '게임성' 같은 말을 누군가 내뱉으면 머릿속에서 빨간불이 켜집니다. 그리고 이 말을 할 상황이 모두 끝나고 나서 여쭤봅니다. 혹시 아까 말씀하신 저 단어가 무슨 뜻이냐고요. 장담하건데 누구도 만족할만한 답변을 하지 못할 겁니다. 이걸 예상한 고약한 질문방법이기도 하고요. 저 단어들은 의미가 없습니다. 마치 게임이 가진 속성을 단어 몇 개로 요약할 수 있을 것처럼 굴지만 실제로는 온갖 장르가 있고 갖가지 주제와 소재로 구성되며 이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 역시 모두 다릅니다. 저런 단어들에 의해 단순하게 요약되지 않아요.

그런 단어들로 대표되는 스스로 설명할 수 없고 실제로 아무 의미 없는 단어들을 고객이나 평론가들은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분들이 저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든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 달라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글들이 유통된다고 해서 딱히 문제가 생기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소위 기획자들이 이런 말을 사용하면 안됩니다. 의미가 없고 의미 없는 말을 일 하는 도중에 사용하면 서로 잘못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원래 한국말은 어렵습니다. 한국어가 모국어이고 수 십 년 동안 한국어를 사용하며 일상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한국어를 잘 할 거라는 가정은 위험합니다. 특히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일을 하는 우리들은 항상 내가 한국어를 잘 못할 거라고 가정하고 단순하고 명확하며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단어들을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생각을 입으로 내뱉기 전에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는 편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