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윅3: 게임 만드는 사람 관점에서

(2019-06-23)

존윅3을 봤습니다. 존윅 시리즈의 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존윅으로부터 영감을 얻었고 일하면서 하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가령 플레이어에게 시나리오를 설명하기 위해 게임을 진행하던 플레이어를 붙잡고 화면 위쪽에 스킵 버튼을 표시한 다음 구구절절 설명하는 행동이 쓰레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필요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면 존윅 시리즈를 본 다음부터는 그런 행동은 플레이어를 게임으로부터 내쫓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존윅을 본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그런 짓을 할 시간에 존윅은 57명을 더 죽입니다.

그 첫 영화에서 존윅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영화 전체를 할애했습니다. 굳이 존윅이 누구인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행동과 상황으로 조금씩 조각을 맞춰갈 수 있을 정도로만 설명합니다. 굳이 영화 보는 사람의 집중과 템포를 망가뜨리지 않고서요. '존윅1'에서 인상깊은 설명방법 중 하나는 비고가 오렐리오에게 전화를 건 장면입니다. 아들을 때린 이유를 묻는 비고에게 오렐리오가 이유를 설명하자 비고는 '오…' 하고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이 영화가 존윅이 아니었다면 구구절절하게 이유를 설명하고 비고의 오버액션으로 장면을 망가뜨렸을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저 짧은 반응은 존윅이란 캐릭터 조각을 흥미롭게 맞춰가기에 적당했습니다.

두번째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을 둘러싼 게임규칙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컨티넨탈 그라운드에서 살인이 금지된 점은 이미 전작을 통해 설명했지만 그렇다면 그 규칙을 설정하고 운영하는 존재들은 누구인가 혹은 무엇인가. 이 규칙 설명 역시 굳이 플레이어의 행동을 멈추고 튜토리얼을 띄워 화살표로 가리킨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같은 방식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단지 규칙을 설정하고 운용하는 강력한 존재들이 있다고 알려주고 영화 내내 조각을 조심스럽게 던져줍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게임 규칙 뒤에 서있는 존재들을 어렴풋이나마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정확히 뭔지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명확히 알기 어렵지만 영화를 보는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세번째 영화로 이어집니다만 이번에는 전작에서 이어왔던 방식이 그리 훌륭하게 동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게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밸런스 조절에 실패했고 관객에게 알리지도 않고 장르와 전투시스템을 바꿔버렸고 나머지 스토리는 DLC로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개봉이 한달이나 늦춰지는 바람에 그 한달 동안 기대를 부풀려 극장에 갔다가 스탭롤이 시작되자 한숨을 쉬게 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규칙 설명 실패

첫번째 영화에서는 캐릭터를, 두번째 영화에서는 그들을 둘러싼 규칙을 설명하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영화에서는 본격적으로 그 규칙이 동작할 때 일어나는 일과 규칙을 결정하고 운영하는 존재들에 대해 설명해야 했는데 설명 방법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규칙은 조각조각 나눠 순간순간 플레이어에게 전달해 주고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하이테이블과 그 위에 있는 장로들의 조직도를 조금씩 그려 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번에 전달하는 규칙의 양이 너무 많았습니다. 뉴욕 안의 러시아에서 주인공의 과거를 보여주고 바로 지구 반바퀴를 돌아 모로코에서 조직도의 일부를 보여준 다음 영화는 순식간에 사막으로 옮겨가 조직도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뉴욕으로 떨어집니다. 듀디케이터의 등장은 영화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도구이지만 이를 포함해 존윅 답지 않게 한번에 너무 많은 설명을 시도한 나머지 영화는 기대와 약간 달랐습니다. 저는 여전히 존윅의 열혈모험활극을 보러 왔는데 화살표가 그려진 버튼을 눌러야 하는 튜토리얼을 보는 느낌이 간간히 들어 좀 답답했습니다.

밸런스 조절 실패

게임 난이도를 조절하는 일은 언제나 골아픕니다. 너무 어렵거나 쉽게 만들려면 게임의 핵심 메커닉을 부정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또 난이도 조절 방법을 고안해낼 자원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값싼 방법을 선택해야만 하는 일도 있습니다. 가령 던전을 만들었는데 갑자기 업데이트 하루이틀 전에 상위 난이도를 만들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치겠습니다. 그러면 급하게 몬스터들의 체력을 올립니다. 상위 난이도니까 체력을 한 4배정도로 올리면 되겠군요. 그래서 테스트해보니 던전 느낌이 이전과 많이 달라져버렸습니다. 이전에는 두세대 맞으면 나가떨어지던 몬스터들이 이제 훨씬 더 많이 때려야 할 뿐 아니라 때리기 위해 비용을 관리하는 플레이가 더 많이 필요해졌습니다. 전투시간이 길어졌고 한 장소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이전에는 몹들을 쓸어담으며 앞으로 전진하는 플레이였다면 이제는 체력버프를 받은 다음 한 자리에서 묵묵히 몹이 쓰러질 때까지 피를 깎는 플레이를 반복할 뿐인 이상한 던전이 완성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존윅의 한 장면은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컨티넨탈 뉴욕에서 버티기로 결정한 주인공들에게 하이테이블에서 목숨을 몰수하러 옵니다. 마치 미국 대통령의 비스트처럼 생긴 버스 두 대에 나눠 탄 중장갑 병사들을 상대하게 됩니다. 그런에 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컨시어지가 존윅에게 이어질 새로운 게임 규칙을 설명해줍니다. 정확히는 존윅에게 설명하는게 아니라 관객들에게 설명하지요. 당신이 떠나있던 5년 사이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짧게 줄여 말하면 방탄복이 훨씬 개선됐다는 식으로요. 그래서 어느정도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이게 게임플레이 느낌을 얼마나 바꿀지는 실제로 보기 전에는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게임이 시작되는 순간 존윅 답지 않은 깝깝함이 업습해옵니다.

존윅의 기본 플레이는 총으로 사람을 쏘고 총알이 떨어질 때 격투로 전환했다가 다시 총을 쏠 수 있게 되면 총으로 사람을 쏘기를 반복하는 겁니다. 총 이외의 행동은 총을 사용할 수 없을 때 잠깐씩 등장합니다. 그리고 총을 몸에 맞으면 아픈 애니메이션을 플레이하고 총을 머리에 맞으면 죽는 상태로 넘어갑니다. 이게 잘 어우러져 전투의 타격감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게 이전 존윅 전투의 핵심입니다. 심지어 이번 영화에서도 모로코에서는 새로운 메커닉인 '개'를 추가하면서도 타격감을 훌륭하게 유지한 채로 존윅의 전투를 잘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하이테이블 병사와 전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모든 규칙이 동일하지만 몹들의 체력만 올린 바로 그 느낌입니다. 컨시어지의 설명 부분에서 제가 기대한 것은 총이 권총에서 샷건이나 라이플 같은 좀 더 강력한 화기로 바뀌고 그에 알맞는 이펙트를 표시하며 이전과 비슷한 타격감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만 무기를 바꿨지만 타격감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총을 몸에 맞은 병사들은 맞는둥 마는둥 하는 애니메이션을 재생할 뿐이었고 애초에 머리는 체력을 깎을 수 있는 부위가 아니었습니다. 총알을 여러 대 맞춘 다음 잠깐 쓰러져 그로기 상태가 되면 그때 목 뒤에다 총알을 꽂아넣거나 헬멧의 플락시글라스를 열고 총을 쏘는 식의 메커닉은 재미있었지만 그 과정은 타격감 없는 병사들에게 총을 쏘는, 마치 체력버프 받은 다음 한 자리에 서서 지루하게 몹을 때리는 느낌이 들어 실망스러웠습니다.

장르와 전투시스템 변경

위에서 이미 조금 이야기해버렸지만 존윅 전투의 기본은 총으로 사람을 쏘는 겁니다. 격투는 총을 쏠 수 없을 때 총과 총 사이를 연결하는데 사용하고요. 이번 영화에서 초반 전투에 온갖 날붙이를 사용하는 전투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총을 쏠 수 없는 상황 상 나온 전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존윅 다운 병신같지만 멋있는, 그래도 병신같은 장면들로 가득했습니다. 사람이 칼에 베이고 찔리기를 반복하는 잔인한 장면이 가득하지만 그들을 합쳐놓은 결과는 웃기기 그지없습니다. 한 사람에게 단검을 계속해서 집어던지고 이미 시체에 박혀있는 단검을 재활용하고 적과 서로 눈치를 보며 유리장 안에 들어있는 무기를 꺼낸다든지 하는 장면 하나하나가 총을 쓰지는 않았지만 존윅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병신같음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초반에 이 날붙이를 사용한 전투는 뒤에 나올 보스전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그런데 그 보스전은 그리 존윅의 전투같지 않았고요.

네. 영화 뒤쪽의 보스전은 더이상 총을 사용하는 존윅의 전투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존윅 1의 보스전 역시 총을 쏘는 전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존윅1 보스전의 격투는 꽤 당위성이 있었습니다. 영화 내내 비고는 과거에 존윅과 일했고 격투에 소질이 있으며 존윅의 어떤 면을 두려워하고 '아 쫌!!!'에 가까운 대사를 자주 말합니다. 그렇게 잘 설명된 캐릭터가 끝에가서 '존! 총 쓰지 말고 싸우자!' 라고 외치며 전투시스템 변경을 선언할 때 그게 그리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칼을 엄청나게 잘 사용하는 보스 캐릭터는 영화 초중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해 그 위용을 과시합니다. 영화는 존윅인데 총 쏘는 장면보다 칼로 사람을 베는 장면이 더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존윅이 이 캐릭터와 전투에 칼을 써야한다는 당위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인디애나존스의 칼싸움 장면 같은 것을 상상했지요. 그게 병신같은 존윅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보스전은 존윅의 전투와 달라 부자연스러웠고 이펙트는 너무 많이 재사용했으며 지나치게 심각했고 또 존윅의 전투가 아니었습니다.

이펙트 재사용

방금 이펙트 재사용에 대해 잠깐 이야기했으니 이를 좀더 설명해보겠습니다. 영화 초반 전투에서 존윅이 도망친 좁은 골목에 온갖 깨질만한 물건이 늘어서 있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전구와 거울들요. 그리고 어째서인지 온갖 날붙이들은 유리장 안에 들어있습니다. 또 그들을 둘러싼 환경에도 유리장이 즐비하고요. 그럼 예상할만합니다. 아. 전투 중에 저것들을 다 깨부수겠구나. 아니나다를까 전투를 시작하자마자 유리장을 부수고 무기를 꺼내며 다른데로 집어던져도 될 사람을 굳이 유리장과 거울로 집어던지며 사람이 바닥에 엎어질 때 깨인 유리조각 이펙트를 함께 뿌리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는 배경의 사물들이 꽤 그럴듯하게 보였습니다. 이런 좁은 골목에 있는 날붙이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가게라면 이렇게 생겼을 수도 있겠다 싶은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스전의 레벨디자인은 작위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초반 전투에서 사용한 깨질 수 있는 물건이 널려있는 장소. 그나마 초반에는 개연성이 있었지만 보스전의 레벨디자인은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초현실적인 장소는 심지어 '존윅2'에서 이미 사용한 바 있습니다. 제작자들은 2편의 초현실적인 장소, 하지만 쉽게 깨지는 이펙트를 사용하기 어려웠던 장소에 3 초반에서 보여준 쉽게 깨지는 이펙트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을 조합한 레벨디자인을 하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만 결과는 관객의 감각과 어긋나 칼을 휘둘러서 대미지를 받을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데다가 규칙적으로 유리장식에 사람을 쳐박기를 반복하는데 지루함마져 느껴질 판이었습니다. 이전에 사용했던 이펙트를 그대로 들고와 개연성이 부족한 레벨디자인에 과도하게 사용한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스토리는 DLC

그리고 영화는 … 수많은 강력한 액션씬을 집어넣다보니 스토리를 진행시키기에 시간이 부족했고 스토리를 완결하지 않고 끝났습니다. 어디서 잠깐 읽은 글에 의하면 존윅 4 제작이 승인됐다고도 합니다만 영화 자체에는 그런 힌트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어른들의 사정 상 일단 촬영해서 시위를 하고 경영진으로부터 차기작 승인을 받아내려는 부득이한 전략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쟁을 벌이는 존윅과 그 결말을 기대한 사람들에게 전쟁의 시작만을 보여준 다음 본격적인 전쟁과 결말은 다음 영화로 판매하겠다는 두시간짜리 광고를 본 것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모피어스도 나오고 네오도 나오는 영화였다면 차라리 그 영화의 2편이 끝날 때처럼 '계속' 하고 끝났더라면, 그 사실을 미리 알렸더라면 이런 느낌이 좀 덜 들었을 것도 같습니다만.

결론

이런 게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아쉬운 점들 덕분에 이전만큼 존윅을 맹목적으로 좋아할수는 없게 됐습니다. 여전히 유튜브든 어디든 홈비디오시장에 나오면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일단 산 다음 또 한없이 돌려보기야 하겠습니다만 전작들에 비해 단점이 더 많이 보이고 또 전작들에 비해 충분히 경쾌하지도 않아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물론 이런 단점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액션은 낄낄거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병신같지만 멋있고 모로코 전투 같은 부분은 새로운 메커닉의 도입으로 빠르고 신나며 화려한 레벨디자인이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병신같음도 남아있고요. 일단 승인이 났다고 하니 이제 잠자코 다음 영화를 기다릴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