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윅 4의 레벨디자인

존윅 3을 보고 4년만에 존윅 4를 봤습니다. 존윅은 2편이 끝나고 나서 차기작을 촬영할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 도대체 이 난장판을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이 의문은 존윅 3편이 끝나고 더 강해졌는데 이 난장판을 수습할 방법은 전통적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 밖에 없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난장판을 잘 봉합하고 또 이제는 네 번째 반복되어 어쩌면 좀 지겨워졌을지도 모르는 핵심 메커닉을 반복하면서도 나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한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4년 전에도 존윅을 게임디자인 관점에서 보고 레벨디자인이나 타격감에 아쉬운 점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관점으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3편 이야기를 잠깐 하고 넘어가면 3편은 레벨디자인과 타격감 관점에서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2편에 비해 더 강한 대립 관계와 이를 지탱할 더 강한 적이 필요했습니다. 강력한 심판관의 등장은 강한 대립 관계를 만들어냈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두 가지 강력한 적은 영화의 장르에 잘 어울리지 않았고 또 타격감을 심각하게 망가뜨립니다. 존은 건푸, 카푸, 소드푸 등 뭐든 능숙하게 사용하는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존의 핵심은 총입니다. 그런데 강력한 적 중 한 무리가 칼을 휘두르며 나타났고 보스 전투에서 칼을 사용해 이 영화에 어울리는 전투를 기대한 사람들을 실망시켰습니다.

또한 하이 테이블이 보낸 부대는 외형으로 그 강력함을 표현했고 또 컨시어지 샤론이 이 사실을 존에게 설명함과 동시에 관객에게 설명하며 타격감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 만한 무기를 안내하지만 실제 전투에서 이들은 마치 RPG 게임의 후반 필드 몬스터 처럼 체력이 높아 타격감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할 뿐이었습니다. 레벨디자인 측면에서도 조명이 꺼진 컨티넨탈 호텔 로비는 첫 스테이지가 진행되는 상태를 관객에게 설명하는데 도움이 됐지만 컨티넨탈 호텔 지하는 관객들에게 낯선 공간이기 때문에 레벨 진행을 잘 파악할 수 없었고요. 또한 최종 보스전에 사용한 공간은 이미 2편의 현대미술관에서 사용한 것과 거의 같은 메커닉이어서 최종 보스전을 치르기에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존윅 4편은 이런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개선합니다. 먼저 영화 한 편 안에서 수습하기 어려울 것 같은 확장된 세계관을 시작부터 정리했습니다. 예고편에서 엘더에게 총을 겨눌 때 이런 장면은 영화 뒷 부분에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을 뒤엎고 시작하자마자 엘더부터 찾아가 머리에 총알을 박으며 하이 테이블보다 더 확장된 세계관은 이제 없음을 확실히 정리하고 나서야 뉴욕에서 이벤트를 시작합니다. 2편에서 세계관의 확장은 신선하고 또 매력적이었지만 존 혼자 이 확장된 세계관을 상대하기에는 확실히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사실 3편의 내용을 요약하면 2편에서 확장된 세계 전체가 존에게 달려들었고 영화 한 편 내내 신나게 도망다니다가 윈스턴의 배신으로 옥상에서 떨어졌다고 요약할 수 있는데 3편의 디자인 실패는 과거의 인연을 등에 업었다 하더라도 존은 여전히 개인인데 비해 하이 테이블은 실체가 확실하지 않은 강한 조직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하이 테이블이라는 모호한 존재를 자연스럽게 사람 한 명과 지켜져야만 하는 규칙으로 집중 시켜 실체를 가지도록 묘사하는데 성공합니다. 애초에 하이 테이블은 세계관 안에서 세계를 뒤에서 지배하고 있을 것만 같은 강력한 조직으로 묘사되는데 대대로 조직에 맞서 개인이 싸우는 이야기는 매력적이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가령 3편에서 하이 테이블의 강력함은 버스 두 대에 나눠 탄 해비 아머로 무장한 병력으로 표현되지만 이들이 하이 테이블의 모호한 형태와 그 모호함으로부터 나오는 강함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렇다고 하이 테이블이라는 조직을 영화 안에서 최대한 크고 무섭게 부풀려 놓았는데 이들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늙다리 백인 남녀의 집합을 통해 직접 묘사한다 하더라도 그리 훌륭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만약 하이 테이블의 모든 멤버가 전투에 정통하다면 존이 하이 테이블을 직접 쳐부수고 굴복 시키는 통속적이고 통쾌한 장면을 만들 수 있었을 테지만 그러면 하이 테이블의 신비가 깨져 세계관을 망가뜨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이 테이블의 전적인 지원을 받는 실체를 가진 후작을 전면에 내세우고 후작이 하는 행동이 하이 테이블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행동임을 관객에게 계속해서 알려주며 후작과 하이 테이블을 동일시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규칙을 지켜야만 하며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동물과 다를 바 없다는 명제에 따라 하이 테이블의 권한을 행사하는 후작이라 할지라도 실체가 있는 사람 한 명으로써 존과 결투에 임해야 하는 구조로 만들어 하이 테이블의 신비를 깨지 않으면서도 개인일 뿐인 존윅이 대항할 수 있는 형태로 적을 정의합니다.

다음으로 새 캐릭터를 소개하기 위한 스테이지를 별도로 만들고 이 스테이지가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게 만들어 전투 진행을 파악하기 쉽게 만듭니다. 몇 년 전에 모던워페어를 플레이 하며 지적했던 평소에는 가로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갑자기 세로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는 레벨을 만났을 때 느낀 당황스러움에 비해 오사카에서 적들은 호텔 로비에, 존은 옥상에 배치해 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전투가 올라가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진행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치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또한 이 오사카 스테이지는 새 캐릭터인 코지, 아키라를 소개하고 또 이미 등장한 케인의 전투를 소개하는 스테이지로써 의미 있게 활용했고 또한 위로 올라가며 전투를 계속하는 레벨디자인은 핵심 전투가 마무리된 다음 다시 땅으로 돌아옴으로써 오사카 스테이지가 종료되었음을 레벨디자인으로 잘 나타냈습니다.

베를린 스테이지 역시 오사카 스테이지와 같은 방식으로 레벨을 디자인 했는데 지하의 포커 테이블에서 출발해 댄스 플로어를 거쳐 올라간 다음 한번에 떨어지며 전투를 마치도록 구성해 전투 시작, 고조, 절정과 결말을 레벨디자인을 통해 쉽게 인지할 수 있게 했습니다.

파리의 계단 스테이지는 이런 레벨디자인을 극도로 강조해 전투 진행과 위기 상황, 상황의 마무리와 다음 스테이지로 전개를 훌륭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합니다. 한편 긴 계단이라는 단조로운 레벨에서 다양한 전투를 일으키기 위해 계단 양 옆의 빗면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계단의 양쪽 면 사이에 난간을 기믹으로 사용해 난간을 오갈 때마다 전투 양상이 바뀌도록 디자인한 점도 흥미롭습니다. 타격감 측면에서도 전작의 하이 테이블이 파견한 부대의 강력함을 표현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무기를 갖췄음에도 타격감이 떨어지는 문제를 원거리 무기 활용과 쌍절곤 같은 새로운 무기 도입, 그리고 존이 이미 그들의 약점을 알고 있는 행동을 통해 강한 적을 상대하면서도 타격감에 큰 손해를 피하도록 설계한 점 역시 인상적입니다.

한편 관객들에게 강력한 이미지로 각인 시키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실체가 불분명한 하이 테이블을 대변하는 후작과 영화 네 편에 걸쳐 실루엣이 비슷한 액션을 반복해 존이 아무리 대단한 액션을 해도 지루해지기 쉬운 상황에서 등장한 케인과 노바디 역시 극의 긴장감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한 점 역시 흥미롭습니다. 특히 케인은 그 설정 때문에 몸짓이 굉장히 독특한데 케인이 전투에 참여할 때마다 다른 캐릭터들과는 완전히 다른 예상하기 어려운 몸짓을 보여줘 시선을 고정 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노바디는 케인 같은 특별한 몸짓과는 거리가 있지만 노바디를 포함한 실내 전투 장면에서는 시점을 바꿔 전체 전황을 한 번에 보여주는 방식으로 다소 진부한 전투 장면을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뒤에 있던 분들이 이렇게 재미 없는 영화인 줄 몰랐다며 세 시간 동안 너무 힘들었으며 다른 분들은 잠들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또 이제는 존이 하이 테이블을 시원하게 박살 내는 전개를 기대했는데 하이 테이블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했음에 답답함을 느낀다는 분들이 있었고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확실히 여러 장치를 했더라도 여전히 하이 테이블은 실체 없이 강한 이미지라 이들을 영화에 함부로 실체화 시키기 어렵고 만약 출연 시키더라도 개인과 조직이 전투를 벌이다간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처럼 어중간한 지점에서 전투가 끝나게 될 수도 있었지만 존을 응원하는 관객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또한 실루엣이 비슷한 액션으로 영화 네 편을 끌어 오면서 상황과 인물이 다양해지더라도 처음 같은 신선함을 유지하기는 무리가 있었을 겁니다.

어쨌든 이제 존의 이야기는 그렇게 대체로 잘 마무리 되었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캐릭터가 생겼으며 레벨디자인과 타격감 측면에서는 전작에 비해 훨씬 발전했고 앞으로 이 프랜차이즈를 통해 발매될 다른시리즈에 관심을 가져볼 만 합니다.